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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범의 길에서][10][겁나는 태양, 겁나는 동학군]

이충범·협성대 신학과 교수

이 세상에서 이렇게 달콤한 잠이 있을 수 있을까? 이른 아침에 눈을 뜨게 한 것은 알람도, 모닝콜도 아니었다. 그날 아침 나는 방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의 해님과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이 깼다. 참 그리웠던 기상의 순간이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아침 모습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나는 옆 사람의 뒤척임, 알람소리, 위층 이웃의 샤워하는 물소리나 러닝머신 타는 소리 등을 들으며 잠이 깼다. 그런데 이날 아침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내가 어릴 때 비몽사몽간 들으며 잠이 깼던 소리들을 들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7시도 안 된 이른 아침인데 태양은 침대 위로 작열하고 있었다.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다행히 널어놓은 빨래들이 거의 다 말라 있었다.(여기서 ‘거의’는 입을 만한 수준을 의미한다. 어차피 입고 나면 채 1시간 안 돼 바싹 마를 테니까) 청명한 공기를 뚫고 내리쬐는 태양은 눈 뜨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엄청난 새들이 거의 광란 수준의 노래를 한다. 신변을 정리하고 모텔을 나왔다. 어제 그 청년이 프론트에 있으면 또 한 번 거드름을 피워 보려고 연습까지 했지만 나올 때는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이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대도시 24시간 해장국집이 있을 리도 없고, 여행객들이 지나치는 미국 허허벌판 대륙의 맥도날드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그냥 길을 떠나면서 편의점에 들러 과일이라도 사서 먹으며 걸으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눈앞에 놀랍게도 “아침 됩니다”라고 써 붙인 집이 나타났다. 신났다고 들어간 그 식당의 유일한 아침메뉴는 백반도, 해장국도, 24시간 순두부도 아닌, 짱뚱어탕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자빠졌다.

나는 서울, 그것도 명동 한복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랐던 사람이다. 그러나 내 조상님들은 600여 년을 지금은 서울의 근교가 된 지역에서 사셨다. 그리고 그 지역은 지금은 중국교포들을 실어 나르는 항구, 무적 해병대가 머무는 군사 주둔지, 게다가 대규모 공업지역으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릴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이 펼쳐져 있던 곳이었다. 새빨간 식물이 끝도 보이지 않는 갯벌을 뒤덮고 있었고, 물 들어올 때 바다는 그야말로 고기 반 물 반이었다. 갯벌만 쑤시면 1시간 내에 하루를 먹고도 남을 대합을 주웠고, 잠시만 낚시하면 온 식구는 물론 개나 돼지까지 포식할 만큼 물고기를 잡았다. 그 당시! 바로 그 당시에, 아이들 사이에서 “먹으면 배탈 난다”, “그거 먹은 개가 죽었다더라”는 소문을 몰고 다니던, 그래서 발에 채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싸구려 님들(?)이 바로 짱뚱어였다. 그런데 그걸 먹는다니? 탕을 끓인다니? 그리고 그게 유일한 메뉴라니?

먹는 것에 용감하고 농민들의 우상인 나는 잠시 머릿속이 하얘지긴 했지만 어차피 먹어야만 하는 아침이라면, 게다가 탄수화물을 채워야만 하는 시간이라면 장렬하게 전사하더라도 먹자는 생각에 짱뚱어 탕을 시켰다. 바로 탕이 나왔는데 다행히 그 징그러운 짱뚱어의 몸매는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프랑스 달팽이요리 보듯, 반대로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번데기 보듯, 그런 눈빛으로 짱뚱어 탕을 바라보다가 입에 한 술 떠 넣었다. 걸쭉한 국물이 생각보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짱뚱어탕이 적군이 아닌 아군임을 확인하자 먹는 것에 용감한 나의 DNA가 다시 작동하여 뚝딱 한 그릇을 다 비워버렸다.

아침을 먹고 식당을 나오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태양은 아스팔트 위로 작렬하고 있었다.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런 장마 직후의 무더위가 시작된 것이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읍내 도로를 걷기 힘들 정도로 바닥에서 지열이 올라왔고 태양빛은 피부를 찔러댔다. 마침 피씨방이 보여 얼른 들어가 주간 날씨를 확인해보았다. 예상대로 이번 주 내내 경보, 경보의 연속이었다. 피씨방에서 나와 도로 위에 앉아서 한참을 망설이다 전략을 수정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제부터 자동차와 도보를 병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저 뜨거운 아스팔트 용광로에 빠지면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내 목숨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얼른 터미널로 향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터미널까지 걷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성남, 동서울, 이런 표지판이 보였다. 멀거니 바라보면서 “그냥 저거 끊어서 타고 올라가면 휙 하고 집에 가는데…”하는 망설임이 스쳤다. 그러나 기왕 내려온 김에 전주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올라가고 싶었다. 나주행 표를 끊고 운전기사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자리엔 덩치 큰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차가 출발하기까지 잠시 기다려야 했기에 에어컨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콘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라오신다. 그러더니 그 콘을 내 옆자리 덩치 큰 할머니에게 쥐어 준다. “아, 성님도 하나 잡수쇼.” 내 옆자리 덩치 큰 할머니는 몸집이 작은 할머니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시면서 그 콘을 받아 든다. 그러나 작은 할머니는 “난 가매 사먹으면 돼, 괜찮혀” 하시더니 몸뻬바지춤에서 뭘 꺼내 내 옆자리 할머니에게 주신다. “이러면 안되지잉, 성님, 이러지 마쇼.” 이렇게 두 분의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졌다. 덩치 큰 할머니께서는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도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릴 만하면 한 입씩 드셨고 나는 이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웃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결국 작고 많이 늙으신 할머니는 손에 쥔 것을 내 옆자리 할머니 치마 위로 휙 던지시고 차에서 내려가셨다. 할머니 치마 위엔 꼬깃꼬깃 접혀진 만 원짜리 두 장이 떨어져 있었다.

작은 할머니가 돈을 던지시고 내려가시자 운전기사는 출발하기 위해 차 문을 닫았고 작은 할머니는 차 문 앞에 서서 동생 되시는 할머니에게 눈을 떼지 못하시고 계속 손을 흔드신다. 차에 탄 할머니도 일어서시더니 “성님, 더웅께 싸게 들어가아~ 싸게” 하시며 들리지도 않을 소리를 지르신다. 차는 출발하여 터미널을 미끄러져 나가는데 두 할머니의 손짓은 작은 할머니의 모습이 아주 작아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옆자리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시면서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이 떨어질 만하면 핥아 드셨다. 그 모습이 마치 군대 간 손자 첫 면회 오셔서 닭똥 같은 눈물을 우동그릇에 줄줄 흘리시며 우동국물 반, 눈물 반 점심을 드셨던 내 할머니가 생각나서 더 이상 우습지 않았다. 이 두 할머니는 친형제 지간은 아닌 것 같았고 무척 오랜만에 서로 만나 뵌 것 같았다. 배웅하는 작은 할머니의 연세가 꽤 높아 보였고 거동도 힘들어 보였다. 아마도 이번에 만나고 언제 또 다시 만날지는 기약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보내시는 할머니의 표정이 그렇게 애틋하고 섭섭해 보였는지 모른다. 다시 살아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는 이별, 두 분의 이런 이별의 순간을 보니 가슴이 짠해왔다. 인생이란 이렇게 허망하고, 그 인생 속에서 만남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을, 우리는 수많은 만남들을 너무 소홀히 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버스는 금방 나주에 도착하였다. 오면서 나는 영산포구나 고분군을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보려고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아이스크림을 다 드신 할머니는 고새 졸고 계셨다. 나주는 예부터 부자동네였다고 한다. 영산강이 물류의 통로로 이용되었기에 나주에 물류가 집중되면서 많은 부가 나주에 쌓였고 이 때문에 나주엔 경제력이 대단한 토호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려 때 삼별초군이 남하하면서 나주성을 공략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구한말 동학군들이 파죽지세로 전라남도 전역을 점령하고 전주성까지 점령한 후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나주성을 무려 3천명의 동학군을 동원해 수차례 공략했지만 난공불락이었다. 최후에는 전봉준 장군이 나주목사 민종렬과 단판을 지으려 했으나 실패하여 나주성은 동학군에게 점령되지 않았던 유일한 성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나주가 동학군에게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나주성에 쌓여 있던 풍부한 경제력이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바로 그 나주성 한복판에 서 있고 주변에서는 울분에 쌓인 동학군들의 함성소리가 들리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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