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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자살 권하는 사회, 말없는 교회

김기석·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서울특별시의 자살률이 지난 4년 새 53%나 가파르게 증가했다고 한다. 서울시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진두생 의원이 11월 1일 서울시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나온 사실이다. 이미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가 31.2명으로 OECD국가 중 최고이며, 전세계에서도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매일 평균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만들어내는 데 지난 몇 년 동안 서울특별시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자살자들의 연령대는 노령인구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연령별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20~3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원인의 첫 번째 순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흔히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차 조심해라”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하지만, 오늘날 정작 우리들의 소중하고도 젊디 젊은 자녀들을 제일 많이 잡아먹는 것은 자살이다.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왜 우리 주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일까? 자살은 우울증 등 개인의 심리적 문제, 혹은 자신의 환경 및 미래에 대한 좌절감 등 사회적 문제에 기인한다. 그런데 20~30대의 자살률이 최근 들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때 이미 엄청난 금액의 대출자 신세로 사회생활을 출발하지만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는 생계를 꾸리는 젊은이들에게 대출금을 갚고 결혼자금을 저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는 청와대에 계시는 분께서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만 찾기 때문에 실업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말 자체로서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나, 정치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실업률이나 자살률 같은 문제를 단지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같다. 정치인의 역할은 개인의 성공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젊은이에게 잔소리꾼이 되기 쉽다. 전해주고 싶은 성공담이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초졸(국졸) 출신의 필자 역시 누구 못지않은 전형적인 자수성가의 이력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교훈만으로는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진취적인 마인드와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노력해도 지독히 운이 나쁘거나 건강이 따라주지 못하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강르네상스’다, ‘디자인 서울’이다 하는 전시성 사업에 수조 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한 예로 광화문 광장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을이면 세종로를 노란색으로 물들여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내던 오래된 은행나무들을 다 뽑아버린 후, 비싼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고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화분으로 장식해 놓았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을 별로 찾지 않는다. 양편에 오가는 차량의 소음과, 특히 여름이면 뙤약볕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애초부터 공원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일에 시민의 세금을 낭비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전시성 사업에 쓸 돈을 아껴서 젊은이들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업에 사용했더라면,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던 그들에게 생명의 끈이 되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새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내년도 살림살이를 계획하면서 멀쩡한 보도블럭 교체하는 데 예산을 낭비하지 말라고 지시하여, 그동안 동네에서 이러한 쓸데없는 사업이 매년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답답해했던 많은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배정된 예산은 무조건 그 해에 써버려야 한다는 행정당국의 오랜 잘못된 관행이 중단되고 정말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알뜰한 시정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눈먼 사업과 잘못된 관행으로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챙기던 자들의 새로운 시장 헐뜯기가 얼마나 집요하게 시작될까 걱정도 된다.

다시 자살 이야기로 돌아가자.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결심하지만 그중에 일부만 진짜로 시도하며, 시도한 사람 중에 일부만 자살에 성공한다. 그러니 하루에 43명이 자살한다면 지금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겠다는 결심을 한 채로 돌아 다니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막말로 오늘 죽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눈에 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소위 ‘묻지마’ 폭행이 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니 자살률이 높은 사회란 얼마나 위험한 사회란 말인가? 나아가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다만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만 아니라 절대적 절망감에 빠져 바람 부는 절벽 위에 서있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그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지, 얼마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인지를 안타까워하며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께서는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베짜다 우물가의 병자처럼 세상에서 좌절한 사람들, 문둥병자와 같이 낙오한 사람들에게 왜 그리 못났냐고 꾸짖지 않으셨다. 무조건 그들을 품어 주고 위로해주고 치유해 주어 마침내 새로 일어설 희망을 주셨다. 오늘도 수많은 한국교회의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들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이 나라의 밤하늘을 무심한 듯 무감한 듯 말없이 비추고만 있다.

김기석 교수(성공회 사제, 성공회대 교수, 현재 영국 버밍엄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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