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명민하고 활달하고 대담한 소년

<만우 송창근 목사 바로보기 1>

1898년 한 해 내내 세상이 몹시 시끄러웠다.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고, 쿠바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미국은 필리핀과 괌과 푸에르토리코를 획득하고 하와이를 병합했다. 서구 열강은 ‘병든 거인’으로 불린 청나라를 삼키기에 혈안이 되어 독일은 교주만을 조차했고, 러시아는 여순과 대련을 점령했고, 프랑스는 광주만을 조차했고, 영국은 구룡반도와 위해위를 조차했다. 그리고 그처럼 갈가리 찢긴 청나라에서 무술정변이 일어났다.

국내 사정 역시 시끄러웠다. 그 전 해인 1897년에 조선왕조 5백년 왕업을 격상시켜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었는데, 이 해에 들어와서 독립협회 주최로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러시아가 부산 앞바다의 절영도를 조차했고, 동학교주 최시형이 처형되었으며, 김홍륙의 독다사건이 일어났고, <제국신문>과 <황성신문>이 발간되었다.


그 해 10월 5일. 대한제국의 북쪽 변방 마을의 하나인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웅상동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준수한 얼굴에 활달한 기상이 넘치는 활발한 사내 아기였다. 부친은 송시택씨, 모친은 신봉암씨. 그들은 첫아기에게 ‘창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창성할 창(昌), 뿌리 근(根), 풀이하면 “창성할 나무의 뿌리가 되라”는 뜻이 된다. 귀하게 얻은 장남에게 붙여줌 직한 이름이

▲만우 송창근 목사
었다.


송창근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쾌활하고 명랑해서 친구들이 많았다. 교회 생활도 열심이었다. 그의 형제는 모두 5남매로서, 남동생 두 명(창혁, 창세)과 여동생 두 명이 있었다.

송창근의 부모는 후손을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급했던 모양이다. 맏아들 송창근을 13세 때 결혼시켰다. 상대는 6살이 많은 김재권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지만, 그 결혼은 송창근에게 별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결혼한 직후 송창근은 가출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13세 때 가출하여 홀로 북간도 명동촌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했고, 이어 명동중학교로 진학하여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1910년 당시 북간도에는 몇 개의 신학문 기관인 ‘학교’들이 새로 설립되어 있었다. 대개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인 명동학교(1908), 창동학교(1908), 정동학교(1908), 광성학교(1908) 등이 잇따라 개교하여 신학문을 가르쳤다.

송창근의 어릴 적 얘기는 그의 막역한 고향 친구였던 고 김주협 장로의 증언에 남아 있다. 송창근의 친구들은 고향의 농어촌교회 내 청녀들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는 김주협과 엄기남이었다. 이 세 동지는 모두 어린시절 결혼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가정에는 흥미가 없고 어디론가 집을 떠나 공부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세 동지는 어느날 몰래 북간도로 건너가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김주협은 아버지의 반대로, 엄기남은 학자금 마련을 위해 미루다가 지병으로 세상으로 떠나 결국 혼자 북간도로 가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소년 송창근이 지녔던 ‘만 열두 살’ 나이답지 않은 당찬 추진력이었다. 친구 셋이서 함께 북간도로 공부하러 가기로 약속했다가 다른 두 명이 가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 과감하게 떠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계획성과 해박학 성경 지식, 능숙한 변설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확고한 사고를 했고, 사람을 설득하는 논리적 근거로서 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했다.

송창근이 ‘청어잡이를 해서 학자금을 마련한 뒤 가겠다며 약속을 미뤘던’ 친구 엄기남을 설득할 때 “성경에도 쟁기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했는데”라든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던 어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했을 때 그들은 그물과 배와 소유를 당장 버리고 예수를 따르지 않았는가?”라는 시의 적절한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돌아보면, 그의 인생 역정은 초창기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는 명동학교가 무료교육기관인 줄만 알고 가출까지 하면서 찾아갔으나 막상 현지에 도착해 보니 유료였다. 아마도 뒤통수를 쇠망치로 세게 맞은 듯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돈도 없이 객지에서 버티면서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명동중학교로 진학했다. 송창근이 천부적으로 지녔던 뛰어난 적응력을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일화이다.

명동중학교 재학 시절 송창근은 절친했던 친구가 중국인 고리대금업자에게 잘못 걸려 아내를 뺏기게 되자, 그 아내를 구출하고 도주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송창근은 중국인 고리대금업자의 복수가 무서워 딴 지방으로 피신했다. 그렇게 명동중학교 시절은 마감됐지만, 그는 다시 소영자에 있는 광성중학교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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