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꿈을 꾸었다.
예전 시카고에서 부교역자로 일하던 교회가 배경. 가족휴가를 다녀온 오후 늦은 시각, 수요저녁예배가 있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교회에 갔다. 교인들이 십여 명 듬성듬성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었다. 예배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인도자 겸 설교자가 강대상에 보이지 않았다. 다들 웅성거리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아뿔싸, 주보를 들춰보니 바로 내가 이 날 설교 담당이었던 것!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사전에 이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의 실전 감각을 살려 1분 내에 성경본문과 설교제목을 뽑아 나가려 하는데, 대타로 순서를 맡은 이들이 팀으로 강대상 앞에 나오더니 찬양과 함께 무슨 행사보고로 설교를 대체하려는 듯 보였다. 나는 부랴부랴 당회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거기엔 담임목사와 내 후배 부교역자가 소근거리며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날 보고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다소 항의조로 가족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즉각 설교를 하라는 게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미리 연락을 주셨다면 휴가 중에라도 설교를 준비했을 거 아니냐고 불만스런 말투가 끼어들었다. 내가 순식간 말씀의 영감을 얻어 그래도 해보려 했는데, 대타 프로그램은 또 뭐냐고 따지듯 물었다.
엄중한 표정의 담임목사는 이미 주보에 나와 있는데 알아서 감당할 것으로 예상했노라고 말했다. 또 예배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앞에 서지 않으니 자리를 뜨는 교인들이 있어 불가피하게 상의하여 대타를 띄운 것이라며 뻑뻑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다음 예배 설교 자리에서 나는 지난 일로 내 공적인 신용이 깎인 것을 변명 삼아 이런 경우는 좀 억울한 게 아니냐고 간증처럼 이야기했다. 자세한 상황과 내막을 알리면 교우들의 오해와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내 깎인 신용도 회복할 수 있으려니 하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 나는 결국 하늘의 법정에 호소했는데 하나님의 답변이 궁금해서였다.
나는 하나님이 딱 부러진 판결을 내려 내 억울한 심령을 위로하고 내 편을 들어줄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저것 따지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간파한 틈새의 메시지인즉, 네 사정을 듣고 보니 참 억울해 보이고 그 점을 인정할 수 있겠다만, 담임목사 입장에선 또 교회를 조직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애로도 무시할 수 없겠구나. 더구나 힘들게 일하다가 저녁예배까지 참석한 아무개 집사 부부의 실망도 배려하려니 참 골치가 아프네. 누구 한 사람 편에서 손을 들어주기가 힘드니 어이구, 난감하도다. 어쩌지? 하나님답지 않게 쩔쩔매시는 그 모습이 내게 딱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 옆에서 한 구약성서학자(내가 잘 아는 이 아무개 교수)는 전통적인 ‘신정론’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하나님을 걸고 넘어졌다. 왜 그토록 심한 자연재해로 애꿎은 생명을 그처럼 많이 죽이느냐고 따지며 대들었다. 그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그렇게 죽이고 살리는 데 공의의 분별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냐고, 있다면 증거를 대라고 항변하였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뭔가를 답변하려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진땀만 흘리면서 쩔쩔매실 뿐, 딱 부러진 해답을 내놓지 못하셨다. 이 학자는 어느새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더니 '하나님의 무기력증'이란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몰려든 하늘 법정의 고소고발자들은 뜬금없이 그 쟁점을 무상급식 문제로 옮겨갔다. 부자들의 자식한테까지 급식을 무상으로 주려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문제를 제기했다. 구체적인 체험으로 들이댄 증거는 그 잘난 미국 학교 얘기였다. 그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도 학부모의 연봉을 정직하게 써내면 그 기준으로 어떤 애는 무료, 어떤 애는 50센트, 어떤 애는 정가로 5불을 다 낸다고 하는데, 한국은 왜 이리 어설프게 막무가내로 몰아가느냐며 항의조로 따졌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무상복지 포퓰리즘으로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며 그는 애타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했다. 그 항의 사이로 서울의 유명한 몇몇 교회 모모 목사들의 침 튀기는 설교가 지지 세력으로 가세했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격렬했다. 미국은 다른 복지가 잘 되어 있으니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서울 시장이 다른 전시성 토목공사, 디자인 사업 예산 낭비만 줄여도 무상급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민투표에 들이는 천문학적 비용만 아껴도 수많은 어린애들 급식을 도울 수 있다고, 또 자신은 한 끼에 십만 원이 넘는 식사를 숱하게 하면서도 몇 푼 안 되는 어린애들 밥값을 못 주겠다고 시장직까지 걸고 눈물 짜내며 감정에 호소하는데 이런 캠페인을 하는 사람의 꼬락서니가 민망하지 않냐며, 간절한 주장으로 하나님의 지지를 구했다.
하나님은 강렬한 목소리가 밑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움찔거리며 “일리 있는 말인데요...”하면서 무언가 답변을 내놓으려다가 다시 움츠러들고 누구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형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관찰자로 변해 그 모든 사태를 살피면서 일부 기록하고 분석하던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전능함을 강조하며 설교를 해온 터라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쓰고 만들 다음 책의 제목을 순식간 머릿속에 기입했다. 그 제목은 “쩔쩔매시는 하나님”이었고, 이걸 제목으로 내 세번째 신학수상집을 내면 대박을 터트릴지 모른다는 기대에 내심 들뜨기 시작했다.
꿈에서 깬 뒤, 나는 그 꿈의 골격을 되뇌고 그 여운과 잔상을 곱씹으면서 하나님의 쩔쩔매심에 담긴 메시지를 추적해본다. 무엇보다 꿈의 결에 공명하면서 떠오른 것은 ‘배려’라는 말이었다. 존재에의 배려. 시비곡직을 판결하기에 앞서 그 개별 생명의 존재에 대한 극진한 배려가 그 쩔쩔매시는 하나님의 인상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쩔쩔매시는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는 ‘에누리’의 메시지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에누리는 한 사람을 보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의 사이에 깃들어 있는 관계의 여백과 틈새를 가리킨다.
사람들 사이의 욕망이 드러내는 세밀한 편차와 이해관계의 곡절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인 터라, 3차원의 역사적 구도와 사회적 가치를 아우르면서도 이로써 포착하지 못하는 에누리의 진정성까지 배려하고자 하나님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진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각종 인정투쟁과 다양한 이해관계의 갈등선상에서 놓치기 쉬운 인간적 품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이는 또한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자리에서 요청되는 경청과 존중의 미덕, 갈등과 투쟁의 까칠한 입장에서 서로 한 걸음 물러서서 타협의 절충점을 모색해보려는 인내와 양보의 자세 같은 것이었다.
어느덧 하나님의 법정은 강렬한 목소리의 주장으로 난무하고 서로 소란스레 부대끼면서 딱 부러진 판결을 내리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 하나님 앞에 손을 들어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건 아들 두 놈이 양말을 놓고 다투면서 불거진 문제인데 내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곤란한 상황이었다. 첫째가 아침에 학교 갈 때 둘째 양말을 신었고, 둘째는 그게 자기가 아끼는 거라며 돌려달라고 대들었다.
첫째는 관대한 형제애로 그것도 못 나눠 신느냐며 동생의 편협함을 타박했고, 둘째는 형이 그걸 신으면 자기가 내일 신을 양말이 없다고 반격했다. 애들 엄마는 오늘 신속히 빨래해서 여분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고, 나는 또 새 양말을 사주겠다며 달랬지만, 애들은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이라며 각박하게 이전투구를 이어나갔다. 아, 그러나 이미 퇴정하려고 등을 돌린 하나님의 뒷모습이 내게 너무 쓸쓸하게 보였다. 또 한 차례 쩔쩔매실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입속에 맴돌던 내 소청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꿈을 깨고 샤워를 하다가 이 희한한 꿈의 막판에 2부 또는 후일담 격으로 꾼 또 다른 꿈의 파편이 떠올랐다. 그건 한 대학교의 후문에 여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광경이었다. 모 의대 레지던트 여학생 하나가 머그잔을 들고 서성거렸다. 사는 게 너무 외로워 거기 열린 노천카페에서 누구라도 붙잡고 모카커피 한 잔 마시러 간다고 했다. 다들 모인 거기에는 그와 살인적인 적대관계에 있던 사람도 평소의 굳은 얼굴을 푼 채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자기 내면에 이른바 ‘히든카드’ 없이, ‘정치적 복선과 음모’ 없이, ‘사전 의도’나 ‘각본’ 없이 몰려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외롭고 추운 사람들, 벌거벗은 생명들이었다. 긴장과 이해관계의 짐을 다 벗어버린 사람들인 게 분명해 보였다. 서로 조심스레 입을 열며 다감한 시선으로 말을 건네고 나누더니 서로의 사연에 공명하면서 몸을 감싸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삶의 짐을 지느라 바친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조촐한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온정어린 어울림의 자리 한 귀퉁이에 하늘 법정에서 쩔쩔매시던 하나님의 뒷모습도 얼핏 스쳤던 것 같다. / 차정식(한일장신대 신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