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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2011.7.3. 한신대학교회 설교



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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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7:15-27,
참고:  마태복음 12:33-37; 누가복음 6:43-44-49; 갈라디아서 5:16-26
 

1. 들어가는 말: 여름- 열매를 맺기 위한 노동의 시간

여름은 긴 장마와 찜통더위로 힘든 계절입니다. 그러나 여름이야말로 모든 식물들이 열매를 맺기 위하여 전력투구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태풍과 집중호우에도 불구하고, 작은 풀잎들에서 거대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열매를 맺기 위하여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사과나무에서는 사과를 얻게 되고, 밤나무에서는 밤을 얻게 됩니다. 대개 나무들의 이름은 그것들이 맺는 열매에 따라서 붙여져 있습니다. 배나무가 사과를 열매로 맺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바른 열매를 맺는 삶을 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2. 거짓 지도자 식별법

우선 예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고 경고하십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감언이설로 백성들을 현혹시키지만, 그들은 “양의 탈”을 쓴 “굶주린 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된 땅에서 고단한 삶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안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하여 애쓰는 종교사기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짓예언자들은 겉보기에는 모두 경건하고 훌륭해보이기 때문에 그들을 식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간단하고도 중요한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그들의 말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맺는 열매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17-18):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오늘날도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종교가, 특히 기독교가 조롱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들 가운데 “양의 탈”을 쓴 “굶주린 이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특권의식을 갖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탐욕과 악행을 정당화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파멸을 자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면서 교인들에게 맹목적인 순종만을 강요합니다. 그들은 특히 뛰어난 말재주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대형교회를 세우고 자신들의 왕국을 형성합니다. 그들은 종교재벌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회에 성공을 거둔 사람들로 행세합니다. 그들의 명함에는 화려한 직책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삶을 통해 맺는 열매들은 악취가 나는 악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타락한 목회자들 때문에 기독교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예언자들이 맺는 열매들을 통하여 그들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들도 그들이 맺는 열매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늘 더 큰 권세를 지닌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 투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일단 자리를 차지하면, 그 자리에서 국민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를 이용하여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데에 급급합니다. 그리고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공언하는 반면에, 그들은 국민을 위해 희생 봉사하겠다고 나서서 각종 공약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욕과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가운데에서 선한 인물이 있는지 판가름 하려면, 평소에 그들이 이뤄놓은 삶의 열매들을 보면 됩니다.

선거에서 당선된 자들은 실상 그들에게 허락된 권력행사의 기회를 통해서 국민들로부터 바른 지도자인지 거짓 지도자인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정치권력을 통해 그들이 맺을 열매가 분명히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자체 단체장부터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대통령까지도 그들이 그 권력의 자리에서 맺는 열매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내걸은 공약들의 실천여부를 통해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를 보면서 유권자들은 스스로가 사기를 당한 것인지, 혹은 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스스로가 맺은 악한 열매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 정치무대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스스로가 선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사람을 살리는 말이어야 하며, 그가 맺는 열매마다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과 유권자들은 지도자들을 판단할 때에 평소에 그들이 일상적인 삶에서 맺고 있는 열매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열매를 맺는 거짓 지도자들을 미리 식별하여 도태시킴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피해를 받지 않도록 그리고 역사를 후퇴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3.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런데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은 지도자로 나선 사람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특히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되기로 결단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마 7: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나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수신자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이 말하는 ‘하늘나라’는 다른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되는 자격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여, 주여’ 하고 늘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경건한 체하는 종교적 인간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한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기적을 행하는 종교인들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았으면,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마 7:23):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만일 우리가 이런 선언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여기에서 “‘불법’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에서 금지하는 것들을 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이웃사랑의 계명을 외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저자는 예수님의 문제제기를 더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눅 6:46):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이것은 당시의 제자들을 향한 책망입니다. 동시에 이 책망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것입니다.

교회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데에 몰두합니다. 모든 종교적 업적과 선행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업적을 내세워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이 경우에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들의 뜻을 정당화해주는 우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결국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는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무리들은 악한 열매들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악한 열매들에서 나오는 악취들 때문에 불신앙인들이 신앙인들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런 집은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넓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 같아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살아가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굳건한 토대 위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인은 예수께서 맺으신 선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8세기에 살았던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은 “반지의 우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소중한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쓴 희곡,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1779)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옛날 동양에 한 사람이 오팔(Opal) 보석 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 보석은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였으며, 그 반지를 지닌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호감을 사도록 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아들 중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반지를 물려주었으며, 반지를 물려받은 아들은 그 가문의 지도자가 되었다. … 그런데 그 반지가 결국 세 아들의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그는 세 아들을 똑 같이 사랑했으므로, 모조품을 두 개 더 만들어서 세 아들에게 각각 똑 같이 축복하면서 반지를 나누어주고 죽었다.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들은 서로 반지를 끼고 나타나 가문의 지도자가 되려 했다. 서로 어느 반지가 진짜인지 알아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재판관에게 가서 판결을 내려주기를 부탁한다. … 재판관은 판결을 내리는 대신에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너희들은 이 일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너희들 각자가 아버지로부터 반지를 얻었다면,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반지가 분명히 진짜라고 믿는다면, 아마도 너희 아버지는 이제 '하나의' 반지가 그의 가문에서 독재를 행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으려했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는 너희 셋을 모두다 똑같이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한 아들을 총애하기 위해 다른 두 아들들이 억압받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다. 자 됐다! 각자가 선입견에 현혹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라! 각자 자신의 반지에서 보석의 힘이 드러나도록 경쟁하려 노력하라! 온유함, 진심으로 온화함, 선한 행위, 하나님께 대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통하여, 보석의 힘이 너희들을 도울 수 있게 하라! 그리고 만일 그 보석의 힘들이 너희들의 자손 대대에 나타난다면, 나는 수천 년이 흐른 후에 그들을 다시금 이 재판정에 초대할 것이다. 그 때에 이 재판석에는 나보다 더 지혜로운 분이 앉아서 심판할 것이다. 이제 가라!”  

레씽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사랑을 실천하려 경쟁함으로써 스스로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집단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의 우월성을 입증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종교인들보다 더 큰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씽의 주장은 오늘 우리가 경청한 예수님의 요구와 같은 맥락 위에 있습니다.

4. 맺는 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

며칠 전에 동네 야산을 산책하였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어느 곳은 땅이 질퍽거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풀잎이나 돌멩이, 혹은 벽돌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을 위해 배려한 그 손길이야말로 천사의 손길처럼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런데 쉴만한 곳에 자리 잡고 앉으니, 주변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너저분하였습니다. 빈 생수병, 휴지, 비닐봉투, 심지어 고기를 구워먹은 철망까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두고 떠난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매우 불쾌하였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대신하여 그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의 무책임한 행위가 그들이 남긴 쓰레기들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같은 야산을 걸으면서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천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선한열매를 맺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이기적인 악한 열매로 악취를 남기고 맙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향해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5:22-23).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육체의 행실’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바울이 열거하는 육체의 행실들이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5:19-21)입니다. 결국 육체의 행실들이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생활방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란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이처럼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러한 선한 삶을 살도록 기대하고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영광이고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각자가 소중한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다하였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맺어진 삶의 열매에 따라서 평가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이전에, 이미 사람들이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이름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서도 불신앙인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면, 어찌 주님께서 우리를 신앙인으로 기억하시겠습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는 풀잎들과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들 또한 선한 열매를 맺는 신앙인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맺는 선한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이웃들이 기쁨을 얻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크나 큰 삶의 보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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