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

이충범·협성대 신학과 교수

7월의 첫 주말이었고 주말은 평일과 뭔가 달라도 달랐다. 방학 중인 내가 요일감각이 무뎌져서 그만 경계심을 늦추고 말았던 것이다. 기도하던 중 잠들어 버린 나는 깊이 잠들기도 전에 큰 소음에 깼다. 야식 배달원의 쿵쾅거리는 발소리, 다른 투숙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 게다가 발암물질의 냄새까지 스며든다. 조심스레 문을 살짝 열어보니 웃통을 벗은 중년사내들이 아예 방문을 다 열어놓고 화투놀이에 빠져 있었다. 애써 다시 잠을 청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얄팍한 내 배낭 안에 비행기에서 주는 귀마개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첫날 밤은 대책 없는 소음과 싸우다가 내 육체가 버티지 못하는 시점에 정신을 잃었다.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밤새 잠을 설친 통에 8시가 다 되서야 눈이 떠졌다. 속으로 어젯밤 그 사내들 욕을 하며 부리나케 준비를 해서 여관을 나선다. 장마 중인데도 아침 바람이 상쾌했다. 해남에서 강진까지는 직선거리로 20킬로가 넘는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윤선도 선생 고가인 녹우당과 대흥사를 그냥 지나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곳을 다 거쳐서 삼남대로인 55번 국도를 올라타 강진까지 가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킬로가 넘는다. 게다가 오르막 산길도 있고 원점으로 되돌아 와야 하는 지겨운 길들도 있다. 첫날이고 그 많은 거리를 걷자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결정을 미루고 일단 읍내에 있는 해남향교부터 들러 가기로 했다. 아뿔싸, 잠겨있는 향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문틈으로 엿보는 갈증에 나는 고산선생의 고택을 그냥 지나쳐 갈 수 없었다. 부리나케 아침을 챙겨먹는데 옆에 앉아 있는 초로의 아저씨들이 “그 할아버지가 어쩌구...”하는 말씀들을 나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이 말하는 “그 할아버지”는 고산선생이셨다. 아마도 해남윤씨의 후예들인 듯하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임에 대한 기도의 응답이랄까? 그 분들의 대화를 엿듣고는 녹우당으로 가는 길이 왠지 하나님의 뜻처럼 느껴졌다.

녹우당 앞에 도착하자 기린보다 키 큰 해송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어릴 때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어른들이 9시 뉴스를 열심히 본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소나무를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가 하는 점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소나무가 나타나면 “어허~ 그 놈 참 이쁘다”를 연발하시는 어른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소나무 분재를 애지중지 키우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솔내음을 맡다가 녹우당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학력지위빈부의 차이와 무관하게 삶의 품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진 자들의 사치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명문타령이라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15위권 이상인 우리나라를 타인들이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품위의 여부 아닐까 생각한다. 자동차 크기, 집의 위치, 명품 옷 착용 여부, 사회적 지위 여부, 교육정도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너도 나도 커다란 간판달기를 경쟁하는 한 우리는 천박한 졸부국은 될지언정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적막한 녹우당에서 만난 고산선생과 해남 윤씨들의 삶의 흔적들은 소나무의 품위와 더불어 사람의 품위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향기에 젖어 있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대흥사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농경지를 가로질러 걷다보면 갑자기 발 앞에서 무엇인가 펄쩍 뛰어올라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산에 나무들이 울창해지고 나서 꿩의 숫자가 많이 늘어난 게다. 첫날의 시작이라 아직 다리가 싱싱해서인지 어렵지 않게 대흥사 입구에 도달하였다. 게다가 초입의 멋진 유선관은 이곳을 빼먹지 않고 들른 내 자신의 선택을 너무 자랑스럽게 했다. 금방이라도 흰 도포에 갓을 쓴 선비들이 튀어나올 듯한 그 멋진 전통 건축물을 뒤로 하고 대흥사로 뛰어 오른다. 드디어 절 입구의 피안교가 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이제 세상의 집착을 다 버리고 피안의 세계, 망아의 세계로 들어서는 숨 가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피안교를 건너자마자 파전 굽는 냄새와 함께 그 지겨운 가건물 상점이 그곳까지 침범하여 떡하니 버티고 있다. 지겹다 못해 주인까지 미워지려고 하는데 물건을 파는 30대 여성의 얼굴이 절의 모습처럼 너무도 청순하고 선해 보여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피하고 어떻게 숨어 산다는 말인가? 웅장한 해탈문, 마치 서원건축과 유사한 대흥사 특유의 아름다운 절집들, 이끼를 머금은 기단석들과 계단, 본존불이 모셔진 대웅전, 화려하지 않은 탱화들을 보면서 나는 뭔가 성스러움을 느낀다. 17세기부터 건립되었다는 부도탑들은 삶과 죽음이 공존해 있는 동서양 수도원들의 공통분모를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엔 속(俗)이 함께 움직인다. 파전 굽는 가건물 상점은 차치하고라도 저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지을 때 흘린 이름 모를 민중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차량이 통제된 절길로 올라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억이면 산다는 최고급 외제차에서 내리는 민머리를 보니 이젠 속이 뒤틀린다. 이런 곳에서도 복잡한 두 마음이 왕래소통을 하는 판국에 내가 무엇을 삼가고 어떻게 세상을 피해살 수 있을까 싶다. 그저 대웅전 바로 앞에서 약수를 물병 가득 얻고 좋은 물을 주신 분께 감사를 드려본다.

내려오는 길에 시어머니 제사라서 얼른 다 팔고 제삿밥 하러 가야 한다는 아주머니께 삶은 옥수수 2개를 사서 점심을 대신하기로 했다. 허나 옥수수 귀신인 나에게 점심까지 기다릴 인내심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옥수수를 씹으며 산을 내려오면서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의문점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참 희한했다. 농로를 걷는데 수로의 물이 뿌옇게 보였다. 그래서 그저 농약이나 비료가 희석되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왜냐하면 내겐 어릴 때의 농약희석 광경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뿌연 물은 대흥사를 올라가는 계곡의 물로 이어졌다. 투명하게 맑은 계곡물은 이곳엔 없었다. 그래서 또 아마도 절집에서 쓰는 하수와 섞여 내려오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절집에 올라가서 그 안에 있는 작은 연못을 보았는데 이 연못의 색은 아예 우윳빛깔이다. 도대체 왜 이곳 물은 맑지 않고 흰 우유를 섞은 것 같은 색을 띠고 있을까?

물 색깔에 대하여 온갖 추측을 다 하다 보니 대흥사 버스 정류장까지 다 내려왔다. 내친 김에 속도를 내자 싶어 살살 조깅을 하며 삼산면 삼거리로 향했다. 삼거리에서 827번 지방도로를 타고 두륜산을 빼앵 돌아 북일면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시간을 단축해야만 했다. 하필 장마가 잠시 걷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여간 더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자 드디어 삼거리가 보인다. 삼거리 버스 정류장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가 일단 차가운 물부터 하나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모자로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땀을 식혀본다.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주어 온몸에 젖은 땀이 서늘하게 느껴질 무렵 주책없게도 잠이 솔솔 온다. 밤잠도 설쳤지, 대흥사 왕복 행군을 했지, 게다가 옥수수도 2개씩 먹어치웠지, 잠이 안 오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가야할 길은 먼데 그만 나는 버스정류장 벤치에 슬며시 누워버렸다. 아무도 없는 한여름 시골 정류장 위의 파란 하늘엔 구름과 날파리들이 함께 떠다닌다. 나도 모르게 슬쩍 눈이 감긴다. 그렇게 아주 순간의 단잠에 빠져든 나는 비몽사몽간 들리는 인기척에 벌떡 일어났다. 뾰족구두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내가 누운 벤치로 다가와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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