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영종 칼럼] 노숙인들과 만나고 나서

이수교회 권영종 목사(기장 총회 前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이수교회 권영종 목사. ⓒ베리타스 DB 
노숙인이란 말이 퍽 낯선 것은 그 말의 의미가 단순히 길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물론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사람과 방안에서 잠을 자는 나같은 사람의 처지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그들과 내가 다른 것은 이 세상에 자신 곁에 아무도 없이 그저 홀홀 단신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그들과 내가 다릅니다. 그들은 정말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쓸데 없는 고집과 절대로 끊을 수없는 술에 대한 중독입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 서너 명씩이나 문을 열고 찾아옵니다. 그리곤 마치 맡긴 돈을 찾아가듯 돈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중에 몇 명은 욕을 하면서 사무실을 나가고 나머지 몇 명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기가 막힌 과거를 이야기 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제가 잊지 못하는 노숙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대학도 나온 엘리트입니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크게 하였는데 도중에 부도가 나서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도망해 왔습니다. 고향에는 6살짜리 아들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 사업에 부도가 나서 그 아내는 그 충격으로 암이 걸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속 마음을 글로 써서 제게 주었습니다.

“2007년 7월12일 19시 10분발 설봉호 (제주항-부산항). 점점 멀어져 가는 제주항을 바라보며 느꼈던 처절함,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6살난 아들놈은 무엇을 느꼈는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때 느닷없이 큰절을 해 날 놀래키고 울렸었다. 아내의 얼굴을 차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돌아설 때 그 처연한 표정과 날 위해 눈물 흘리던 아내의 그때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밤새 갑판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바다에 모두 버리고 앞으로의 삶은 아내와 아들만을 위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제주를 떠나온지 이 년이란 시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의 내 모습에서는 그 당시의 비장했던 맹세와 각오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나의 잘못된 과거의 삶 때문에 지금까지도 가혹한 현실속에 고초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죄스럼과 미안함 뿐이다. 점점 핑계가 늘어가고 나태해지는 생활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다시 하루 빨리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는데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생각따로 행동따로 걱정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무슨 일이든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는 길 뿐임을 잘 안다. 이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 노숙인에게서 나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이란 그 사람 스스로 이루어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관심하고 격려하고 동정이 아니라 용기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그저 돈 몇 푼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고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할 수 있는 재활시스템이 절실합니다.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해비타트같은 기관에서 집을 지어 주고, 병원에서 알콜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건강을 회복시키고,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한 가정을 회복시키고, 우리 사회에 철저하게 버려져 있는 노숙인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하고 떳떳한 시민으로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지금 길 위에서 잠자고 있지 않은 우리들이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숙인 농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땀흘리며 회복과 자립할 수 있는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함께 하실 분들을 찾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노숙인들이 이 땅에서 절망하지 않는 그 날이 속히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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