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로마 철학을 만났을 때

5일 기독교사상학교 첫 강의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김진한 기자
5일 오후 교회다움에서 열린 ‘기독교사상학교’(Christian Thought School)’의 첫 수업시간. 50여 명의 수강생들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의 사상적 조우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강의는 2시간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이어진 질의응답시간도 활발하게 진행돼 전체일정은 10시가 되서야 끝났다.

과거에도 익히 들어왔고, 종종 저서들을 통해서도 만난 적이 있었던 신앙의 大선배들이었으나 이날 만큼은 그 만남의 깊이가 또 달랐다. 강사로 나선 카톨릭대 박승찬 교수(철학과)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두 교부들의 사상을 조명하기에 앞서, 당시 시대 상황을 꿰뚫어 보듯 일목요연하게 잘 다듬어 설명했다.

문화를 떼어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당대의 문화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 그리스도교. 아우그스티누스(354∼430)가 태어나 활동했던 시대에도 이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관계가 논쟁의 주요 대상이었다. 당시엔 특히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로마 철학을 수용하느냐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며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때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로마 철학을 수용하지 않아도 선교적 측면에 있어 당대의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됐던 시대 정황을 살펴본 뒤 당대의 철학을 수용하는 쪽을 택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가 되어 변론의 중심에 서기까지는 그의 ‘고백록’에서도 나오듯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카르타고에서 철학을 만난 그는 한때 마니교에 심취해 마니교의 신봉자가 되기도 했으며 젊은 날 타는 듯한 욕정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론 구제 불가능한 속물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무화과나무에서 울음을 터뜨린 그는 근처에서 아이들이 부른 <집어라, 읽어라>는 노래를 듣고, 가까이 있는 책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어 펼쳤고, 펼친 장에서 본 성경 구절은 그의 결정적인 회심의 계기가 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육신을 돌보지 말라는 로마서의 성경 구절을 보는 순간 아우구스티누스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이 구절이야말로 회개를 요청하는 신의 명령이라고 느낀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성경을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은 그리스도교의 신봉자인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니교를 박차고 나온 아우구스티누스였으나 여전히 성서에 많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에 자신의 성서 해석학적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스승을 찾았으며 우연히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그가 가진 궁금증들을 하나 둘 씩 해소하기에 이른다.

박승찬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그리스문화, 특히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와 융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당대 그리스·로마 철학을 수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철학을 한 단계 발전시켜 그리스도교에 접목, 그리스도교가 타 종교에 비해 강력한 경쟁력 혹은 영향력을 갖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진정한 행복의 추구’ ‘무로부터의 창조’ ‘사랑의 윤리’ 그리고 그의 방대한 저작 『신국론』에서 나타난 ‘역사철학’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 중에서도 특히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받아들인 플라톤 철학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박승찬 교수는 “플라톤 철학에서 나타나는 물질적 생성계와 인간 정신을 초월한 신에 대한 열망은 신의 나라에 대한 추구에, 조물주라는 개념은 창조주 사상에, 플로티누스의 빛의 사상은 신약성서의 말씀의 빛으로 승화 연결시켰다”고 했다.

이 같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이뤄진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사상 사이의 융합은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의 융합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거의 천년에 걸쳐 서구 사상사를 규정하는 공통적인 유산으로 자리잡게 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신플라톤주의, 아랍 철학자들의 사상을 비판적인 안목에서 선별적으로 수용해 그리스도교적인 신학사상과 교부들의 사상에 접목함으로써 위대한 체계를 이룩한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년)다.

『신학대전』과 그의 방대한 작품들에서 다뤄진 무수히 많은 내용들은 잃어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주 그의 철학을 ‘영원의 철학(Philosophia perennis)’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박승찬 교수는 “토마스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만이 아니라, 이를 『신학대전』과 같은 훌륭한 결과물들이나 학문활동의 자세 속에서 확실히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전했다.

교부철학 이래 철학을 자주 신학의 기초학문 또는 신학의 일부로 수용하려던 경향과는 달리, 신의 계시와 은총을 토대로 한 신학과는 구별되는 순수 이성만으로 세계와 그 원인들에 대해 탐구하는 철학의 역할이 새롭게 된 것이라고 박 교수는 평했다.

초기 기독교 사상을 꿰뚫는 양대 기둥과의 만남에서 깊은 가르침을 받은 수강자들은 강의 중간 중간에 탄성을 내며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에 빠져 들었다. 수강자들은 “초기 교부들의 높은 수준의 사상적 체계와 정신 세계를 실감한 날”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기독교인의 인문학적 소양 함양과 신학적 갈증해결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현대기독교아카데미가 개설한 ‘기독교사상학교’는 「루터 칼빈 웨슬리」(이양호 교수·연세대), 「슐라이에르마허와 바르트」(김명용 교수·장신대), 「본회퍼와 세속화신학」(강성영 교수·한신대), 「불트만과 틸리히」(황민효 박사·장신대), 「판넨베르크와 몰트만」(김동춘 교수·백석대), 「과정신학」(이세형 교수·협성대), 「해방신학과 종교다원주의」(류장현 교수·한신대) 등을 남겨두고 있다. 수강료는 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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