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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나가수’, 패자에게 잔혹한 우리의 자화상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노무현 정부 때 문화관광부장관을 역임한 배우 김명곤이 최근 기자협회보에 <‘나는 가수다’ 잔혹한 게임규칙을 바꿔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김명곤은 위엣 글에서 꼴찌가 탈락하는 ‘나가수’의 게임규칙이 잔혹하다며 게임규칙을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나가수 출연자들은 가수가 되기 위해 서바이벌 경연에 목을 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내로라하는 대가(大家)급의 가수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 노래도 아닌 남의 노래 한 두곡을 불러서 꼴찌가 되는 순간 가수로서의 명성과 자존심을 구긴 체 무대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당하는 것은 분명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김명곤은 <순위 발표를 할 때면 노래를 통한 감동은 다 잊어버리고 불안과 초조에 떠는 가수들의 표정을 보며 가학적 취미를 즐기는 자신을 보고서 몸서리가 쳐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누가 꼴등으로 탈락할까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며 누가 죽을까 흥미의 눈으로 구경한 로마시민의 가학적인 취미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고백했습니다. 김명곤은 꼴등을 탈락시켜 무대에서 퇴출시키는 대신 차라리 가장 감동을 준 가수를 뽑아 ‘가수왕’이라는 영광과 찬사를 몰아주고 상금도 듬뿍 주며, 멋지게 고별공연도 해서 떠나보내면 지금처럼 꼴찌를 쫓아내는 냉혹한 무한서바이벌게임이 아니라 훨씬 따뜻한 축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김명곤의 지적과 제안은 방송제작자는 물론이고 ‘나가수’에 열광하고 있는 시청자인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가수 프로그램은 가수들을 불필요하게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자에겐 퇴출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습니다. 나가수에 나오는 가수들이 서로 서바이벌 경쟁을 해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록커 윤도현과 R&B 가수 박정현이 서로 경쟁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긴장과 초초함 속에 노래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단지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가수들에게 이런 경쟁을 시키는 거라면 우리는 김명곤의 표현대로 이런 ‘잔혹서바이벌게임의 공범자가 되는 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런 잔혹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노래를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승자에게 상을 주는 대신 패자에게 수치심과 벌을 주는 나가수의 게임규칙 또한 잔혹합니다. 제 나름 실력 있는 가수로 자부해온 사람들이 한순간에 무대에 선 동료가수 중 자신이 가장 실력 없는 가수로 판정받고 무대에서 쫓겨날 때 그가 느꼈을 수치심과 자존심에 입은 상처는 아무래도 괜찮은 걸까요?

거제도의 작은 교회에서 처음 담임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교인이라고 해봐야 서른 명 남짓 되는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교회 형편이 어렵다보니 모든 것이 열악했습니다. 교회와 사택은 오래되고 낡아서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특히 사택은 단칸방에 부엌 하나 달랑 달려있었는데 그나마 일어나 손을 위로 뻗으면 천장에 손이 닿을 정도로 천장이 낮았습니다. 때문에 여름엔 덥고 겨울엔 무척 추웠습니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뉴스를 보려고 TV를 켰는데 모 건설회사의 아파트광고가 나왔습니다. 제 뇌리에는 그 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성을 배경으로 이런 광고카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그 광고를 처음 보는 순간 제 마음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한순간에 얼어붙었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던 다섯 살 난 제 딸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저 광고를 보며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할까? 비가 오면 빗물이 벽을 타고 내려와 벽지는 뜨고 장판아래는 흥건히 물이 고이는 집,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들썩거리는 슬레이트 지붕, 그 아래 손바닥만 한 좁은 단칸방, 그 안에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를 죄다 쑤셔 박아 놓아 방인지 창고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가는 방, 그 속에서 인형놀이 할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신발장 앞에 인형을 모조리 끌어다 놓고 그곳을 자기와 인형의 집이라며 웃으며 노는 다섯 살 난 이 아이에게 이 집은 대체 어떤 집일까? 저 광고를 보며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할까?
 
저는 그 때 우리사회가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인지를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고급 아파트를 지어서 파는 건설회사는 그들이 지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고객들에게 당신은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사는 우월한 사람이라는 우월감과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 광고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광고에 나온 그 고급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집이 없어 전세나 월세방을 전전하는 사람들, 단칸방에 몇 식구가 비벼대며 사는 사람들, 지친 몸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쪽방촌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광고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이 말은 번듯한 집의 주인이 되어 사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산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안겨 줄지는 몰라도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심한 모멸감과 박탈감, 그리고 깊은 자괴감을 안겨준 매우 폭력적인 말입니다. 단지 번듯한 집에 살지 못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모욕하는 매우 오만하고 모욕적인 말입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와 의미가 그가 주거하는 집의 규모와 값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 광고만큼 물신숭배에 절은 천박한 말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붓다는 호화로운 왕궁의 생활을 버리고 떠나와 나무 한 그루 아래 앉아 도를 깨달았고 예수는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면 붓다와 예수,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요?

세상엔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니, 한 개인의 삶을 놓고 보아도 살아가면서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습니다. 때문에 패자에게 가혹하고 폭력적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성공보다는 실패를, 승리보다는 패배를 더 많이 경험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승자의 쾌감, 여유, 자부심은 언제나 소수의 몫이고 나머지는 패배감과 자기모멸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입니다. ‘나가수’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패자에게 잔혹한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입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조차 한 순간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수치심을 맛보며 무대에서 내몰림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이 입학한다는 카이스트의 학생들도 학업경쟁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강요된 죽음입니다. 이제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패자쪽박, 살아남으려면 승리하라, 억울하면 출세해라, 모두가 당연히 여겨온 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야 합니다.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패자에게 수치와 모욕, 자괴감을 안기는 대신 패자에게 기회를 주고 격려하며, 패자로부터 자존감을 빼앗지 않는 따뜻한 사회가 될 때 진정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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