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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 빈 배로 흘러가지 못하는 죄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작은 배와 부딪치면/ 그가 비록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당장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이유는/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은 배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치려 들겠는가?>

장자(莊子) 외편(外篇) 산목(山木) 편에 나오는 ‘빈 배(虛舟)’의 한 대목입니다. 시남자(市南子)라는 사람이 노나라 임금에게 들려준 말씀이라고 합니다. 곱씹을수록 깊은 지혜를 주는 말씀입니다. 인생을 흔히 항해에 비유합니다. 모두 세월이라는 강을 흘러갑니다. 강 위에는 내 배만 있지 않습니다. 무수한 다른 배들이 함께 흘러갑니다. 배들이 강물을 따라가다 보면 서로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돌풍을 만나거나 이상조류에 휩쓸리면 뜻하지 않게 서로 부딪칠 수 있습니다. 배가 서로 부딪치더라도 만약 어느 하나의 배가 빈 배라면 다툴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툴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 배를 붙들고 시비할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부딪쳐오는 빈 배를 피하지 못한 자신을 탓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딪친 두 배에 모두 사람이 타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그 때는 소란이 일어납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서로에게 보상을 요구합니다. 어느 쪽도 순순히 책임을 인정하려들지 않을 때 고성과 욕설이 오갑니다. 배끼리 부딪친 것보다 더 큰 충돌이 배 안에서 일어납니다. 두 배는 난장판이 됩니다. 하지만 어느 배이든 한 쪽이 누구도 타고 있지 않은 빈 배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장자의 깨달음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치려 들겠는가?>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아무리 내가 조심하며 살려고 해도 부딪쳐오는 배를 피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경험이 많은 노련한 운전자가 제 아무리 조심스럽게 방어운전을 해도 신호를 무시하거나 차선을 넘어 부딪쳐오는 차는 피할 도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살이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내가 조심조심 노를 저어 생의 강을 흘러가려해도 느닷없이 부딪쳐오는 배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차피 나 홀로 한가롭게 흘러가는 강이 아니라면 다른 인생의 배와 부딪치는 충돌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충돌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장자는 만약 서로 부딪치는 배 어느 한 쪽이라도 ‘빈 배’라면 결코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단지 배끼리 부딪친다고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다툼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시비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배는 말이 없습니다. 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란과 다툼은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끼리 일으키는 것입니다. 충돌의 원인을 놓고 시비를 가리는 것도 사람이 가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느 한 배라도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빈 배’라면 시비를 가릴 대상도 없고, 다투고 소란을 피울 대상도 없습니다. <빈 배가 그의 작은 배와 부딪치면/ 그가 비록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배는 쿵 하고 잠깐 부딪친 후 다시 흐르는 물결을 따라 각기 제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빈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충돌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평 가운데 살 것입니다. 예수는 이어서 말합니다. <화평을 이루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빈 배’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화가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자신의 배가 부딪친 사람들 가운데 ‘빈 배’의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와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예수를 통해 삶의 회복과 기쁨, 평화를 얻었습니다. 병든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 세리, 창기, 이방인, 그들은 ‘빈 배’였습니다.

하지만 배 안에 무언가를 가득히 실은 인생들은 예수의 배와 부딪쳤을 때 예수와 충돌했습니다. 인도의 신비주의 철학자 라즈니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대한 성인일지라도 분노를 만들어낸다. 그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 공회원, 바리새인, 서기관, 관원, 그들의 배는 그들 자신의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배는 수호해야 할 율법과 종교적 권위, 정치권력과 사회적 기득권으로 가득한 ‘만선(滿船)’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빈 배’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배에 다가오는 예수의 배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지 마라” “우리 것을 건드리지 마라” “우리를 떠나라” “사라져라” “죽어라” 예수는 말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알라;요15:18>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에 대해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요7:7>

장자는 말합니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작은 배와 부딪치면/ 그가 비록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배와 부딪친 인생들 가운데 예수에게 분노하고 예수와 충돌한 인생들은 하나같이 ‘빈 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로 가득한 배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충돌의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빈 배’가 되어 생의 강물을 흘러가지 못하는 죄 때문입니다. 배 안에 내가 너무 많습니다. 하늘을 버리고 ‘빈 배’로 세상에 오신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서도 정작 우리 배 안은 내 것으로 너무 가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분노하고 소리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이유입니다. ‘빈 배’로 생의 강을 흘러가지 못하는 죄가 우리 모두에게 가득합니다. 내가 ‘빈 배’가 되어 흘러갈 수만 있다면 누가 와서 부딪쳐도 결코 충돌하지 않고 다시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갈 뿐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치려 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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