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 칼럼] 눈 먼 종교인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지난 4월 7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가 주관하는 사순절 평화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기도회에 곧이어 이재정 전통일부장관의 특강이 이어졌습니다. <금강산이 열려야 한반도 평화가 보인다>라는 제목의 강연이었습니다. 이재정 전장관은 금강산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자 그동안 각종 남북회담과 대화의 장소였으므로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닫아버린 금강산관광의 길을 다시 여는 것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우선해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한 여자분이 일어나 이재정 전장관의 주장을 반박하며 어떠한 북한지원도 하지 말아야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발언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쌀을 지원해주는 것은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같다. 북한을 지원해주면 그것은 북한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날 잡아 먹으라는 꼴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어쩔 것인가? 남한에도 배고픈 사람은 많다. 북한을 도와서는 절대 안 된다.> 사실 그 분의 주장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북한 돕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소리입니다. 정작 그 분의 발언이 심각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분은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주님이 제게 말씀하십니다.” “저도 기도하는 사람인데 북한을 돕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예수께서는 그 분에게 북한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는 음성을 직접 들려주신 셈이 됩니다. 북한은 지금 국제사회가 시급히 식량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을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지난 4월 7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미 의회를 방문한 후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의 식량사정 악화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북한과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미국조차도 다시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여자분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을 도우려는 국제사회의 이러한 인도적인 노력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들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6:35>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나 심지어 악한 자에게조차도 인자하신 분이라고 예수는 말씀했습니다. 때문에 원수를 선대하고 조건 없이 도와주는 것은 하늘의 상을 받을 일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예수의 메시지는 결코 너희 원수를 굶어죽기까지 내버려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롬12:20> 그러면 북한을 돕지 말라고 자신에게 주님이 말씀하셨다는 그 여자분의 주장은 대체 무얼까요?

종교가 갈등과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진화,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규명한 책, 존 티한의 <신의 이름으로; 종교폭력의 진화적 기원>에 보면 재미있는 실험이야기가 나옵니다. 심리학자 아짐 샤리프와 아라 노렌자얀은 ‘독재자게임(dictator game)’이라고 불리는 실험을 합니다. A와 B, 두 사람 중 A에게 돈을 주고 A가 B에게 그 돈의 일부를 나누어주는 게임입니다. A와 B는 서로 누군지 모르는 사이입니다. 이 게임을 ‘독재자게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A가 B에게 돈을 얼마큼 나누어주든 오직 A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는 무조건 A가 주는 대로 받아야합니다. 어떤 의견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돈을 나누는 과정에서 A는 독재자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독재자인 A는 최대한 많은 돈을 자신이 가지고 B에게는 가급적 적은 돈을 주려하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탐욕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두 심리학자는 이 게임에 약간의 변형을 가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두 그룹 중 한쪽 그룹의 A에게 열 개의 문장을 읽도록 했습니다. 각 문장은 모두 다섯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열 개의 문장 중에서 다섯 문장은 ‘정령(精靈)’, ‘신성한’, ‘하나님’, ‘거룩한’ 같은 종교적인 단어가 들어간 문장입니다. 반면에 다른 쪽 그룹의 A에게는 아무런 문장도 읽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두 그룹의 A에게 각각 돈을 준 다음 B에게 돈을 나누어주게 했습니다. 그러자 흥미 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런 문장도 읽지 않고 돈을 나누어준 A보다는 종교적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읽고 돈을 나누어준 A가 B에게 훨씬 많은 돈을 나누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적 단어를 접한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관대해졌음이 실험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A의 종교가 무엇인지와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심지어 무신론자에게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조차도 종교적 단어를 사용한 뒤에 훨씬 관대해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명색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인색하고 야박하고 강퍅한 이유는 무얼까요? 종교적인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어째서 종교적인 단어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강퍅할까요? 위의 실험결과에 비추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신앙인이 비신앙인보다 관대해지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입니다. 무신론자조차도 종교적인 단어를 접했을 때 더욱 관대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신앙인이 무신론자보다도 더 인색하고 강퍅한 것은 그의 신앙이 참신앙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참종교인, 참신앙인이라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어찌 자신과 이념, 사상이 다른 사람은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자칭 신앙인이라면서도 굶어죽을 위기에 빠져있는 북한 동포에게 쌀을 보내주자는 인도적인 주장조차 좌파 종북 빨갱이운운하며 색안경을 쓰고 노려보고 시비하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이념의 비늘에 가려 신앙의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는 하나님을 이들은 정말 믿는 걸까요? 원수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는 예수를 이들은 정말 믿는 걸까요? 이들은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믿을 따름이지 진정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이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이념과 신앙의 가르침이 서로 충돌할 때 이념대신 신앙의 가르침을 좇아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자신의 미움과 원수사랑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서로 충돌할 때 미움대신 예수의 가르침을 좇아야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펴며 그걸 두고 예수의 메시지라고 우기는 것은 예수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이념과 사상은 영원한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사랑만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념과 사상 때문에 사랑을 버린다면 더 이상 종교가 아닙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는 더더욱 아닙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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