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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 기도 세레모니(Ceremony) 문제 있다

지난 달 27일, 프랑스 AS 모나코 팀에서 뛰고 있는 박주영 선수가 SM캉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몰아넣으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골을 넣은 후 박주영 선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기도 세레모니가 이어졌습니다.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고개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난 3일,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은 영부인과 함께 단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축구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무릎을 꿇든 대통령이 단상에서 무릎을 꿇든 모두 개인의 자유로운 신앙의 표출인데 곁에서 시비할 것이 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비록 개인의 자유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유의 행사가 제한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박주영 선수의 기도 세레모니와 대통령의 무릎 꿇은 기도에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바탕에 있습니다.

미국의 성공회 감독이자 신학자인 존 쉘비 스퐁은 유대인의 신관(神觀)을 가리켜 부족적(部族的) 신관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퐁 감독에 따르면 부족은 ‘확대된 자기(自己)’이고 인류는 생존을 위해 부족주의(Tribalism)를 선택해왔습니다. 부족주의는 인간의 생활 모든 영역에 존재합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경기에서 각기 자기 나라의 국기로 치장을 하고 열렬히 응원하는 것이나 연고전 같은 학교 대항경기에서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까지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것은 모두 자기 부족에 대한 충성심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부족주의는 인종, 국가, 정치, 문화, 스포츠, 종교 등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의 자의식입니다.

모든 종교는 부족의 보호자를 숭배하는 부족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스퐁은 그의 책 『Why Christianity must Change or Die』(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집트인이었다면 유대인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인들에게 엄청난 재앙과 폭력을 행사한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여겨질까? 만약 우리가 가나안인 이었다면 유대인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파괴하고 약탈하고 살육할 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여겨질까? 만약 우리가 블레셋 사람이었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유대인과의 충돌에서 늘 유대인의 편을 드는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여겨질까?

우리가 만약 이집트인이거나 가나안인 이거나 블레셋인 이었다면 우리의 재산을 약탈하고 우리의 어린자식까지 살육할 것을 명령하고 늘 우리를 적대하며 우리에게 재앙을 퍼붓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보편적인 사랑의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단지 유대인이라는 한 부족의 보호자로서 숭배하는 부족주의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유대교의 신관을 부족적 신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부족주의는 근본적으로 배타적 성격을 띱니다. 이러한 배타적 부족주의의 경계선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일개 부족만 감싸고도는 부족적 신이 아니라 보편적, 우주적 사랑의 신으로 소개한 분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인간이 상호간에 높이 쌓아놓은 부족적 경계선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유대인은 인종적으로는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을, 성적으로는 여성을, 종교적으로는 병자와 정결치 못한 자를 자신과 뚜렷이 구분 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그들을 신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쌓아올린 이 높은 경계의 담 속에 하나님마저 가두어버렸습니다.

예수는 이 담을 허물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3~14). 바울은 부족주의를 뛰어넘으려 했던 예수의 마음을 정확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의 마지막 당부는 속 좁은 유대교의 부족주의를 넘어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박주영 선수의 기도 세레모니가 안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박주영 선수는 하나님을 한낱 축구경기에서조차도 반드시 자신이 택한 자 혹은 택한 편이 골을 넣고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부족신의 모습으로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축구장은 신앙심을 겨루는 장이 아닙니다. 축구경기는 신앙의 소유 여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축구경기마저 신앙심을 가진 자가 승리하도록 역사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재능 있는 축구선수보다는 기도 많이 하는 수도승을 내보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서 골을 넣었다고, 하나님이 도와서 승리했다고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은 순수한 스포츠에 종교적 쇼비니즘(chauvinism)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축구경기에서조차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주장하는 이 몸짓이 하나님을 속 좁은 부족신으로 퇴행시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보란 듯이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은 기독교인들만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에게 대통령의 권력을 쥐어준 주권자 가운데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대통령은 종교를 불문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입니다. 때문에 그 자신의 신앙이 무엇이든 공공연하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이슬람교도라서 공무 중에도 하루에 다섯 번씩 꼬박꼬박 땅바닥에 엎드려 메카를 향해 절하며 알라신에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심정이 어떨까요? 무릎 꿇고 기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이 감동하리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당장 기독교 이외의 종교인들은 불쾌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평소 국민의 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대통령의 오만함에 질린 사람들은 싸늘한 냉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레모니로서의 기도는 하나님도 사람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예수는 가르치셨습니다. 기도조차도 요란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 말씀을 깊이 새겨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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