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가상세계들과 근대성의 신화들: 게임, 게이머, 온라인의 초월성(1)

로버트 제라시(Robert M. Geraci)·미국 뉴욕 맨하탄 칼리지 종교학자

신학-기술-철학 간 다중학문 네트워크를 위해 결성된 신학-기술 공생 네트워크(Korean Theology and Technology Network, 대표 김은혜)가 지난 21일 미국 뉴욕 맨하탄 칼리지의 종교학자 로버트 제라시(Robert Geraci)를 초청해 "인공지능과가상현실 시대의 종교"를 주제로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주최측의 협조를 얻어 로버트 제라시 교수의 발제문 전문을 2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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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주최측 제공)
▲신학-기술-철학 간 다중학문 네트워크를 위해 결성된 신학-기술 공생 네트워크(Korean Theology and Technology Network, 대표 김은혜)가 지난 21일 미국 뉴욕 맨하탄 칼리지의 종교학자 로버트 제라시(Robert Geraci)를 초청해 "인공지능과가상현실 시대의 종교"를 주제로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가상세계들과 근대성의 신화들: 게임, 게이머, 온라인의 초월성

로버트 제라시(Robert M. Geraci)

서론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그의 사이버펑크 소설의 고전 『뉴로맨서』(Neuromancer, 1983)에서 사이버 공간은 우리가 "몸 없는 환희"(bodiless exultation)를 경험할 수 있는 "합의된 환각"(consensual hallucination)이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은 그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 1991)에서 우리가 어떻게 메타버스에서 "전사 왕자"(a warrior prince)가 될 수 있는지를 묘사한다. 보다 최근에는 어니스트 클라인(Earnest Cline)이 보다 몰입적인 가상현실인 『오아시스』(the OASIS)를 "더 나은 현실로의 출구...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의 장소"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 세 권의 책은 모두 우리가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가상세계에 "접속"(jacking into)함으로써 현대 생활의 실패, 불만,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붙들고 씨름한다.

팬데믹, 세계 분쟁,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의 부상, 그리고 불가피해 보이는 환경의 붕괴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 실제 현실을 가상현실을 위해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점점 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증강현실(AR) 기술을 개발하고 가상현실 기술을 개선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세계의 부상은 비디오게임에서 시작되었고, 오늘날에는 (헤드셋을 쓰고, 모니터 화면 위에서 구현되는) 온라인게임과 가상세계로 연장된다. 우리의 기술적 인터페이스는 계속 개선되고 있고,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우리 두뇌의 신경을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하는 방식인] 뉴로링크(Neurolink)와 같은 기술혁신이 바로 깁슨, 스티븐슨 그리고 클라인의 공상과학 소설들이 약속했던 것과 유사한 기회들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현재] 기술은 아직 완전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가상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지는 못하며, 아직 우리의 뇌를 직접 컴퓨터에 접속시킬 수 있는 단계도 아니다. 하지만 최초의 비디오게임이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겉보기에는 가상세계의 내용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그때보다 몇 광년은 더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가상세계란 물론 1인용 비디오게임을 포함하지만, 내가 여기서 주로 말하고 있는 가상세계는 인터넷을 활용하여 사회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게임과 환경을 의미한다. 어떤 가상세계는 한 번에 몇 명의 플레이어만 허용하고, 다른 가상세계는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이 공유 서버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어떤 가상세계는 게임 목표, 승리 조건, 그리고 물리칠 적들을 갖고 있는 게임이고, 다른 가상세계는 사회적 환경이다. 즉, 함께 모여 [가상세계의] 다른 "거주민들"과 대화하는 장소들이다. 오늘날의 가상세계는 다크 소울(Dark Souls), 이브 온라인(Eve Online)을 포함하며, 심지어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와 같은 게임에서의 짧은 만남을 포함한다. 그래서 기술은 멀티플레이어 가상현실을, 때로는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아직 공상과학 작가들이 예견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곧 장래에 일어날 거라고 예감하고 있다(혹은 성서 저자인 다소의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희미하게 보이지만).내가 가상세계와 비디오게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독교 개종자이자 신학자인 바울을 여기로 소환하는 것은 의도가 없지는 않다. 나는 특히 게임 기술이 세속화된 종교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종교가 이러한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각(lens)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많은 사람들에게 비디오게임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신화의 원천이 되었다).

종교는 항상 가상현실들, 즉 우리가 상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실현할 수는 없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마거릿 워트하임(Margaret Wertheim 1999)은 기독교의 대성당들은 기독교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천국에 접속할 수 있는 가상환경을 제공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실한 기독교인이 성당에 들어설 때, 그들은 자기 자신이 새로운 영역, 즉 초월적인 영광의 영역에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종교가 어떻게 인간이 신성한 현실들을 경험할 수 있는 여건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그와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세속" 시대라 명명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세속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로이트가 『환상의 미래』(Future of an Illusion, 1927)에서 예언한 것처럼, 과학이 종교를 교살하는(strangle) 시대, 즉 이성이 믿음을 극복하는 시대를 의미하는가? 프로이트는 "신은 죽었다. ...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라는 니체의 믿음(1883)을 공유했다. 니체는 신의 죽음과 함께 오는 자유를 두려워했을지 모르지만, 그 두려움을 탈자적(脫自的) 경이로움(ecstatic wonder)으로 물리쳤다. 프로이트 역시 그것을 즐겼다. 그는 종교란 자연과 죽음 앞에서 우리의 무력함에 대한 위로(consolation)일 뿐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그는 종교가 사라지게 될 정도로 인류가 성숙해졌다고 믿었다.

21세기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사방에서 종교를 목격한다. 신의 죽음을 선포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 그러나 만약 종교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때 세속주의를 대체 무엇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환상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속주의를 오해했다. 세속주의는 종교의 종말(end)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 진리의 종말, 즉 자기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확신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니체 자신의 어법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많은 종교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가 이 다양한 방법들을 거의 동등한 진리값을 갖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일군의 믿음들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의 믿음은 진실이고 나의 믿음은 거짓이라고 내게 확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여러분은 그러길 바랄 수는 있겠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세속주의다.

그렇다면 세속시대에 과학과 종교는 무엇으로 구성될 것인가? 과학은 분명코 종교를 정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학과 종교는 흥미로운 새로운 교차 방식을 발견했다. 스타크(Stark)와 베인브리지(Bainbridge)는 세속 시대에 종교가 과학적 형식의 진리를 채택하고 진보하는 과학과 기술에 비추어 자신의 가르침들을 적응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1986). 모든 종교들이 이러한 실천에 참여하고, 여기에는 전통종교와 신종교운동들(new religious movements) 모두가 포함된다. 그러나 비록 종교가 나의 설정이자 분석을 위한 구조라고 해도, 나는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신자들이 가상세계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 대신 나는 가상세계가 어떻게 전통 종교를 대체하는지, 가상세계가 어떻게 종교적 동기들을 부여하고 종교적 만족을 줄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즉, 과학을 활용하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활용하는 기술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세속세계에서는 비종교적 실천들과 산물들이 종교적인 결과들을 낳는 것이 가능하다. 데이비드 치데스터(David Chidester 2005)는 이것을 "진정한 가짜"(authentic fakes)라고 묘사한다. 이는 사기라는 의미에서 가짜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데스터가 묘사하는 것은 코카콜라와 미국의 야구 스포츠와 같은 완전히 세속적인 제도와 사물인데, 그는 이것들이 어떻게 예전에 종교 제도를 필요로 했던 결과들(윤리, 신화적 이야기들, 공동체 등)을 [그것들 없이]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제 가상세계를 종교적인 것으로 묘사할 것이다. 즉 나는 가상세계와 (온라인) 비디오게임이 어떤 종교와도 연관성을 갖지 않은 채 전통 종교의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가상세계는 일종의 세속종교를 허용한다. 게이머들은 윤리에 대해 토론하고, 개인적인 자기 이해를 발전시키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초월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인간의 경험에서 종교를 설득력 있고 강력하게 만들어준 [종교적인] 결과들이다. 이제 그것들은 온라인 생활의 문화적 힘에 기여한다. 그것들은 바로 내가 이 강연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공상과학 소설이 약속했던 바로 그 기회들이다. 『뉴로맨서』, 『스노우 크래쉬』,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은 모두 중요한 의미에서 가상세계의 종교적 본질을 탐구한다. 나는 이제 가상세계가 현대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신화들을 제공하고, 사실상 세계가 지금껏 경험했던 가장 국제적이고, 교차-문화적인 신화 체계들 중 하나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게임과 게임문화로 눈을 돌려볼 것이다. 가상세계는 우리에게 초월을 약속한다.

가상세계와 비디오게임의 세속적인 종교

내가 가상세계를 종교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마도 여러분은 이미 "그런데 이 사람이 말하는 종교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토론의 용어를 규정하지 않은 채, 내가 말한 것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가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라고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여러분이 옳다. 그렇다면, 종교를 정의해 보자. 다시 한 번, 나는 데이비드 치데스터를 따라 종교를 "초인(superhuman)과 '인간-이하'(subhuman)의 경계에서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협상"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만약 여러분이 이것이 종교처럼 다루기 힘든 개념에 대한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정의라고 [내키지 않아도] 인정해 준다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이 정의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협상"(negotiation)이라는 말로 치데스터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 믿기에는 바로 우리의 윤리, 교리, 의식, 본문, 상징, 예술, 습관 등 우리가 참여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키며, 그 안에서 우리는 "초인과 인간-이하의 경계에서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한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과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과제이다. 그것은 특히 '초인'과 '인간-이하'(즉, 신들, 천사들, 악마들, 심지어 영화 <스타워즈>의 포스(Force)처럼 도처에 편만한 신비한 힘들)와의 관계에 관여할 때 종교가 된다.

가상세계는 우리가 컴퓨터에 접속할 때 획득하는 초인적 상태와 견주어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 분명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정의는 게이머 문화의 필수적 특징인 제의적 실천들, 윤리적인 논쟁들, 신화적 이야기들, 그리고 공동체 결성에서 일어난다.

인류의 깊은 종교적 본성은 우리가 "운"(luck)이라 부를 수 있는 많은 영역들을 포함하여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무작위성을 통제하고픈 우리의 욕망이 마술적인 사고와 심지어 제의적 실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방식에 대해 아주 잠깐 말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던전스 앤 드래곤>(Dungoens and Dragons)과 같은 탁상용 롤플레잉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좋아하는 주사위를 가지고 있으며, 주사위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주사위를 "잠시 중단(time out)" 시키는 것과 같은 다소 이상한 제의(rituals)를 거행한다(Fine 1981). 트위터에서는 우버(Uber)를 통해 쉽게 승차하는 것같이 무작위처럼 보이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결과에서 사용자들은 그들이 어떻게 "#알고리즘에은혜를입었는지"(#blessedbythealgorithm) 알 수 있게 되었다(Singler 2020). 트위터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예들은 운명의 변덕들 속에서 능동적인 의지를 인지하는 인류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의도적이고 종종 제의적(ritual)이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탁상(table)과 온라인[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특정 행동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행운의 주사위, 행운의 의자 등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기술에 행운의 마법이 주입될 수 있다. 비슷하게 게임 환경에 로그인하거나 게임 환경에서 만남을 시작하는 의식은 마술적 주문의 모양새를 취한다. 나는 여기서 마법과 종교적 체계들 모두에는 [행위의]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제의적 주문의 관행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실천관행은 가상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것만 언급하는 것으로 [이에 관한 논의를] 제한하고자 한다.

이제 종교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항상 존재하는 윤리적 논쟁부터 시작하여, 공동체의 결성으로 넘어가 보자.

미국에서는 비디오게임의 윤리에 대한 시끄러운 정치적 논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비평가들은 게임이 폭력적이면 아이들을 폭력의 마니아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비평가들은 비디오게임에서 섹스나 마약의 존재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비슷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Grand Theft Auto series)는 미국 문화에서 가장 자주 비판받는 게임 중 하나였지만, 아마도 미국에서 비디오게임을 둘러싼 등급 매기기 전쟁을 촉발한 것은 <모탈 컴뱃>(Mortal Kombat)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커뮤니티 밖에서 들려오는 모든 거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 내에서 플레이어는 윤리에 대해 훨씬 더 미묘한 접근을 보여준다. 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스타 워즈>(Star Wars: The Old Republic)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가상세계의 게이머들이 어떻게 윤리에 대해 의미 있는 논쟁을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게임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심지어 윤리적으로 보다 성숙해져 가는지를 예증하고자 한다.

<스타워즈>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시스(Sith, 제다이 기사들의 적)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고문,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살해, 그리고 악의 역할극에 대한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사람들을 인간 도덕성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으로 불러들이는가? 가상 고문에 참여하면 게임 플레이어가 실제 세계에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가? 나의 학생인 냇 레신(Nat Recine)과 함께, 나는 369명의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게임 선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약 15%의 선수들만이 논플레이어 캐릭터들(non-player characters, NPC)을 고문했다고 인정했고, 또한 고문을 했다고 인정한 그 소수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도덕적 질문들에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스타워즈: 올드 리퍼블릭>(Star Wars: The Old Republic)은 그저 "게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논플레이어 캐릭터를 고문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5점 만점에 1점으로 답했다(이것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 고문은 고문이다"라는 의미이다). 무고한 논플레이어 캐릭터들을 고문하는 사악한 시스(Sith) 캐릭터를 조장하려는 보상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악의 편에 가담하기로 선택한 게임에서조차 악한 선택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서술하면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느낀다고 언급한다.

게이머들이 일반적으로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 관리 전략"(moral management strategies)이라 불리는 것을 활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스타워즈: 올드 리펴블릭>의 플레이어들이 NPC를 고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특히 흥미롭다. "그들이 나를 먼저 공격했다"거나 "그들이 내 동맹들을 공격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게임 속에서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며, 플레이어들은 심리연구자나 사회학 연구자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전략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 "난 나쁜 놈 편이다"라는 것만으로 명백히 비윤리적인 행동에 가담하는 것을 정당화하기에는 불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게임 속에서 도덕적 선택들을 관리하는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리고 대개 그 한계들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윤리적 논쟁들에 노출된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일상의 삶에서 친사회적 행동이나 반사회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게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유명 게임 디자이너 리처드 바틀(Richard Bartle 2003)은 "가상세계가 선을 위한 힘이라는 나의 주장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결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주로 근거한다. 이는 가상세계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본질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강의에서 나의 주요한 목적은 '바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디오게임을 통해 윤리를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절한 행동의 윤리에 대하여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가 윤리적 행위에서 보다 사려깊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다. 물론 대부분의 윤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배웠지만, 윤리적 행동에 대한 성숙한 성찰은 나이가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부분이며, 바로 그것이 종교적 삶의 보편적 양상이다. 게임이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같은 게임들의 제작은 국제법과 국내법, 자본주의 시장, 그리고 게임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환경적인 비용이라는 맥락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많은 게임들처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모욕적인 인종적, 민족적, 성적 그리고 성역할적 고정관념들을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게임이 윤리적 관점에서 완전한 성공이라는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설계자들은 윤리적 문제를 고려하는데 확실한 보상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이 게임은 정치적 부패,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환경 악화에 대한 비판들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의 줄거리를 따라 진행해 나가면서, 자신들과 관계한 동맹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행]임무(quests)에 참여한다. 이 임무들의 대다수는 궁극적으로 지도자들의 동기가 부정직하고, 고결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들이 거기에 비윤리적인 정치세력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그들은 또한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데 따르는 악을 드러내는 중립 단체들(스팀휠 카르텔Steamwheedle Cartel과 같은)의 임무들을 경험한다. 즉, 플레이어들은 결국 돈을 숭배하고, 자본주의를 자신들의 종교로 삼는 NPC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게임은 이에 대해 분명히 부정적 판단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많은 임무들은 채굴, 숲 개간, 남획(overhunting)과 같은 환경 파괴를 지적한다. 게임에는 분명히 플레이어가 사냥, 채굴, 또는 관련 작업들에 참여해야 하는 게임의 측면들도 있지만, 그 게임의 임무들과 스토리라인의 전반적인 특성은 그 세계의 거주자들이 천연 자원을 과도하게 수확할 때 피할 수 없는 결과는 고통(suffering)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다양한 도덕 체계들은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차이를 만든다. 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의 플레이어들은 특정 캐릭터 유형(전사, 마법사, 사제 등)을 그것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선호하고, 29%의 플레이어들은 그것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 때문에 특정 인종을 선호한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윤리적 성찰의 주요 동인은 의심할 여지없이 종교적인 것이었을 것이고, 실제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형성의 전체가 종교 생활에서 나왔을 것이다. 만약 외부인이 중세 마을에 도착한다면, 지역 종교를 공유하는 것이 [그가] 그 공동체로 즉시 진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태어났어도 그 지역 종교를 저버리는 것은 곧 사회생활에서 거의 완전한 파문(excommunication)을 초래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많은 방식들을 가지고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 한때 종교 기관들에 부여되었던 권위를 빌리기도 한다. 가상세계에서 공동체는 디지털 생활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길드에 가입한다(전체 설문 응답자 중 78%는 그들의 게임 캐릭터들 전부가 같은 플레이어 길드 한두 개에 속해 있다고 응답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특성이 개인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확장되는 것을 보고 있다. "파제 클랜"(Faze Clan)과 같은 유명한 게임 그룹은 - 트위치, 소셜 미디어 등의 팔로워와 같은 - 보다 광범위한 공동체를 위한 핵심 권위들인 플레이어들의 공동체를 제공한다. 게이머와 가상세계 거주자들은 기존의 일상생활에서도 길드동료(guildmates)와 디지털 공동체 회원들과 연결되는 것을 즐기는데, 아직 가장 친밀한 게임 공동체를 찾지 못한 70%의 응답자들은 그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바라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상 공동체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가속화시켰다. 나는 그러한 공동체들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가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상세계에서 온라인으로 시작하고 그들 대부분의 소속이 거기서 계속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 십대들이 하던 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한때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거의 모든 16세 미국 청소년들에게 우선 순위였지만, 오늘날에는 운전할 줄도 모르는 고등학교와 대학생들이 있으며, 심지어 면허를 가진 학생들이 훨씬 더 적다. 십대들은 파티와 마약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지만, 온라인게임에는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이것은 그들의 미래 사회활동들이 온라인 세계와 온라인 활동을 계속 활용할 것임을 암시한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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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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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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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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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5]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의 터전을 마련한, 아우구스티누스!

"서방신학은 동방신학보다는 출발이 좀 늦었으나 곧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암브로시우스 등의 교부들이 주축이 되어 착실하게 발전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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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학 4] 카르타고 학파의 거침없는 변증과 교회론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의 신학을 오늘날 살피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들의 신학은 현실적이고 참여적이고 실존적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