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불교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다

오강남 박사, <불교평론>에 '불교와의 관계에서 성경읽기' 투고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오강남 박사(캐나다 라이지나 대학 명예교수)가 계간지 <불교평론>에 '성경-불교의 입장에서 읽은 성경 이야기'라는 제목의 원고를 투고했다고 9일 밝혔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같이 밝히며 원고의 일부를 공개했다.

앞서 오 박사는 해당 원고의 얼개가 △성경의 구성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성경에 대한 태도 △해석의 문제 △불교와의 관계에서 성경 읽기 등으로 짜여져 있었음을 전하며 그 중 앞의 소주제들과 얽히며 동시에 글의 전체 주제 의식과도 맞닿는 마지막 부분, 즉 '불교와의 관계에서 성경 읽기' 부분 전문을 페이스북 유저들과 나눴다.

먼저 오 박사는 "성경을 읽으면서 불교를 연상시키는 진술이나 사건들 몇 가지를 예거해 본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주제들일 수 있기 바란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성경 첫째 권인 <창세기>에서 신이 6일 동안 세상과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명한 "땅을 정복하여라....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는 구절을 조명했다.

오 박사는 "서양 역사는 대체적으로 이 '정복'과 '다스리라'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땅을 마구잡이로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착취하고 살육하는 일을 계속해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 말은 자연을 함부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잘 '보호하고 보살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새로운 이해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불살생(不殺生)의 가르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고 강조했다.

창조기사와 함께 성서 첫 머리에 나오는 타락 기사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요청했다. 오 박사는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이 이야기를 순종·불순종의 입장에서 보고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므로 쫓겨난 것이니 우리도 불순종하면 안 된다는 식의 윤리적, 율법적 해석으로 일관해 왔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의식의 발달사를 다룬 켄 윌버(Ken Wilber)는 이 이야기가 인간이 선과 악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자기가 벌거벗었다고 하는 것도 모르던 동물적인 주객 미분의 의식(pre-subject/object consciousness) 단계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줄 아는 주객 분리의 의식(subject/object consciousness)으로 넘어온 단계를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 윌버는 물론 의식 발달의 완성은 이런 이분법적 분별 의식을 초월하는 초주객 의식(trans-subject/object consciousness) 단계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간이 분별식(分別識)을 가지게 된 계기와 이를 넘어서서 분별식을 초극하는 단계로의 완성을 이야기한 것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타락 이후 성서에서 강조되는 회개와 관련해서는 "그리스 말로 '메타노이아(metanoia)'이다. 메타(넘어서다)와 노이아(의식)의 합성어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 뜻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런 메타노이아 체험과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의 체험은 다 같이 '새로운 의식'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않을까?"라고 했다.

오 박사는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했다. 여기서 '내가'라는 것은 역사적 인간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기보다는 '우주적 나(cosmic I)',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우주적 생명력', '본원적인 인간성,' '나의 참 나'를 말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친 말이 연상된다. 여기서 '나(我)'란 누구인가? 역사적 고타마 싯다르타를 의미할까? 내 속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나, 참 나인 불성(佛性)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선언과 부처님의 외침에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마태복음의 최후 심판 장면도 살폈다. 그는 "임금님이 의인들을 향해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다."(25:35~36)고 한다. 의인들이 자기들이 언제 그런 일을 했는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임금이 다시 입을 열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이어 "이런 것은 물론 윤리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고 결국은 하나라는 화엄 철학의 상즉(相卽) 상입(相入)의 원리나 이사무애(理事無礙), 사사무애(事事無碍) 사상에 의하면 보잘것없는 사람과 임금이 결국 하나이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임금에게 한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오 박사는 불교의 화엄 사상과 예수님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19:19)는 말씀이 일맥 상통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이웃과 내가 따로 떨어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고 결국은 하나이기 때문이다"라며 "나와 이웃만 하나가 아니라 나와 자연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로마서8:12)고 했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이 하나라는 것을 자각하면 현재 자연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태학적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다를 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 밖에도 오 박사는 "일즉다(一卽多) 다중일(多卽一), 일중다(一中多) 다중일(多中一), 모든 것이 결국 하나 안에 있고 하나가 모든 것 안에 있어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라는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은 <요한복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7:21)라고 하였다. 사실 <요한복음>의 중심 사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는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인류의 죄 값을 탕감하기 위해 피흘리셨으니 우리는 그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이른바 대속론(代贖論)이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이 '하나'라는 '신비적 합일' 사상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기에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 1931-2021) 신부는 <요한복음> 해설서의 제목을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Tales of a Jewish Mystic)"라고 했다"고 했으며 "더욱이 류영모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외우는 위의 성경절에서 하느님이 세상에 보낸 독생자는 예수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심어준 하느님의 씨앗, 신성(神性)이라고 하였다. 불교적 용어로 하면 우리 속에 있는 불성(佛性)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경을 필자의 어머니처럼 일 년에도 몇 번씩 읽는 이도 있고, 필자의 사촌 형처럼 국한문 성경을 완전히 필사하고 이제 다시 한글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 이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별로 읽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일반 불교 신도들이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같은 것은 외우지만 <화엄경>이나 <법화경> 같은 경을 직접 읽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자기들이 지금 믿고 있는 것이 성경이나 불경에서 나온 진리 그대로라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해석'과 '교리'를 성직자들이 전해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며 "이제 그런 전통에 무비판적으로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텍스트를 직접 읽고 그 문자 너머 심층에 있는 속내를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향으로 간취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그 깊이에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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