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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밥의 콩이 굵다: 나의 종교, 남의 종교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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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다 같은 밥솥에서 퍼낸 밥인데, 남의 밥 속에 들어 있는 콩이 내 밥 속에 있는 콩보다 더 굵어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무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양 문물과 함께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 왔다.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남의 나라에서 온 서양 문물이나 그들의 종교가 더 굵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후 계속 그 숫자가 늘어나 요즘은 한국 인구의 20% 정도가 기독교인이라는 '선교사상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스런 현상은 기독교가 굵은 콩으로 보여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제는 전에 자기가 먹던 밥의 콩을 작은 콩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썩은 콩으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이다. 기독교만 진리요 한국 전통 종교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보는 태도가 편만하다는 뜻이다.

여러 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의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교수가 내가 가르치던 대학에 와서 '기독교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기독교가 종래까지 받들고 내려오던 패러다임(paradigm)이 각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 왔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 변화가 다양하고 급격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현재의 여러 변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래까지의 '기독교만'이라는 생각이 청산되고 서로 다른 종교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피차 성숙한 경지에 도달하기를 목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당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다. 펄쩍 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과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지적하였듯이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음 것으로 바뀌는 변천(shift)은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스 큉 뿐만 아니라, 서양의 지도적 종교사상가들 사이에서는 이제 이런 생각이 하나의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하나가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해야한다는 제국주의적 발상이 용납될 수가 없다.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종교에서도 이웃종교를 정복의 대상으로 적대시하거나 백해무익한 것으로 경시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종교적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내지 수용모델(Acceptance Model)이 오늘 이 시대를 위한 올바른 태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간디의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간디의 아버지는 힌두교 각 종파의 사람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이나 조로아스터교인들 등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존경심 내지는 흥미를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한다. 아버지 옆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던 간디도 이런 영향을 받아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의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해서만은 그 당시 예외였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일종의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기독교 선교사들은 고등학교 근처 모퉁이에 서서 힌두교인들과 그들이 믿는 신들에 대해 욕설을 퍼붓기가 일수였다. 나는 이것에 견딜 수가 없었다. 딱 한번 발을 멈추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았지만, 그 한번으로 그런 실험을 되풀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 무렵 잘 알려진 힌두교도 한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벌써부터 자기 조상들의 종교, 그들의 습관, 그들의 조국을 욕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런 모든 것이 합하여 나에게 일종의 기독교 혐오증을 갖게 해 주었던 것이다."(Fisher,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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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천안 태조산의 청동아미타불상

일부 기독교인들, 특히 19세기 이전의 고전주의적(classist) 사고방식을 가진 기독교인들 중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남의 종교를 헐뜯고 비하해야만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이런 방법이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천삼백여년 전 인도의 성왕 아쇼카 임금도 그의 유명한 비문 중 하나에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남의 종교를 공대할지라. 누구든 이런 식으로 나가면, 그는 자기 자신의 종교도 신장시키고, 남의 종교에도 유익을 끼치는 것. 그 반대로 하면, 그는 자기 종교도 해치고 남의 종교에도 욕을 돌리는 것. 이것이 모두 자기 종교만을 찬양하려는 데서 나오는 일. 누구든 자기 종교를 과대선전하려면, 그는 오히려 자기 종교에 더욱 큰 해만을 가져다줄 뿐. 일치만이 유익한 것. 각자는 남의 종교에 대해 경청하고 거기 참여할지라."

우리 자신을 가만히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나의 종교만을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고 이웃의 종교들을 비방하는 것이 믿음의 표시요 충성심의 발로라고 생각하고, 또 그래야만 모두 내 종교로 들어와 내 종교가 흥왕하리라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모든 종교가 다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종교와 다른 종교는 다 틀려먹었기에 그들을 모두 개종시켜야만 한다는 것은 억지요 무지다.

선불교를 접한 아일랜드 출신 윌리엄 잔스턴 신부의 말이 생각난다. "종교의 목표가 교인수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것,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콩이 콩인 한 그것이 내 밥에 있든 남의 밥에 있든 그 가치를 다 같이 인정해 줄줄 아는 양식이 있어야겠다.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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