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이 말하는 방언(8)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V.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의 방언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복음서들 가운데에서 방언에 관한 언급이 있는 곳은 마가복음이 유일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장인 16장에서 유언으로 하신 말씀에 딱 한번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방언을 말했다고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은 2장, 10장, 19장 등 세 곳입니다.

1. 마가복음 16장

마가복음 16장에 대해서는 신약학자들 간에 적지 않은 이견(異見)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7), 311-7; 김동찬, 「방언 바로 알기: 방언에 대한 바른 해답을 주는 안내서」, 150-2.]. 특히 9-20절의 본문은 나중에 첨가가 된 부분이라고 보기 때문인지, <개역 성경>과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그 부분이 괄호로 묶여 있습니다. NIV 영어성경에서는 "가장 신뢰할만한 초기 원고들(성서사본들-필자 주)과 다른 고대 증언들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The most reliable early manuscripts and other ancient witnesses do not have Mark 16:9-20)라는 설명을 8절 이하에 한 후, 9-20절을 괄호로 묶지 않고 제시하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편, 「한영 스터디 성경: NIV-개역개정판」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1), 85.].

사본들 가운데 시내사본(Sinaiticus)과 바티칸사본(Vaticanus)에는 9-20절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 외의 대다수의 사본들에는 그 구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312.]. KJV 영어성경에는 괄호묶음이 없이 그리고 NIV 영어성경에서에서와 같은 부연설명이 없이, 9절부터 20절까지 모두가 16장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의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 16:15-18)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뱁티즘을 받는 사람은 구적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표적들-필자 주)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 표적들이 따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게 될 다섯 가지 표적들을 열거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다.

2) 새 방언을 말할 것이다.

3) 뱀을 집어올릴 것이다.

4)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5)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을 것이다.

그 두 번째의 표적이 "새 방언을 말할 것이다"(glossais lalesousin kainais, they shall speak with new tongues-KJV, they will speak in new tongues-NIV)입니다(막 16:17). "새" 혹은 "새로운"(kainais, new)이라는 형용사가 사용되었고, "방언"이라는 말은 복수형(LT방언들, glossais, tongues)으로 사용되었고, "말할 것이다"(lalesousin, they shall speak-KJV, they will speak-NIV)라고 미래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는 여기의 "새 방언"(glossais kainais, new tongues)을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전혀 다른 말이라고 주장하면서, 고린도전서에서 사용된 UT방언을 의미한다고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구요셉, "방언이란 무엇인가?: 성경으로 살펴 본 올바른 방언과 예언의 의미,"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 qPAzx6HQ69w&t=2s, 2019년 4월 20일 접속.].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새 방언을 말하며(말할 것이며-필자 주)"라는 예수님의 예언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성령강림 시에 제자들이 말해 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던 "생소한 언어들"(new tongues, 새로운 외국어들, LT방언들)을 말하게 될 것을 유언하셨다고 보는 것이 보다 상식적인 성경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다섯 가지 표적들은 사도시대(Apostolic Age)에 신자들에게 임할 기적적인 역사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만약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으며 오늘날에도 실행한다면, 이 세상에 병원들이나 의학적인 지식들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유언은 그 분께서 승천하신 다음 "약 열흘 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 지상에서 제자들에게 일어나게 될 일을 미리 예언적으로 유언하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에 의해 개척된 것(51년경)은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신 지 "약 20여년 후"였고 고린도전서가 씌어진 것(54년경)은 "약 25여년 후"였습니다. "새 방언"을 고린도전서에서 언급된 알아들을 수 없는 UT방언 기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자의적인 성경해석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UT방언 기도를 합리화하기 위한 억지 해석이지 않습니까?[김동수,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 63-6.].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유언의 말씀으로서 제자들이 "새 방언들," 즉 전혀 생소한 언어들(LT방언들, 뜻과 메시지가 있는 새로운 외국어들)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새 방언들을 말할 것이다"(glossais lalesousin kainais, they shall speak with new tongues-KJV)라고 했지 "새 방언으로 기도할 것이다"(they shall pray in new tongue)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언어 혹은 외국어를 의미하는 복수형 단어(glossais)가 사용되었습니다. "표적"(semeion, sign)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배워 보거나 말해 본 적이 없는 언어를 "말하게 되었던" 기적과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난 곳 언어들로 "듣게 되었던" 기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유언이 직접적으로는 오순절날에 성령이 강림하실 때 예루살렘에서(행 2장) 성취되었고, 또 그 후에 고넬료 집에서(행 10장과 11장), 그리고 에베소에서(행 19장)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적인 유언으로 말씀하신 "새로운 방언들"(kainais glossais, new tongues)은 사도행전 2장 1-13절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제자들이 전혀 배워 본 적도 없었고 사용해 본 적도 없었던, 생소한 새 언어들(외국어들) 즉 LT방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unintelligible), 중얼거리는(muttering), 뜻 없는(meaningless) UT방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복수형(glossais, tongues)으로 사용된 낱말입니다.

2. 사도행전 2장

로마제국은 유럽의 남부와 영국,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과 소아시아, 오늘날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조지아(Georgia, 그루지아) 지역 등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여 통일한 제국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피정복 민족들로 구성된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다언어 국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 내에는 소수민족 자치주(自治州)들이 많이 존재했고 그러한 주(州)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그들만의 토속적인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중해 연안에는 많은 섬들이 있어서 섬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통일제국의 공용어(公用語)는 코이네 희랍어(Koine Greek)였고, 지식인들과 성직자들은 라틴어(Latin)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 광대한 중국 땅에 다양한 민족들의 자치주(自治州)들이 있고 다양한 언어들이 통용되고 있듯이 로마제국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통일된 로마제국 내에서 사용되던 다양한 언어들을 "외국어들"(foreign languages)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語弊)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일된 하나의 국가였으니까요. 로마제국 내에는 약 6,000여 가지의 지방언어(地方言語, 방언 方言, dialects)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서로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사용하는 사투리 정도가 아니라 마치 외국어처럼 전혀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는 민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이라는 한 나라에 공용어가 있기는 했지만, 각 자치주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당시에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 넘어 바다 건너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의사소통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3장("성령뱁티즘과 방언")에서는 성령뱁티즘(Spirit Baptism, 성령침례, 성령세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본 장에서는 방언(Speaking in Tongues)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대로 사도행전에는 방언(LT방언들)을 말했던 사건에 대한 기록이 세 번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2장과 10장과 19장입니다. 8장에서는 사마리아에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그 지역의 사람들이 성령받기를 기도했고, 그들에게 안수를 했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이 방언을 말했다거나 성령으로 뱁티즘을 받았다는 기록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기다리라")하셨고 예언("성령으로 뱁티즘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필자 주)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뱁티즘을 베풀었으나 너희(제자들은-필자 주)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뱁티즘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열흘 후에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함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늘날 방언주창자들은 은사집회 중에 참석자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하는 통성기도를 유도(誘導)하곤 하는데, 위의 본문말씀에 의하면 120여명의 제자들이 연합하여 뜨겁게 기도하는 동안에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에 합심해서 기도했었다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정작 성령이 강림했던 오순절날 당일에는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이 오시도록 혹은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뜨겁게 통성기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로 인해 성령이 강림했고, 그들이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고, "다른 언어들(LT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누가는 그들이 LT방언을 말했던 경위를 상세하게 진술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제국 내의 약 15개 내지 16개 지역에서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유월절과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을 때,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난 곳 언어들(LT방언들)로 "하나님의 큰 일"(the wonderful works of God-KJV, the wonders of God-NIV)을 듣게 된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2:5-13)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야,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어떤 이들은 그 날에 "방언 말하기"의 기적이 아니라 "방언 청취하기"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히브리말이나 아람말로 말했는데, 성령이 기적적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출신지 언어들로 듣게 하셨다는 것입니다[김신호, 「성령세례 받으면 방언하나요?」, 60-1.]. 그러나 누가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1:4)고 적었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행 2:6),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행 2:7),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라고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은 한 번도 말해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는 15개 내지 16개 지역의 언어들(LT방언들, 외국어들)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하게 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또한 자신이 정착하여 살던 그 지역의 언어들로 "듣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듣게 된 것은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일," 즉 몇일 전에 있었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신 그 큰 일, 즉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들의 언어로 듣게 되었다는 말입니다[김동찬, 「방언 바로 알기」, 144-5.].

이 기적적인 방언사건(내용과 메시지가 있는 언어 혹은 외국어로서의 LT방언 사건)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연관지어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기 전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창 11:1, And the whole earth was of one language, and of one speech-KJV, Now the whole world had one language and a common speech-NIV)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공로에 의지하여 벽돌로 탑을 높이 쌓아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창 11:4b)라고 말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결국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그들을 흩으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창 11:6-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 역전(逆轉)된 사건이었습니다["거짓 버리기(Unlearn the Lies)-방언에 대한 성경 속 진실,"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hmTpcC2PjE&t=3s, 2019년 6월 5일 접속.].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로 인해 제자들이 "하나님의 큰 일"(행 2:11, the wonderful works of God-KJV)을 말했는데, 로마제국 내의 15개 내지 16개 지역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각자 자기들의 출신지 언어들로 그 메시지를 듣게 된 것입니다. 불통의 언어장벽이 무너지고 다양한 지역의 언어들로 복음의 메시지를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로 인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몇 일 전에 있었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과 부활 사건"과 그 의미를 듣게 되었고, 그 후 자기들이 살고 있던 지역으로 돌아가 그 곳의 주민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증거를 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강권적이고도 기적적인 역사로 인해 로마제국 내에서 복음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일이 가능케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유대인 불신자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서 그리고 제국 내의 여러 지역들로 복음을 급속히 확산시키기 위해서 LT방언(Language Tongue)이라는 "표적"(semeion, sign)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 방언은 알지 못했던 외국어 언어를 기적적으로 말하는 표적으로서의 특별한 은사입니다. "제노글로씨아"(Xenoglossia)인 것입니다. 중얼중얼하는 기도로서의 방언(UT방언, Unknown Tongue)인 "글로쏠랄리아"(Glossolalia)는 성경적인 참 방언이 아닙니다. 돈에 위조지폐가 있듯이 UT방언은 위조방언(counterfeit tongue)이요 거짓방언(false tongue)이요 가짜방언(fake tongue)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 방언이 아니라면 마귀가 주는 방언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노우호, 「방언을 검정하자」, 24-5. 노우호, "방언! 하늘의 언어인가 마귀의 장난인가,"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VOzk-3qyNg&t=202s, 2019년 5월 16일 접속.].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4:22) "그러므로 방언(LT방언들을 지칭함, 복수형 glossai, tongues-필자 주)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사도행전 2장 3절에서는 "불의 혀(들)처럼 갈라지는 것들"(cloven tongues like as of fire)에서 발성기관인 혀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복수형으로 glossai(tongues, 많은 혀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4절(lalein 'eterais glossais)에서도, 그리고 11절(akouomen lalounton auton tais 'emeterais glossais)에서도 복수형으로 glossais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6절(te 'idia dialekto lalouton auton)과 8절(te 'idia dialekto 'emon)에서는 복수형으로 dialekto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의 영어 dialects(지방언어들 혹은 사투리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알렉토(dialekto)와 글로싸이(glossai)는 글자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1절(akouomen lalounton auton tais, 'emeterais glossais,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말함을 듣는도다," we do hear them speak in our tongues-KJV, we hear them declaring...... in our own tongues-NIV)에서도 복수형 단어 glossais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glossai나 glossais나 dialekto는 모두 복수형 단어로서 LT방언(언어, 외국어)의 의미로 사용된 단어들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의 예언("그들이...... 새 방언을 말하며," glossais lalesousin kainais)이 오순절날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실현이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동일한 복수형 단어(glossais)가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일"(행 2:11)을 말하는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등장한다고 주장하는 방언기도(UT방언, 단수형 glossa)가 아니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그들이 "(방언으로) 말했다"고 했지 "(방언으로) 기도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주의나 은사주의운동 계통에서는 고린도교회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기도(Prayer of Unknown Tongue)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방언기도인 UT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성령이 강림했던 오순절 날의 방언(행 2장)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말한 다른 언어들(other tongues spoken,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이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된 중얼거리는 소리로서의 UT방언 기도가 아니라 뜻과 메시지가 있는 LT방언이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성령운동은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가 아니라 고린도주의(Corinthianism)라고 불렸어야 마땅합니다.

20세기가 열리면서 오순절운동이 태동했던 곳은 미국 캔자스 주의 주도(州都)인 토피카(Topeka, KS)였습니다. 1900년에 복음전도자 찰스 팔햄(Charles Fox Parham, 1873-1929)은 이 도시에서 베델성서대학(Bethel Bible College)을 설립했습니다["Charles Fox Parham," Wikipedia, [온라인자료] https://en.wikipedia.org /wiki/Charles_Fox_Parham, 2019년 3월 15일 접속.].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의 삶에서도 죄 없는 완벽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완전성화(entire sanctification) 교리를 믿고 있었고 그러한 교리를 가르치는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일단의 학생들로부터 성령으로 뱁티즘을 받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팔햄은 모두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1901년 신년초에 그들의 기도모임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은사주의자이자 역사가인 빈슨 사이난(H. Vinson Synan) 박사[빈슨 사이난(Harold Vinson Synan, b, 1934) 박사는 1958년에 리치먼드대학교(University of Richmond)에서 미국사를 전공하여 문학사(B.A.) 학위를 받았고, 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에서 미국지성사를 전공하여 1965년에 문학석사(M.A.) 학위를, 1967년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Assemby of God) 교단에 소속하고 있으며, 털사(Tulsa, OK)에 소재한 오랄로버츠대학교(Oral Roberts University)에서 오순절운동과 은사주의운동의 역사를 가르쳤고, 리전트대학교(Regent University, Virginia Beach, VA)의 신학부 학장직(Dean)을 맡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명예교수로 봉사하고 있습니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날 늦은 시각에 아그네스 오즈만(Agnes Ozman)이라는 서른살 된 자매가 팔햄에게 와서 사도적인 표적인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 자신에게 안수를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 분이 기도하며 나의 머리에 안수기도를 했을 때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가지 언어들을 말했다(I talked several languages). 어떤 말(a dialect)을 했음이 틀림없다. 하나님께 영광!"[H. Vinson Synan, "The Touch Felt around the World," Charisma (January, 1991), 83.].

그 날 아그네스 오즈만을 비롯해서 기도회에 참석했던 다른 학생들도 방언을 말하는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오즈만 자매는 자신이 중국어 방언을 한 것으로 증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 기적이 그들에게 임했고 그래서 그들은 성령뱁티즘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언어실력을 겸비한 해외선교사로 파송될 것을 기대하며 흥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들이 말했다는 방언들은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 혹은 외국어 즉 LT방언이 아니라 UT방언이었습니다.

오즈만 자매가 말했다는 중국어도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고 단지 입으로 중국말과 비슷하게 발성하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그 방언은 중국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되는 중국어가 아니었습니다. 그 녀의 중국어방언은 거짓이었습니다.[John MacArthur, 「존 맥아더의 다른 불」 (Strange Fire), 조계광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4), 52-5. 김재성, 「개혁주의 성령론」, 227.]. 만약 그들이 LT방언을 말했다면 베델성서대학은 아마도 그 때로부터 세계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학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얼마 후 곧 폐교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했던 방언은 오늘날 교회예배나 방언집회에서 일부 교인들이 중얼거리며 내는 소리인 UT방언이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오순절운동은 그 첫 출발에서부터 진실(眞實, 참, truth)에 근거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계통이나 은사주의 계통에서 "성령세례"를 언급할 때에는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말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라고 주장하는 "방언"(UT방언)을 언급할 때에는 고린도전서 14장을 말하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인 오류요 신학적인 거짓이자 속임수입니다. 방언이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라고 주장하려면(필자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 방언은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외국어 혹은 언어로서의 LT방언이어야 합니다.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느 누구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unintelligible) 중얼거리는 UT방언 기도를 체험했다고 성령뱁티즘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도 않고 성서적이지도 않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참 방언인 LT방언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praying) 것이 아니라, 다른 불신자들로 하여금 기적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알아 듣도록 "말하는"(speaking) 것입니다.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로서의 참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not praying to God, but speaking to men)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UT방언 주창자들은 방언의 은사를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 방언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LT방언)로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 즉 복음의 메시지를 증거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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