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옹달샘과 초점(15)] 왜 베들레헴 성탄극은 물리지 않을까?
숨밭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입력 Dec 08, 2019 06:14 AM KST

해마다 반복되는 베들레헴 성탄극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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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바톨로메 에스테반 뮤릴로(Bartholome Esteban Murillo, 1617-1682), <목동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아기 예수님>(1650-1682)

요즘은 농촌마을에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어린이 주일학교 학생수도 줄어들어서 성탄전야 행사도 예전같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약 60년전, 인구의 70% 이상이 농촌마을에 살던시절, 년말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교회에서는 의례히 교회학교 유년부와 중고등부를 중심으로 해서 각종 성탄전야 축하행사준비에 바쁘게 되곤했다. 정도차이는 있었지만 도시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 행사중에서도 해마다 반복되는 베들레헴 말구유간(마2:1-12, 눅2:1-20)을 재연하는 성탄극은 성탄전야제의 클라이막스 였다.

우리는 생각해 본다. 왜 베들레헴의 해마다 반복되던 성탄극은, 그 이야기 내용, 등장 인물들이 입는 유대인 풍의 고대복장, 마굿간 소품들, 그리고 연극대사도 똑같은데 싫증난다고 생각되지 않고 모두 해마다 즐겁게 보았을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 성모 마리아와 한걸음 뒤로 물러서 산모와 아기를 배려하는 착한 요셉, 기이한듯 큰 눈망울로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송아지와 당나귀 그리고 몇 마리 어린양들, 허름한 옷차림으로 막대기를 손에 쥔 목동들, 천사가 전하는 메시지 등등 어린이 주일학교 유년부 학생들도 그 성탄극 대사와 스토리는 훤하게 알고있을 정도였다.

해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베들레헴 성탄극을 사람들이 물리지 않고 보았던 이유는, 오락기구가 없거나 요즘처럼 텔레비전 등 넘치는 연속극 프로그램이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해서는 않된다. 지구상에 적어도 몇억명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베들레헴 성탄극을 싫증나지 않고 보는 이유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던 더 깊은 비밀이 있다. 그 이유는 인류문화가 지닌 위대한 건국신화들 처럼 어떤 인간본성의 원형적(原型的)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 성탄극은 4개의 복음서중에서 마태복음(마2:1-12)과 누가복음(눅2:1-20)에 기록되어 전승되는 짧은 설화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 스토리가 전달하는 내용이야 말로 기독교 복음의 본질이요, 인류가 갈망하는 구원능력의 에센스이다. 강함이 아닌 부드러움, 투쟁이 아닌 평화, 지배하는 부성보다 양육하는 모성, 인간들만의 샬롬이 아닌 동물들까지 포함하는 샬롬, 물질적 풍요보다는 간결한 청빈, .... 그 모든 것들의 총체적 상징으로서 '강보에 싸여 말구유 안에 뉘인 아기' 가 메시야의 표징이라고 전하는 위대한 메시지 때문이다.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가 강조하는 갈릴리 복음(Galilean Gospel)

화이트헤드(1861-1947)는 20세기 걸출한 사상들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창조적 철학자로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는 본래 영국에서 저명한 수학자와 물리학자로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63세때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교수로 초빙받아 과학철학자, 유기체철학자, 과정철학자등으로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 사상가이다.

그는 인류정신사에 줄기차게 흐르는 두 큰 물줄기인 관념론과 경험론, 정신세계와 물질세계, 과학과 종교등 이분법적 사유형태를 극복하고 통전(統全)시키려는 지적체계를 추구했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위대한 그리스도교의 본래모습은 예수가 전한 '갈릴리 복음'(Galilean Gospel)이었다고 강조하고, 2천년 서양역사 속에서 변질되어버린 기독교가 본래모습에로 돌아가기를 적극 권고한 대 사상가이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갈릴리복음이란 어떤 모습의 복음일까?

복잡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큰 밑그림으로서 말한다면, 그가 제시하는 '갈릴리복음'이란 성탄절 전야제에서 남녀노소가 이상하게 싫증나지 않고 보고 또 봐도 기이한 매력을 지닌 '베들레헴 성탄극'이 전달하는 기독교 복음을 말한다. 곧 베들레헴 '말구유에 뉘인 아기예수'를 중심으로 전달하는 복음이야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전하려는 원초적 기독교 복음을 의미한다. 거기엔 평화, 사랑, 청빈, 소탈함, 배려, 자기비움과 낮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샬롬, 그리고 동방박사로 상징되는 과학적 지성과 요셉으로 상징되는 종교의 화해 공존이 있다. 대사상가 화이트헤드가 비판적 지성의 눈으로 보면서 기독교역사(교회사) 2천년은 다음같은 3단계의 결정적 갈릴리복음 변질과정을 겪어오면서 예수가 전파한 순수한 복음의 본래모습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화이드헤드가 비판하는 갈릴리 순수복음의 3단계 변질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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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카라바치오(Caravagio, 1609), The Nativity with Saints Francis and Lawrence.

변질의 첫단계 과정: 화이트헤드가 지적한다. 갈릴리복음의 첫단계 변질과정은 헬레니즘문화권 속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어 가면서 헬라철학과 만남을 통해서 얻은 것도 많았지만 '헬라철학적 형이상학과 야합'을 이루게 된 것이 변질의 첫단계라고 본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교부시대 이후 1천년 중세기 기독교 신학을 지배한 '스콜라신학' 체계 완성이다. 신론이나 기독론을 헬라철학의 '본질개념'으로서 풀어가려고 신학자들의 집단적 지성이 집중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베들레헴 성탄극에서 느끼는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갈릴리복음의 감동은 실종되어 갔다.

변질의 두 번째 단계: 초대교회시대 카타콤의 종교요 핍박과 순교의 종교였던 초대교회는 순교의 시대가 서서히 지나가면서 힘과 부를 가지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제국과 중세기 신성로마제국 시대의 세속정치 기술을 교회도 습득했다. 세상 지배권력인 로마 황제는 부와 무력의 힘을 가져야 하듯이, 보이지않는 영혼구원의 진리를 책임지는 교회도 마찬가지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황, 감독, 교회, 심지어 수도원마저도 물질적 부와 물리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 결과, 제국 황제 곧 세속정치 권력과 교회와는 야합이 이뤄지고, 성직질서는 타락하여 성직매매가 이뤄지고, 십자군 전쟁과 이단마녀사냥이 계속되었다. 이것이 둘째단계 변질이다. 마침내 종교개혁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변질의 세 번째 단계: 루터 칼빈등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복음의 본질이 조금 회복되는가 싶더니, 곧바로 불어닥친 계몽주의 정신과 근대과학사조를 성숙하게 소화해 내지 못하고 개신교는 교리주의와 도덕엄숙주의를 바탕에 깐 '근본주의적- 천로역정의 탈역사적 기독교신앙형태'로 변질되어 갔다. 기독교 교인들은 술담배 안하고 놀음판이나 연극장에 안가는 경건주의 신자로 육성했으나 거기엔 기쁨, 웃음, 유머가 없는 가부장적 엄숙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베들레헴 말구유가 보여주는 평화, 사랑, 모성의 따사로움, 생태학적 샬롬은 실종되고 공격적 기독교, 성장위주 기독교, 영토확장 기독교, 마침내 자본주의 신봉자 기독교가 되고 말았다.

화이트헤드 눈에서 냉철하게 볼 때, 역사적 기독교와 오늘날 교회모습은 예수가 전파한 갈리리복음과 거리가 멀다. 미국의 경건주의 교회도 기껏해야 가부장적 엄숙성을 강조하는 권위적 기독교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말한다. 갈릴리복음이 가르친 하나님은 강제가 아닌 설득, 심판이 아닌 용서와 화해, 미움과 편가르기가 아닌 사랑, 부성적 강직함이 아닌 모성적 유연성, 성공상승이 아닌 겸비와 비움,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르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화이트헤드 생각이 예수님 가르침에 더 가까운가 오늘날 한국의 힘숭배 교역자들의 가르침이 더 가까운가? 성탄절이 가까워오는 요즘 우리를 뒤돌아 보게 한다. 진정 한국 교회가 갈릴리복음의 원형적 모습으로 되돌아 가기는 불가능한 것인가?

※ 숨밭 김경재 박사의 '옹달샘과 초점'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옹달샘과 초점'은 물처럼 순수한 종교적 영성과 불처럼 예리한 선지자적 비판과 성찰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신학자 김경재의 신앙 에세이 글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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