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노예시대가 그런대로 좋았는데...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민중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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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지난 제67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제67회 총회에서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 30주년을 맞는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고대 유대 민족이 강대국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간, 광야와 사막에서의 고난의 여정은 오늘 우리 민족의 자유와 해방의 역사를 뼈저리게 반추하게 한다.

해방자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나, 동족을 살해한 죄목으로 사막으로 도망쳐 양떼를 돌보는 양치기로 존재의 밑바닥에서 끓어 오르는 노예 민족의 분노를 삼키며 연명해 오다가, 불타지 않은 가시덤불 속에 타는 불을 만난다. "타지 않는 떨기 속의 불꽃"의 음성은 말한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그래서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출애급기 3:7-9) 불꽃 속의 음성은 모세를 불러내어 이스라엘 해방의 대 역사, 새 역사를 맡겼다.

정치적 망명자 모세는 불 꽃 속의 음성에도 놀랐지만, 그 음성이 말하는 엄청난 역사적인 민족 해방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모세는 엎드려 "제가 감히 무엇이라고...."(출애급기 3:11) "나는 동족을 살해한 죄수로 지금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도망자"에 불과한데.."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모세는 감히 그 불꽃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질문한다. 내가 이집트의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요구하면 도대체 누가 그런 엄청난 일을 시키더냐 할 텐데..라는 핑계였지만, 해방자의 정체성과 권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불꽃 속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영어로 하면 "I am What I am." 혹은 "I AM; that is WHO I AM>"(The New English Bible). (출애급기 3: 14.) 최근의 번역으로는 (I Will Be What I will Be." 시제로 볼 때 현재형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 될 나이다."라고나 할까? 결국 해방자 하느님은 현재의 하느님일 뿐 아니라 미래의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역사적인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출애급기 3: 6)이라고 밝히신다.

노예들의 exodus, 탈출은 실로 극적이었다. 노예들을 석방하고도, 이집트의 폭군 바로는 아쉽고 분해서 군대를 풀어 탈출하는 노예들의 뒤를 좇는다. 마치 우리나라 남녘땅 광주의 유신 독재 군사정권의 노예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참혹한 죽음 뒤, 참된 해방과 미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유신철폐"와 "개헌"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전두환 장군이 군대를 풀어 총 칼로 무고한 민중들을 학살하고 탄압한 것처럼 말이다. 전두환 장군은 성공 헀지만, 이집트 폭군 바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해방자 하느님은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중이 홍해 바다를 건너야할 때, 거센 바람으로 홍해바다를 갈라 놓고 해방의 길을 열었다. 이스라엘 노예 민중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자마자, 뒤 따르던 이집트 군병들은 홍해 바다의 물귀신이 되어 버린다.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새 땅, 희망의 땅, 험한 광야 길에 들어 섰을 때, 해방자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중들을 친히 인도하신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갈 길을 안내하시고, 어두운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 잃은 떠돌이 백성들의 방향을 찾아 주셨다. 그러나 혁명과 해방의 길은 험하고 배고프다. 가나안 복지로 향한다고 하지만, 미지의 세계이고 광야와 사막의 길은 험하기만 하다.

"이게 정말 해방의 길인가?" "이거 우리가 완전 속은 거 아닌가?" "아, 왜 우리는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불평불만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나온 지 몇 달도 못되어 백성들의 원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고 여기까지 끌고 나와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다." (출애급기 14:11) 해방된 민중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특히 이집트의 폭정 밑에서 그래도 이집트 왕국의 앞잡이로 경찰이니 군인이니 일꾼들을 부려 먹기라도 하면서 밥술이라도 배불리 먹던, 이른바 기득권자들, 이집트의 부역자들은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무고한 민중들을 선동한다. "해방이고 뭐고, 가나안이고 뭐고, 배고파 죽겠다.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면서.

해방자 모세는 하느님에게 호소한다. 민중들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이면, 바위 돌을 쳐서 생수가 나오게 하여, 끼끗한 생수를 마시게 하고, 배고프다고 하면, 사막에 만나를 이슬 같이 내려 배불리 먹게 한다.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이스라엘 헌법, 하느님 나라의 법과 생활제도와 종교 문화를 구상하고 명문화한다. 모세의 법은 하느님의 법이고, 그것은 오늘날 까지 "십계명"으로 우리에게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민족의 법도는, 해방된 민족의 생활 법칙이 되었고, 어디까지나 미래의 새 시대를 위한 해방의 시대의 "하느님의 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광야와 사막의 해방된 이스라엘 민중은 길을 잃으면서 해방의 미래와 희망을 잃고 만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는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먹던 때가 그립다."(출애급기 16:1), "배고픈 해방"은 필요 없다. 노예 생활이라도 하루 세끼 배불리 먹던 때가 그립다는 것이었다. 결국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붙이 앞에 절하며, 부자 되기를 원했다. 하느님의 고되고 먼 해방의 길보다는 당장 배불리 먹게하는, 경제를 활성화 시켜 달라고 황금 송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쳤다. 해방된 민중의 영혼 뿐 아니라 마음과 몸까지도 썩어 들어갔다. 행방자 하느님을 버린 민족은 "구제 불능"의 "인간쓰레기"로 타락하고 죽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집트 제국은 우리에게 일본제국주의였고, 이스라엘 민중의 해방자 모세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민족해방자였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우리의 하느님, 우리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 시켜 주시는 해방자 하느님으로 경배하고 의지하고 믿고 살아왔다. 1945년 8월 원자탄의 무서운 불꽃은 우리 민족의 해방의 불꽃으로 믿었다. 이제 그 불꽃으로 우리 민족은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고 믿었었다. 우리는 그 원자탄의 무서운 불꽃을 하느님 보다 더 믿고 있었다. 하느님의 힘이 아니라 원자탄의 힘으로 해방됐다고 믿은 우리에게는 남북 분단이라는 "불똥"이 튄 것이다.

우리에게 해방의 여정은 길고 고되고 멀기만 했다. "그래도 일제시대가 좋았어. 하루 세끼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지..." 해방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해방의 고달픔,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일제시대 만큼은 살아야 한다. 치안이 문제다 하면서, 결국 일본 경찰의 앞잡이들을 '민족 경찰'로 영입할 수밖에 없어진다. 일본제국의 앞잡이로 부역한 "친일파"기 득권 세력은 정계로 사업계로 공장장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옛날이 좋았어..." "엣날 일본군대가 강한 군대였어. 우리 국군도 일본 군대처럼 훈련시켜야 해." "일본 제국대학의 법과대학에서 배운 대로 우리 법을 만들면 돼..." "그때가 좋았어. 더도 말고 일본 사람들 만큼만 살 수만 있다면 좋겠어..."

해방의 역사, 미래의 역사, 4.19 학생 혁명은 해방의 역사를 바로 세웠다. 그러나 그 역사는 오래 가지 모했다. 일제시대의 치안과 안보를 숭상하는 군사주의 세력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해방의 역사의 반동이었다. 해방의 여정은 20여 년이나 막혀 버렸다. 해방의 광야에는 금송아지의 황금빛을 발하며 경제제일주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다국적 기업의 황금 송아지의 위력이 늘어 만 갔다. 모든 종교는 황금송아지 우상숭배로 송아지 앞에 절하고 경배하고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5.18의 민주주의와 정의, 참된 민중 해방의 외침은 다시 이집트 군대 이상의 화력으로 조용해졌다. 2016년의 광화문의 촛불 혁명은 3년도 못 돼서 꺼져 가고 있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 공존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험하다. "그래도 박정희 때가 좋았다. 경제성장, "한강의 기적"을 우리가 만들지 않았는가?" "'황금 박쥐'를 경배하자. "분단이 문제냐?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그만 아닌가?" "왜 이리도 힘든 평화 통일을 하겠다고 우리 대통령은 북의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란 소리까지 들으며, 우리를 괴롭히냐?" "너희들이 말하는 평화 통일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소리, 김정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길이다. 왜 종북, 빨갱이 소리 들으며, 한국을 평화의 이름으로 팔아 넘기려고 하는가? 왜 인생을 그리 어렵게 살려고 하느냐?" "평화와 통일, 민족의 해방 보다 우리집 아이 입시, 내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 밥을 벌어야 살지 않겠는가?"

오늘 우리는 모세가 이끄는 험난한 해방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황금박쥐와 함께 배불리 먹고 역사의 낙오자로, 황금박쥐를 숭배하는 '행복한' 노예로 죽어 갈 것인가? 우리는 이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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