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종단 개혁에 맞선 설정 총무원장, 언론관 우려스럽다

종단지 앞세운 '언론 플레이', 개신교라고 다르지 않다

본지, 설조스님 대중목욕탕서 40여분간 목욕 포착...목욕탕 관계자 "최근 자주 왔었다"(<불교신문> 7월 13일)

조계종 종단이 발행하고, 설정 총무원장이 발행인으로 있는 <불교신문> 7월 13일자 보도 소제목이다. 이 신문은 조계종 종단 개혁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이 대중목욕탕에 출입한 점을 지적했다. 보도 중엔 "20여 일 넘는 장기간 단식으로 인한 탈수 상태일 가능성이 높고 체내 전해질에도 이상이 생겼을 위험성이 있으므로 입욕이나 사우나 반신욕 등은 매우 위험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동국대학교병원 의료원 소속 '한 전문의'의 소견도 반영돼 있다.

합리적 의혹 제기는 언론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설조 스님의 대중목욕탕 출입을 문제 삼은 <불교신문> 보도는 어딘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설조 스님의 단식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조계종 종단은 개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이와 관련,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설정 총무원장의 은처자 및 학력위조 의혹,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성폭력 의혹, 일부 승려들의 도박 행각 등을 고발했다. 'PD수첩' 보도에 앞서 불교계 인터넷 신문 <불교닷컴> 역시 종단 내 유력 스님들, 즉 '권승'들의 비리를 꾸준히 추적해 왔다. 이러자 일선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이 종단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고, 급기야 원로인 설조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설정 총무원장 등 의혹의 당사자들은 떳떳하다. 사실 비리 의혹에 버티기로 일관하는 '윗분'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난 살짝 시선을 다른 지점에 맞춰보고자 한다. 바로 설정 총무원장 이하 비리 의혹을 받는 권승들의 언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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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조계종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지만, 정작 종단 수뇌부는 언론 보도를 탓하며 버티기로 일관 중이다.

설정 총무원장은 'PD수첩' 보도를 '불교를 파괴시키는 법난'으로 규정했다. 또 조계사 일주문에 '공영방송 망각 MBC는 불교파괴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편 <불교신문>은 연일 설조 스님을 비롯,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종단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을 흠집내는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신문의 보도 중 일부를 추려 본다.

"우리 종단은 지난 60여 년 간 폭력으로 인해 엄청난 몸살을 앓았다. 종헌 종법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세를 규합하여 집행부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며 사회적 불신과 신도 이탈을 초래했다. (중략) 새로운 집행부가 그 이전과 다르다는 보장도 없다. 화쟁위원회를 통해 모든 문제를 올려놓고 대화로 합의하는 좋은 방식이 있다. 또다시 폭력과 중도하차라는 아픔을 겪을 수 없다. 그리고 외부 세력이 너무 많이 개입돼 있다. 종단 소속 여부가 불분명한 스님에다 시민, 노동 단체 등 왜 종단 문제에 개입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섞여 있어 혼란스럽다." - <불교신문> 7월 16일 자 사설 "종단 흔들기 안된다 " 중에서

"종단의 적폐청산과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불자들의 성스러운 신행공간인 대웅전까지 쳐들어왔다. 이들은 과격한 정치적 주장을 쏟아내며 주말 조계사를 찾은 참배객들을 내쫓았다." - <불교신문> 7월 16일 자 "'불자 맞는가?' 정치행위에 피멍드는 조계사 법당" 보도 중에서

"최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측의 상식이하의 집회 시위가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이 종단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불교신문> 7월 17일 자 "극단적 대립 폭력 조장하는 편협한 주장에 현혹되지 말라" 보도 중에서

종단 신문은 기관지?

<불교신문>의 보도를 요약하면 설조 스님이나 시민단체들은 종단을 흔드는 외부세력이라는 논조다. 이런 논조 역시 낯설지 않다. 설조 스님의 대중목욕탕 출입을 문제 삼은 보도에선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40일 넘게 목숨을 건 단식에 나선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국궁 취미를 들춘 <조선일보> 보도가 겹쳐 보인다. 종단 개혁을 외치는 시민단체들을 '불순한' 외부세력으로 규정한 것도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정권이 보인 태도와 판박이다.

설정 총무원장은 종단에서 발행하는 매체를 기관지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설정 총무원장의 언론관은 개신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개신교 안엔 수많은 교단이 있고, 교단 기관지 성격을 갖는 매체들 역시 존재한다. 교세가 강한 교단의 경우 교단지 재정도 넉넉하다. 한 번은 유력 보수교단의 교단지 편집국장이 경영을 방만하게 하다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반면 교세가 약한 교단의 교단지는 소속 교회의 광고와 신도들의 후원헌금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한다.

더욱 심각한 건 논조다. 일단 교단 소속 목회자들의 비리나 교단 내 논란은 금기시된다. 교단지가 아니어도 실정은 비슷하다. 크리스천 기자협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교단지 포함 개신교 계열 매체는 59개에 이른다. 이들 매체들의 경영 상황은 거의 예외 없이 열악하다. 이런 이유로 취재·보도보다는 유력 교회나 교단의 광고 수주에 더 열을 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A방송사 등 비교적 공정한 논조를 유지하는 매체들 역시 대형교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형교회는 거액의 광고비를 내고, 방송사들은 이 교회 담임목사들의 설교를 방송에 내보낸다. A방송사 내부 구성원끼리 쓰는 표현을 옮기면, 만에 하나 보도를 통해 '큰 목사님'들을 '까면', 대형교회는 즉각 광고비를 '깐다'. 이러니 교회나 목회자들의 비리가 교단 안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일쑤다.

심지어 일부 매체들은 의도적으로 비리 목회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보도를 쏟아내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신도들이 해당 매체 기자를 현장에서 쫓아내고 취재를 거부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오히려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 세습이나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성폭력 등 교계의 민감한 이슈들은 JTBC 등 일반 언론이 집중 보도하는 실정이다.

또 일반 언론에서 목회자들의 비리를 드러냈어도, 교단지들은 이들의 방패막이 노릇을 자처하고 나선다. 물론 본지는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자 애쓰고 있지만 '주류' 교단들이나 비리 목회자들은 '교회를 흔든다'며 홀대하기 일쑤다. 가톨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설정 총무원장의 '언론 플레이'는 비단 설정 총무원장 개인이나 혹은 조계종 종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개신교·가톨릭 등 대한민국 기성 종교 기득권자들의 언론관을 드러내는 단면으로 봐야 정확하다는 판단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앞서 지적했듯 설정 총무원장은 'PD수첩' 보도에 대해 법란 운운하며 언론 보도를 탓했다. 비슷한 경우는 개신교에도 있다. 1998년 4월 당시 MBC 시사보도 프로그램 <시사매거진2580>은 '길 잃은 목사' 편을 통해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각종 비리를 보도했다. 이러자 김 목사는 강단에서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MBC 보도를 마치 자신에 대한 박해인 양 묘사했다. 한편 성도들 수백 명은 MBC로 달려가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 목사가 보였던 행태는 지금 설정 총무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죄악에서 발걸음을 돌이키라

개신교든 불교든, 이 세상의 고등 종교가 공통적으로 설파하는 가르침이 있다. 바로 '돌이킴'이다. 개신교에서는 이를 '회개'라고 한다. '돌이킴'이란 말 그대로 발걸음을 되돌린다는 의미다. 핵심은 '어디로부터'다.

개신교에서는 죄에서 발걸음을 되돌리라고 가르친다. 죄란 다른 게 아니다. 돈과 권력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죄다. 사도 바울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다. 돈과 권력을 쫓는 길에서 발걸음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라는 게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이다. 불교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는 것으로 안다.

부디 설정 총무원장 이하 권력자들에게 당부한다. 다른 종교인에게도 똑같이 당부하고 싶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혹시라도 종단 권력에 집착이 있다면 그 집착을 얼른 버리시라. 지금처럼 잘못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언론만 탓하고, 종단 언론을 방패막이 삼는 일은 업보를 쌓는 일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또 하나, 이 참에 각 종단을 막론하고 종교인들의 언론관과 종교언론의 역할, 종교계 언론 종사자들의 인식 재고 등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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