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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대통령 앞에서 어깃장 놓은 소강석 목사, ‘희년’ 정신 되새기라

목회자들 앞에서 그리스도교 본질 일깨운 문재인 대통령 축사, 어느 설교보다 뛰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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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출처 = 청와대)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렸다.

"그러므로 오늘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서 대통령님께서 하나님의 큰 은혜와 성도들의 뜨거운 격려를 받으시고, 새 힘을 얻으셔서 국민들을 더 잘 섬기시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가는 축복의 지도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선거 때는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도 일단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국가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여 기도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소강석 목사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올해는 희년의 해를 축복하는 자리여서 더욱 뜻깊습니다. 성경에서 희년은 죄인과 노예, 빚진 사람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해방과 안식의 해였습니다. 약자는 속박으로부터, 강자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경계와 벽을 허무는 포용과 화합의 정신이 희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희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기도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문재인 대통령

8일 오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온 메시지 들이다. 먼저의 인용은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대표 설교 가운데 한 대목이다. 아래는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 중 일부다. 눈밝은 독자들은 여기만 읽어도 차이가 확연하다는 걸 눈치채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소 목사의 설교는 명백히 정치적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전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듣기조차 낯뜨거울 정도로 노골적인 정권 찬양 수사가 넘쳐났다. 소 목사는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수만 명을 섬기는 목회를 하지만 따뜻한 카리스마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비교적 다툼 없는 건강한 목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야성과 안티세력이 생겨나는 걸 봅니다. 하물며 각자의 생각이 다른 5천만 명을 섬기고 수백 개국과 정상외교를 해야 하며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정운영을 하시는 대통령님께서는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실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의 심기를 챙기던 소 목사가 정권이 바뀌니 '하나님의 절대주권' 운운하며 "국가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라"는 취지의 설교를 전했다. 이게 소 목사 말대로 절대주권에 대한 믿음의 표현인지, 아니면 정무감각인지 혼란스럽다.

반면 문 대통령의 축사는 간결했다. 특히 '희년'을 언급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희년'이란 토지 정의를 실천한 고대 유대인의 풍습에서 비롯됐다. 원래 의미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 마다 돌아오는 해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빠져나와 가나안에 정착했고, 하느님께서는 12개 부족에게 토지를 나눠줬다. 유대인들은 토지를 받은 지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정한 다음, 토지를 쉬게 했다. "칠 년째 되는 해는 야훼의 안식년이므로 그 땅을 아주 묵혀 밭에 씨를 뿌리지 말고, 포도순을 치지도 말라"(레위기 25장 4절)고 한 하느님의 명령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토지 경작자의 노력 혹은 가뭄 홍수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빈부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경우에 따라선 토지 소유권을 넘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안식년을 기준으로 오십 년을 맞는 해를 희년으로 정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토지 소유권 회복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한다.

"오십 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지킬 해이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 돌아 가야 한다." - 레위기 25:10(공동번역 성서)

희년엔 비단 토지 소유권만 원상복구 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채무와 종살이에서도 해방됐다. 말하자면 사회적 적폐를 50년 주기로 회복시킨 셈이다. 신앙의 관점에서는 물론 경제정의 관점에서도 희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희년과 적폐청산은 일맥상통

문 대통령은 희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죄인과 노예, 빚진 사람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해방과 안식의 해"라고 했으니 말이다. 문 대통령은 희년을 언급하면서 "오늘 우리 사회에서 희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기도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희년의 의미는 새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과도 일맥상통한다.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은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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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출처 = 청와대)
8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희년의 의미를 일깨우는 한편, 미투 운동에도 연대를 표시했다.

"이 땅의 여성들은 정말 강합니다. 신앙과 사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여성들의 차별과 아픔에 대해 다시 한 번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통받은 미투 운동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소 목사 역시 희년을 언급하기는 했다. 그러나 소 목사는 이를 사회정의가 아닌, 번영으로 연결시킨다.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에 만연한 번영신학이 엿보인다.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이런 희년을 맞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영광의 50주년이라는 희년을 맞아 오늘 이 희년의 기도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더 번영하고 번성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소 목사의 설교 중 가장 불편했던 지점을 언급할 차례다. 일단 소 목사의 설교 어디에서도 미투 운동에 대한 공감과 지지는 없었다. 소 목사가 속한 예장합동 교단이 대법원에서 성범죄가 인정된 삼일교회 전아무개 전 담임목사에게 설교 정지 2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교단임에 주목하자. 소 목사는 또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들을 차별을 하지도 않고 처벌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누가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처럼 차별 없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소 목사, 정의 운운할 자격 있나?

더욱 경악스러운 지점은 적폐청산을 언급한 대목이다. 소 목사는 적폐청산에 대해 '정의도 지나치면 잔인해진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분명히 잘못된 적폐를 고쳐야 합니다. 긴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병폐와 부정부패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이 또 다른 적폐를 낳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경계해야 합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보여준 것처럼 정의도 지나치면 잔인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진정한 정의는 사랑과 정의가 입 맞추고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적폐마저도 미움과 증오로 청산하지 말고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나친 정의가 잔인해지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그러나 이제껏 한국 교회는 정의로왔던 적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소 목사 본인이 정의롭지 못했다.

소 목사는 현 정부의 종교인 과세 시행 방안에 맞서는데 앞장선 장본인이다. 소 목사는 지난 해 9월 목회자납세문제대책위원회 보고 시간에 "이중장부를 만들자고 했다"가 해명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조세정의는 정의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덕목 중 하나다. 조세 정의 실현을 앞장서 가로 막은 소 목사가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정의도 지나치면 잔인해진다"고 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요약하면 소 목사의 설교엔 사회정의도, 미투 운동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한편으로는 대통령에게 아부하면서, 적폐청산엔 교묘히 어깃장을 놓았다.

반면 문 대통령의 축사엔 희년의 정신이 담겨져 있었고, 미투운동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메시지가 스며 있었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게 그리스도교의 정신이다. 결국 문 대통령의 축사가 오히려 더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가까웠던 셈이다.

국가조찬회 이전, 문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청와대에 문 대통령의 불참을 촉구하는 청원이 7건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축사를 듣고 보니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설교를 맡은 소 목사를 비롯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목회자들이 문 대통령의 축사에 담긴 정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의 축사야 말로 진정한 그리스도교 정신의 표현이니 말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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