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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선교는 복음을 밥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입력 Dec 21, 2017 11:53 AM KST

편집자 주] 연말이 되면서 무료급식소도 바빠진다.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절기상 선물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선한 일을 할 때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와 동등한 인격체이며 영혼의 구원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신실한 신앙인이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연말에 신문사로 날아온 제보에 대해 답을 하는 겸 이 사실을 함께 상기하고자 하여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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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지유석 기자 )
▲무료급식은 생명을 나누어주는 거룩한 사역이다. 사진은 공인현 선교사가 아프리카 최대 슬럼가인 키베라에 세운 학교에서 학교 아이들에게 급식을 하는 모습.

이번 달 12일에 본 신문의 독자로부터 받은 제보이다. 그는 대전시 Y동 소재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데 급식소에서는 금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4시부터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고 배식하는데, 그는 5시 이후에 도착해서 밥을 먹었을 때 몹시 불쾌감을 느꼈다. "예배 안 드린 사람은 밥 먹을 자격 없다"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제보자는 이 급식소가 배식이 시작되면 문을 잠그기 때문에 지각하는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도 전했다. 게다가 식후에 선물을 줄 때는 "예배 안 드린 사람은 선물 받을 자격 없다"는 '규칙'에 따라 빈손으로 나와야 했던 적도 있었다. 선물은 절편(떡)이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더니 불만이 있으면 관공서에 민원을 넣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료급식소는 한 기독교 교단에서 운영하며 운영담당자는 Y목사이다. 제보자는 목사가 어떻게! 기독교가 어떻게!라며 고발한 것이다. 하지만 급식소의 일반적인 상황을 그려보면 Y목사의 발언이 급식소 운영의 육체적, 심리적 부담을 반향한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중이 이용하는 곳이니까 규칙과 질서를 설정해야 하고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 누적된 피로감이 제보자가 모욕을 느낄 만한 말들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예배를 강조한 것도 이용자들을 교화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의 발로였을 법하다. 비록 제보자는 모욕감 때문에 Y목사의 "헛소리와 횡포"에 분개했지만, 운영자의 선한 책임감이 상황적 여건에 의해 왜곡되어 버린 것이 사건의 가려진 본질이다. 물론, 그 고발의 내용은 제3자가 듣더라도 심기가 불편해질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선한 일을 하는데 고발을 당할 때는 그 일의 과정에 대해서 근본적인 반성을 다시 해야 한다는 신호가 온 것이다. 운영자가 이용자들을 대하는 마음자세뿐만 아니라 기관 운영의 제반 부담이 개인에게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제보자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예배 행위 자체라기보다 인격적 모욕감 때문이다. 누구든 밥을 먹을 때는 가장 본질적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옹그리고 있다가 배를 채우면 어깨가 펴지고 인간의 형체를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의 뒷머리는 더 숙연하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황지우, "거룩한 식사")

적어도 밥상은 밥을 먹는 자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급식소는 이용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밥을 얻어먹는 처지에 있다는 말을 사실상 내뱉었다. 배를 곯는 것뿐만 아니라 빚 독촉을 받거나 마감이 다되었는데 만들어놓은 성과가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러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사람의 물리적 곤핍에 대해서 영적인 해법을 들이대면서 모욕한 것이다. 기독교는 벽을 사이에 두고 막다른 골목의 뒤에서 가르침을 던져주는 종교가 아니다. 우리도 한때 영혼의 막다른 골목을 경험한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무료급식소는 기독교 교단에서 선교적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이겠지만, 그 교단은 선교의 결과를 숫자로 확인하고자 하는 부담을 급식소 운영자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 결신자의 숫자가 몇 명인지를 보고하게 하고, 그것을 마치 인사고과를 평가하듯이 차후 지원과 관련한 사정자료로 삼는다면, 급식소 운영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밥을 안 준다는 말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복음을 밥과 바꾸게 한 것은 상급관리기관인 교단의 잘못이다. 교단은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숫자로 그 확산효과를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선교란 거룩한 소비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급식의 과정이 하나님의 복음의 가치를 밥 한 끼 수준으로 격하시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예배를 드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예배를 드림으로써 배를 채웠으니까 가난한 자에게 즐거운 소식이 임한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영혼의 구원을 예단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예배에 참석시켰다고 해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게다가 밥 한 끼를 조건으로 예배에 참석했다면 어떤 사람의 경우 자신의 영혼을 밥 한 끼에 팔았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 인간의 노력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참견하고자 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 영혼의 구원은 우리 인간의 노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물론, 이렇게 지적한다고 해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며 날마다 그 이용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시간으로나 물질로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복음은 언제나 낯선 세계로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충돌로 인한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낯선 세계를 어둠이나 죄의 세계로 규정하게 되면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죄가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이것은 자타 모두에게 부적절하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항상 힘써야 하는 과정에서 예배를 강조할 수는 있지만, 예배참석을 권유할 수는 있어도 밥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선물이어야 할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고 영혼의 구원을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하려는 시도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배 안 드린 사람은 선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선물이란 원래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신실한 선교자들이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복음이 거룩한 소비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과, 영혼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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