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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탄핵 이후: 악의 평범성에 경각해야

입력 Mar 13, 2017 11:38 AM KST
yoonsanghyun
(Photo : ⓒYTN 보도화면 캡처)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돌아갔다.

2017년 3월10일 11시, 숨 가빴던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종지부가 찍혔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용되었고 그 시간으로 대통령은 파면됐다. 그리고 12일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돌아갔다. 탄핵 정국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그 형식적 절차의 이면에서 새로운 과제가 제시됐다. 국회 청문회와 특검의 조사를 통해 한국 정치계의 쌓여진 폐단이 드러났고 그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정치계의 적폐가 이만큼 적나라하게 적발된 적이 없으므로 이 시점은 한국 정치사의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적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검토하는 일은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정치 훈련을 도모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따라서 대통령을 포함하여 특정 인물 몇몇을 지목해서 처벌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국정농단의 사태에 대해 그저 희생양을 만들어 그 동안의 울분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데 그칠 뿐이다. 탄핵정국의 과정에 드러난 대통령과 상층권력부의 '비법률적인' 잠행은 현재의 권력체계 아래에서 필연적인 종착지였다. 대통령의 오판을 곧이곧대로 수첩에 적어서 실행하게 한 체제와 그 체제를 운영했던 '영혼 없는' 엘리트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했기 때문에, 이 사태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1963)에 나오는 아이히만의 주장처럼 그들은 억울할 수 있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것이 오판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청문회의 과정과 특검 심문의 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바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청산될 적폐의 주요 내용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권력구조와 정치제도 아래서는 적폐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권력 엘리트들이 '영혼 없이' 상부의 명령만을 수행하게 되면 적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농단 사태가 발각되고 국격이 실추된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국정을 오로지 '그들만의 리그'로 삼고 권력의 자기증식을 영구화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 셈이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사사기의 평가를 상기시킨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21:25). 사사 시대를 조망한 역사가의 이 같은 평가에는 왕조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그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한 의도가 실려 있다. 그러나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자들의 고통이 명약관화한 현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게 되었고 권력자들의 수중에서 옳음이 옳음으로 통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라는 말은 자신이 옳다고 보는 대로 행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좀 더 천착해보면, 상대방에게 옳음으로 인정될 수 없는 것도 자신의 '옳음'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옳은 것으로 강요할 여지가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옳음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의 범위는 매우 넓어서 그 결과를 보고 옳음의 여부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권력엘리트들은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는 체제 아래서 국정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했지만, 그 결과가 악으로 드러났다. 자신에게는 평범한 일이어서 기계적으로 그 일을 수행했으나, 그 일에 대해 분별하지 못한 것 자체가 악인 것이다. 대중을 '개·돼지'로 분류하고 정권에 불편한 문화인사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며 재벌의 편익을 위해 비정규노동자들의 생존의 위기를 무시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평범한 일들이 악이 될 수 있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동했다.

이 사태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왕은 생명의 질서, 영혼의 가치를 상징한다. 이 왕은 명령불복이나 계통무시를 부추기지 않고 적절한 정치훈련을 안내할 기준이 된다. 생명의 질서, 영혼의 가치를 생각했더라면, 아이히만은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일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생명의 질서, 영혼의 가치를 생각했더라면, 우리의 정치인들은 권력과 재력 아래서 부당하게 스러져 가는 생명을 보고 정책을 재고하며 행정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공직자들이 있었으나 적폐 속에서 그들은 제거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비인간화되어 있으며 정권을 쟁취의 대상으로만 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가 누적되어 온 것이다. 정치란 생명과 영혼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가진 자의 양보를 유도하고 온 국민이 공정한 규칙의 적용을 받도록 헌신해야 하는데, 우리의 권력엘리트들은 악의 평범성에 오염되어 있었다. 이 사실에 경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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