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기독인들과 불자들, '도반'(道伴)이 되고자 대화를 시작하다

레페스포럼에 12명의 기독교 불교 학자들 모여 9시간 토론

leekwanpyo
(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종교간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을 위해 기독자들과 불자들이 만나 토론을 벌여 이목을 끌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를 표면적으로 접근하면 이질성이 상당하다. 그런데 이 두 종교가 사상적 차원에서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종교간 대화를 시도하면, 어쩌면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재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두 종교의 진리체계 모두 인간에 의해 형성되어오지 않았는가.

종교 간 대화를 통해 평화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레페스포럼'1)이 제1회 심포지움을 열고 12명의 기독교와 불교 학자들을 초청해 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다. '불교와 기독교, 무엇이 같고 어디가 다른가'라는 주제로 11일부터 이틀간 씨튼영성센터에서 3회에 걸쳐 장장 9시간 이상의 발제와 토론을 진행했다.

발제 및 토론자들은 기독교 측 김승철(난잔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HK연구교수) 김근수(가톨릭 해방신학연구소장) 손원영(서울기독대 교수) 정경일(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 이관표(협성대 교수)이고 불교 측 김용표(동국대 명예교수), 이도흠(한양대 교수), 명법스님(은유와마음연구소) 송현주(순천향대 교수) 류제동(성균관대 교수) 원영상(원광대 연구교수)이다. *기사의 가독성을 위해 주요내용을 부호로 인용하는 대신 문단 단위로 정리하는 방식을 택하여 작성하였다.

이 두 종교 간의 대화는 양자 간의 동일화를 지향하지는 않았다. 기독교와 불교는 각각 개별성과 고유성이 있고 이 다름이 곧 각 종교를 있게 하는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 사이에는 가족유사성(Familienähnlichkeit)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심포지움은 존재하는 두 종교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연결점들을 찾아내는 것에 역점을 두었지만, 동시에 다름은 다름대로 고유하게 보존하였다.(이관표)

기독교인들이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구원'의 문제다. 한계 속 인간은 하나의 절대적 실재(The Ultimate)를 분명 여러 방식으로 체험하고 표현할 것이지만 기독교의 '오직'은 타협이 어렵다. 기독인들이 보는 '산'과 불자가 보는 '산'이 같은 산일 수 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두 개의 산일까.2) 이것은 인간이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같은 산이든 다른 산이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다르고, 각각의 길이 구원을 향해 있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구원을 경험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정경일)

이 대화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그리스도'교'이든 불'교'이든 둘 다 인간의 초월성에 대한 통찰이 각각의 종교 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이 그저 지성소에 높이 고양되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을의 작은 목수로 오셨고 그 목수에게서 하나님을 본 사건, 이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이 흥기했다. 불교에서 붓다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다르마(dharma, 法)를 이야기했다. 절대적이면서 지고하고 또한 진리로 여겨지는 이 다르마는 붓다가 있기 전부터 있어왔다. 붓다는 다만 발견자일 뿐이며, 붓다는 선재하는 진리(다르마)를 깨달음으로써 선각자가 된 것 뿐이다. 붓다라는 성인이 아닌, 갇히지 않은 역동적 진리 다르마가 불자들로 하여금 불교전통을 형성하도록 이끌었다.3)(류제동)

그리고 예수와 붓다 둘 다 종교개혁자이기도 했다. 예수는 유대교적 문화권 속에서 하느님의 눈으로 '하느님 나라'라는 초월적 비전을 제시했고, 붓다는 힌두교 문화에서 깨달음을 얻고 열반이라는 초월적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둘 다 세상을 바꾸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볼 것을 이름으로써 자기중심적 삶에서 초월적 실재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을 요청했다. 그리고 부활과 윤회가 방향이 분명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살아온 현재적 삶이 죽음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는 도식은 상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종교의 뚜렷한 차이는, 기독교는 만물의 궁극적 원인이자 창조자이면서 세상의 원리를 주관하는 '절대자를 인격적 차원에서 긍정'하고, 불교는 인간 이전에 선재하는 세상의 '원리 자체'를 중시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이찬수)

한편 종교는 인간에 의해 축적적으로 형성되어 온 체계이기에 예수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그리고 붓다와 불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거의 단 한번도 권력자에게 저항해 본 적이 없다. 예수와 그리스도교는 하늘과 땅처럼 연결되어있지만 하늘과 땅처럼 거리가 멀다. 예수를 믿으려면 교회에 가면 안된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불교가 삶을 보는 키워드는 주로 고통이다. 붓다와 스승들의 위대한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교의 어두운 면이 완전히 해명되지는 않는다.(김근수)

그리스도인과 불자가 서로의 길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먼저는 자기 자신의 길부터 깊게 알아야 할 것이다. 타인과의 대화는 자신과의 대화를 전제할 때 가능하고 다른 길에 대한 개방성은 자신의 길에 대한 헌신성을 전제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붓다의 길로 건너갔다 돌아올 때마다 예수의 길을 더 새롭게 보게 되고 내가 걷는 이 길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더 깊어진다. 불자와 그리스도인은 함께 구원과 해방의 길을 걷는 도반(道伴)이 되어야 한다. 그 만남과 동행은 불자를 더 좋은 불자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인을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것이다."(정경일)

1박 2일의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제1회 토론이었던 만큼 초반에는 '동일성'을 찾으려는 욕심들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다름 안에서의 유사성들을 찾을 수 있었다"며 "진리의 다양한 상황들을 존중하면서 절대화될 위험을 지닌 중심은 비워놓는 지혜를 서로의 종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번 토론에서 총론적으로 공통점과 차이점들이 짚어졌는데, 이를 기반으로 향후의 토론에서는 각론으로 보다 깊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사회적 고통 문제에도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전하면서 "사회적 고통에 대한 응답과 참여가 우리의 대화와 협력을 더 깊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차 레페스포럼은 오는 여름에 열린다.

1)'레페스'는 REligion and PEace Studies의 약어로서, 종교가 폭력이 아닌 평화 구축에 공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종교 및 평화 관련 학자 20여명이 모여 2015년에 창립한 연구 및 실천 그룹이다.

2)여기서 '산' 은유는 토마스 머튼의 Asian Journal에서 발췌한 것이다. 머튼은 히말라야 다즐링에서 카첸중가 산을 보고 생각하고 밤에 꿈까지 꾸며 깨달은 바가 있어 그 내용을 Asian Journal에 썼다.

3)류제동은 캔트웰스미스의 기독교와 불교 분석을 인용하여 발표하였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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