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주기도문(Vaterunser) 해설(V)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입력 Feb 04, 2016 01:19 PM KST
kimyounghan
(Photo : ⓒ베리타스 DB)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IX. 저희를 악에서 구원하소서

1. 악의 네 가지 종류

"악에서 구하소서"(마 6:13b). 주기도의 마지막 청원기도는 바로 앞의 청원 "않게 하소서"라는 부정문을 "하소서"라는 긍정문으로 바꾼다. 악이란 무엇인가? 첫째, 악이란 비도덕적인 것, 비윤리적인 것이다. 탐욕, 불신앙, 범죄에 빠지는 것이다. 이 경우 악이란 인격적 존재가 자기 정체성에서 이탈하거나 교만하거나 과욕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둘째, 신체의 질병이다. 질병이란 건강한 몸과 정신의 상실로서 자연적 건강의 파괴다. 이 경우 악이란 비인격적, 물리적, 신체적 비정상 상태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불의한 구조나 제도이다. 인신매매, 성매매, 갱 조직, 마피아 조직 등이다.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권력의 전체주의적 패권(오늘날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IS], 알케에다 등)은 악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구조적인 악에는 인간이라는 인격적 존재가 연루되어 있다. 넷째, 자연재해가 가져오는 폐해(악)이다. 태풍, 지진, 폭우, 화산의 폭발, 토네이도, 엘리뇨와 나니요, 기후의 변화 등이다. 이 경우 악이란 자연적인 조화 상태의 상실로서 비인격적 존재다. 이처럼 악이란 비인격적 존재일 수도 있고 인격적 존재일 수도 있다. 두 가지가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악이나 악의 상징 배후에는 하나님이 허용하는 한에 있어서 인간사에 해를 끼치는 마귀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이러한 악은 개인의 몸과 마음,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파괴할 수 있다. 사단이 준동하여 욥의 아들, 딸들을 급속히 닥친 재난으로 희생시키고, 욥을 심한 피부병에 허덕이도록 하고, 다윗을 부추겨 욕망을 만족시키려 간통을 저지르게 하고 살인까지 범하게 하며, 군사적 안정을 도모하러 인구조사를 하도록 한다. 인간 개인의 범죄, 단체의 범죄, 국가의 범죄의 배후에도 악의 원흉인 마귀의 준동이 있다.

2. 악은 십자가로 이미 제압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러한 악에서 우리를 구하여 달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악의 세력과 공격은 보이지 않는다. 가시적인 우리 주변의 인물과 환경을 통하여 악은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를 파멸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악의 준동에 결단코 절망하거나 이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악마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며, 악의 권세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용하는 한에 있어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한 섭리에 따라 사용되고 봉사할 뿐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악이 결단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증언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떠한 악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b). 예수의 십자가로 악의 세력은 이미 제압되었다. 개선의 날은 아직도 오지 않았으나 이제 우리는 개선의 날을 대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 신학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이 천명한 기독교 종말론의 "이미-아직"(already-yet)의 긴장관계다.

사도 유다는 그의 서신에서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유 17절)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자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8절)고 예언하고 있다. 사도 유다는 마지막 시대에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20-21절).

X.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1. 송영은 삽입된 구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마 6:13c). 주기도의 이 구절은 나중에 삽입된 구절로서 짧은 형태의 주기도인 누가복음(11:2-4)에는 없고 긴 형태인 마태복음(6:9-13)에 전승되어 왔다. 긴 형태의 주기도는 그 자체로 이미 예배의식에서 사용되어 상당히 고정된 형식을 가지게 되었다. 2세기 첫 무렵의 교회 규범에 보면 벌써 13절에 예배를 마무리 짓는 송영이 덧붙여 그만큼 더 길어진다.

이 송영은 다윗이 솔로몬에 의해 건축될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예물을 드리면서 올리는 감사기도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용어 해설 "주기도," Stuttgarter Erkläungsbibel [해설 관주 성경전서], 56).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역대상 29:10-11).

그 뒤로는 이 송영이 신약성경의 나중 사본들에서도 마태복음의 주기도를 맺는말로 나온다.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이를 마태복음 6장 13절 하반절에서 괄호 안에 넣었다.

2.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주권자 하나님에 귀속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인간 왕이나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오로지 창조주와 섭리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귀속된다. 풍성한 성전 건축 예물을 드리고 다윗이 감사기도를 드린 구절("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은 우주의 창조자와 역사의 주관자이신 이스라엘 하나님의 주권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왕이 광기에 사로잡혔다가 그 정신이 되돌아 온 후 하나님을 찬양하는 어귀도 이와 비슷하다: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 그리고 로마서에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구원의 섭리를 계시 받으면서 드리는 사도 바울의 송영도 이와 비슷하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간구에서 송영으로 나아간다. 송영은 기도의 절정이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영혼의 찬양이다. (끝)

관련기사

오피니언

연재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6):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식전이나 식후 혹은 이기주의의 기도가 아니더라도 고통으로 가득찬 기도, 위안을 찾는 기도조차 응답해 줄 의무가 신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