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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복음의 경계는?

입력 Dec 29, 2015 02:20 PM KST

우리가 믿는 복음이 넓고 편안하고 쾌락을 주는 길이라면 진정 기쁜 소식일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내심 그것이 사실이기를 기대하거나 혹은 그렇게 되도록 도모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한 번뿐인 인생길을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로 채색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한 뒤 기뻐하셨던 하나님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태도이지 않는가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최근 교계 인터넷을 달군 한 여행상품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ㅇㅇㅇ 목사와 함께 하는 꿈같은 방콕여행'이라는 매혹적인 카피는 일반관광형과 골프투어형 해외여행이 현지에서의 새벽기도회와 저녁부흥회에 엮여 있는 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가의 즐거움이 거룩한 예배와 결합되어 있는데다 이 여행상품의 수익금은 물론 선교비로 사용될 것이므로 그 일정은 "꿈같은" 조합을 만들어낸 듯 보인다. 복음을 믿으며 사는 과정이 이같이 '꿈같은' 길이라면 이 복음은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과는 '다른' 복음인가?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일찍이 지적한 바 있다. 그가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한 '다른 복음'(갈1:6-7)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기존 유대교 전통의 할례를 포함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익숙했던 문화적 요소를 구원의 길에 접목하였으니 구원을 바라던 유대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일 수 있다. 특히, 할례는 유대인들의 신앙 전통에서 핵심적인 관습이므로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복음의 본질을 흐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요소이다. 게다가 바울이 정의한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주셨다는 것인데, 명목상으로는 할례의 관습을 금지할 만한 요소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율법까지 지키면 구원의 보증을 보다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니며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갈1:7)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수께서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고 죽었고 부활함으로써 율법의 구속을 제거하셨는데 그 율법을 구원의 보조 도구로 여기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교란과 변질의 결과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의 문화가 새로운 복음의 본질을 흐려서 혼합주의를 초래하고 그것을 통합이나 융합 등으로 이해하게 하는 배경이 됨을 경고하고 있다.

이 여행상품은 그리스도인들이 휴가를 즐기려는 과정에 선교적 목적을 부가한 것이든지, 혹은, 선교 목적의 여행 중에 휴가 일정을 추가한 것이든지, 그것에 대해 듣는 입장에 따라서는 매우 합리적이고 행복한 조합이고, 더 나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프로그램일 수 있다. 은혜와 여가, 복음과 행복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방콕에서 관광하고 골프투어도 하면서 현지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는 프로그램이니 '꿈같은' 여행이라는 선전문구를 내걸만 한 것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영적인 과업까지 수행하는 것이니 복음을 잘 다루는 사람의 경륜이 두드러지며 융합과 조화의 묘술을 발휘한 것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가를 즐기는 과정은 은혜의 요소로 윤색할 필요 없이 그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누릴 일이다. 물론, 복음이 주는 행복도 복음 가운데 거하며 그것을 실천할 때 누리는 행복이어야지 관광과 골프가 주는 행복으로 옷을 입힐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여행을 즐기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도 쾌락과 동일한 범주에서 유통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는 이처럼 율법을 복음과 같은 궤도에 두거나 해외여행상품에 부흥회를 패키지화해서 파는 행위와 유사한 사례가 많다.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기며,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동시에 마시는(고전10:21) 행위들이 합리화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행위들은 복음을 자신에게 익숙한 논리로 이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혼합주의적 양상들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혼합주의의 양상 아래에는 융합 혹은 통합의 명분보다는 욕심과 정욕과 명예와 쾌락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이러한 문화와 복음의 경계를 명확히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복음은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고' 실천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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