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시선] 새로 심은 나무에 열매 맺을 시간 줘야

지난 7월14일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 IVF의 전국리더대회 개막식 공연 영상이 공개된 이후 SNS 상에서는 디제잉워십(DJing Worship)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찬양을 ‘클럽’의 디제이들이 하듯이 진행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이에 대해 초반에는 공연 영상을 예배실황으로 오해한 듯한 비판들이 제기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디제잉워십의 형식 자체에 대한 찬반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다. ‘사탄의 음악’이라는 노골적인 비난으로부터 ‘찬양을 클럽음악으로 변질시킨다’는 등의 비판적 의견들이 대세를 이루는 한편으로 ‘예전에 밴드음악이 예배에 도입될 때와 비슷한 양상’이라는 문화포용적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토양에 새로 심겨진 나무에 대해서 ‘문화’와 ‘그리스도’의 갈등이 전개되는 현장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문화’와 ‘그리스도’의 문제를 리차드 니버 식의 ‘문화와 그리스도의 충돌’이나 ‘문화 위의 그리스도’라는 도식으로 성급하게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논란의 대상이 된 DJ 진호가 디제잉워십은 자신의 신앙적 열정의 표현으로서 다양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바(본지 기사 “디제잉워십은 나의 신앙적 열정의 표현” 참조), 그가 신앙적 열정을 고백한 이상, 디제잉워십에 대한 평가는 그 새로운 형식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읽혀지고 이로 인하여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온갖 신학적, 사회문화적 논쟁도 만약 그 새로운 형식이 신앙의 본질적인 지평을 담보하고 있다면 해소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디제잉워십처럼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는 새로운 시도들을 볼 때마다 아나톨 프랑스의 단편 “성모마리아의 곡예사”를 떠올리게 된다. 곡예사 출신인 바르나베는 수도사가 된 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수도사들 틈에서 성모의 영광에 헌신할 방도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재주를 드리겠다고 결단하고 성모상 앞에서 곡예사 시절 “제일 칭찬받을 만한 재주”를 부렸다. 이를 성당의 문틈으로 지켜본 수도원장과 두 장로들은 불경스러운 짓을 한다고 그를 내치려고 했는데, 바로 그때 성모상이 걸어내려와 바르나베의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이를 본 수도원장과 장로들은 곡예 기술의 천박성에만 집중했던 자신들의 편견을 깨닫고 그 “마음이 청결한” 수도사의 영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곡예사의 헌신에 대한 여운을 가지고 디제잉워십의 논란을 접할 때, 신앙의 본질적인 지평은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사람의 태도와 공동체의 반응, 그리고 문화적 정황 등에 의거해 점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관중의 흥미를 유발할 목적으로 생산된 우스꽝스럽거나 위험천만한 세속적인 기예도 철저한 신앙적 표현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디제잉워십이 사용하는 전자무도음악(EDM)도 신앙을 표현하는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표현의 통로나 방법의 특이성이 표현 주체의 진정한 열정을 평가절하할 근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제잉워십이 마지막 시대에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의 전략인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열쇠는 디제잉워십을 진행하는 인도자의 영성에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주체는 그 열정이 진정한 신앙의 열정임을 증명할 수 있는 영성의 개발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 영성은 신앙적 열정이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헌신으로 구현될 때 생기는 능력이다. 그것은 수도원장이 고백한 대로 “마음이 깨끗한 자[두 마음을 품지 않는 자]들은 ... 하나님을 볼 것임”의 축복이 디제잉워십에 임하는 길이다. 
두 번째, 새로운 형식이 도입된 것을 목격한 공동체는 그 새로움에 당장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테스팅 그라운드가 되어줌으로써 신앙적 본질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수도원 공동체의 규칙에 따르면, 바르나베의 곡예는 배척당해야 마땅하다. 클래식 찬양방식에 익숙한 성도들이 밴드음악으로 충격을 받고 이제 겨우 그 과도기를 거쳐 밴드음악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또 다시 ‘클럽음악’이라는 낯설음으로 찬양한다고 하니 공동체 내의 소통현장은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불편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래서 기성세대인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은 당장 문화적 낯설음과 신학적 낯설음을 근거로 자신들의 불편한 속내를 합리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수도원장과 두 장로들이 바르나베의 곡예를 통해 성모상의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EDM을 통해서 젊은 계층이 신앙을 갖게 되거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신앙적 열정을 회복하는 기적을 기대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공동체의 익숙한 규칙만을 고수함으로써 하나님의 광대한 역사를 그 규칙으로 제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수도원장과 두 장로가 바르나베를 성당 밖으로 끌고 나오려고 했듯이 교회의 세속화를 우려하는 충심도 무시할 수 없다. 곡예라는 세속적 문화가 동료 수도사들의 다양한 종교적 헌신과 같은 맥락에서 시도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이질감에 대한 수용적 태도의 문제도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시들한 삶이 교회의 세속화에 따른 결과라는 자성과 비판이 타당성을 얻어가고 있는 이 때, 클럽음악이 도구가 되는 디제잉워십이 또 다른 경로의 세속화일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DJ 진호의 지적대로 문화와 그리스도는 상호작용을 겪는 과정에 새로운 융합체를 만들어 내게 되지만, 세속화로 변질될 가능성도 열려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바르나베가 성당 밖으로 끌려 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장면에 주목해야 한다. 수도원장과 두 장로는 바르나베의 곡예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고 전심을 다하는 신앙적 열정의 열매를 확인했을 때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이처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과 그 시도의 열매에 집중하는 태도를 디제잉워십 논란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DJ 진호에 따르면, 디제잉워십은 2013년부터 시도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의 예배의 토양에 새로운 나무가 심겨진 셈인데, 이에 대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내버리라’는 태도를 취할 것인가, 스스로 결실하든지 고사되든지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배양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의 입장이 개진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입장에서 서로를 배척할 것이 아닌 한, ‘문화’와 ‘그리스도’가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바르나베의 행적으로부터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 그의 행적은 앞서 살펴본 대로 새로운 문화의 도입자와 공동체의 상황과 문화의 현장과 관련되어 있다. 요한 사도의 편지에도 이 세 가지 요소에 관한 지혜가 암시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1서 3장21-24절) 
새로운 문화의 도입자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것이며, 공동체는 ‘서로 사랑함’의 범주를 고민할 것이고, 문화의 현장은 성령께서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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