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출애굽기 재앙, 이 땅에 임하나?

하나님 심판이 임하는 상황이 진짜 위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끝내 ‘후보자’ 꼬리표를 떼 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그만큼 논쟁을 불러일으킨 총리 후보자는 없었다. 전관예우, 병역면탈 의혹, 편법 증여와 지각 증여세 납부, 비뚤어진 역사관·종교관 등등.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흠결에도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먼저 황 총리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검토해 보자. 
무엇보다 그의 총리 인준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폭로한다. 6월18일(목) 국회에서는 그에 대한 총리 인준안이 처리됐다. 표결결과는 놀라웠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전원 찬성표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은 전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절차는 민주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에 대한 정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으로 시야를 한정해 볼 때, ‘권력’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는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관철시킬 힘’이다. 따라서 권력은 잡고 있는 쪽의 의지가 현실로 투영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정치의 본질은 타협이다. 상대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르다면, 권력을 휘둘러 강제적으로 관철시키기보다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 놓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말이다. 혹자들은 타협이 졸렬하다고 폄하한다. 그러나 원래 타협은 졸렬한 법이다. 
권력을 가진 쪽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자신의 뜻을 끝내 관철시킨다면, 의회의 의사결정 절차는 있으나마나다. 더구나 이런 정치행태는 살풍경만 연출해낼 뿐이다. 힘의 열세에 눌려 배제 당하는 쪽은 반드시 권력을 되찾은 다음, 상대를 배제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관철시키려들테니 말이다. 한 가지 다행스럽다면 다행스러운 건, 야당인 새정연이 정권 획득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존재이유는 그저 ‘금배지’ 유지에만 있어 보인다. 만에 하나, 야당이 정당의 기본 존재이유인 정권획득에 충실하다면 지금 정치판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대결만 횡행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 
한편 황 국무총리 인준 이전, 일각에서는 그가 총리에 오르면 공안통치가 부활할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 이 같은 우려는 즉각 현실로 나타났다. 황 총리 인준 바로 다음 날인 19일(금) 오전 경찰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이 꾸린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이하 4.16연대)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4.16연대는 “황교안 총리가 인준되자마자 세월호 탄압부터 시작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땅을 엄습한 괴질·가뭄
놀랍게도, 황 국무총리의 후보자 임명, 인사청문회, 그리고 인준까지의 모든 과정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이 창궐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여론이 온통 메르스에 쏠려 있던 덕분에 황 총리는 여론의 포화를 비켜갈 수 있었다. 그에겐 천우신조일 것이다. 혹 이를 ‘교육전도사’인 황교안 후보자를 국정 최고책임자로 세우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든다. 실제 황 총리의 SNS계정엔 황 총리 임명을 하나님의 뜻과 결부시키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이 나라가 처한 형국은 출애굽기를 방불케 한다. 국민들은 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위정자들은 제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304명이 수장 당하다시피 희생당하는가 하면 기업가 출신 정치인은 검찰 수사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럼에도 지배권력은 책임 회피하기 바쁘고, 꼬리 자르기에 여념이 없다. 
하나님은 이 땅의 죄악에 분노하신 것일까? 나라에 괴질(메르스)이 창궐하고, 가뭄이 들어 땅이 갈라진다. 그럼에도 황 총리 인준에서 볼 수 있듯 지배 권력의 머릿속엔 온통 권력 게임 생각뿐이다. 
출애굽기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대재앙을 내리는 대목이다. 재앙은 이집트의 장자를 치는 대목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섣부른 이분법적 해석은 금물이다. 하나님은 파라오마저 사랑하셨던 것 같다. 그가 마음을 돌이켜 히브리인들을 풀어주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라오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하나님도 점차 재앙의 강도를 더하다가 급기야 이집트의 모든 장자의 목숨을 빼앗아간다. 
이 대목을 파라오가 이방신을 섬겼으니까, 히브리인들에게 고통을 줬으니까 당연히 받을 징벌이라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하나님을 ‘징벌자’ 역할로 한정한다. 출애굽기 기자는 그저 무뚝뚝하게 사실만 보도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자식들을 거리낌 없이 살해했으리라 볼 수 있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그보다 하나님께선 장자를 잃자 그제서야 마음을 돌이킨 파라오에게 안도하셨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 더욱 잔혹한 형벌을 가했어야 했기에 말이다. 
만약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위정자들의 강퍅함을 돌이키게 하려는 하나님의 징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애를 태우고 계실 것이다. 이어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옛날 이집트에 그랬듯이 발걸음을 돌이킬 때까지 재앙의 강도를 순차적으로 높일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묻히고 죽음의 사신이 지나가는 광경을 숨죽이면서 지켜보는 지경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하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상황이 진짜 위기상황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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