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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퀴어축제, 고통의 정치화 시도인가?

6월9일(화) 저녁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열렸다. 축제 참석의 범위를 주최 측의 관계자들 위주로 축소하기는 했지만 온 나라가 메르스 확산을 우려하고 있는 마당에 집회를 강행한 데에는 나름의 명분과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물론, 그 명분과 이유의 근원에는 동성애자들의 고통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메르스로 인한 ‘국가 재난’의 상황임에도 ‘축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축제는 몇 가지 점에서 ‘이상한’ 행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축제의 명칭이 자학적이다. ‘퀴어’는 본디 ‘이상(異常)한’ 것을 지칭하는 말로서 ‘범상하지 않은’ 성적 취향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동성애자들이 그 용어를 자신들에게 적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이상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으니 자학적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상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성애자들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니 소위 ‘범상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억압적 시선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사용했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퀴어축제가 ‘나는 당신들이 보기에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그 이상한 사람들도 당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지 않느냐?’라고 항의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정체의 자학적인 표명은 현실의 불가능성에 대한 좌절의 비명으로 들리는데, 그 축제는 그 비명을 현란한 음향으로 치환하려 하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이 외국어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차용한 것이라면, 한국인으로서의 동성애자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를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성애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한국인 동성애자로서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규명하기보다 외국의 사례를 이상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단순히 모방하려고 했다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외국의 퀴어축제는 그 동성애자들이 그 사회와의 갈등 가운데서 지난하게 노력한 결과로서 탄생된 것인데, 우리의 경우는 퀴어 문화를 수입하는 것으로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대체하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지난 해 신촌에서 벌어진 퀴어축제의 비정상성 때문에 형성된 우려일 수 있다. 성적 쾌락과 욕망의 표출에 경도된 축제의 코드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명분 아래서 그저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상한’ 정체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신촌 일대에서 진행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크리스천 연대인 ‘퀴어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을 부르며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베리타스 DB

그리고 이번 축제에는 해외 ‘선진국’ 대사관들이 다수 참석한다고 사전에 공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주최 측이 해외의 ‘지원군’을 요청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동성애가 마치 선진국화의 조건인양 선전하는 효과를 의도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다수자 사회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강화하려는 전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전술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나름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화가 동성애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해소하고자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그 축제는 음지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신음을 진솔하게 대변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선진국’ 동성애자들이 누리는 성적 취향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고통의 가면을 쓰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쾌락을 정치화하여 고통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만일, 퀴어축제의 전반적인 기조가 성적 쾌락과 욕망의 표출에 계속 집중한다면, 동성애자들의 실제적인 고통은 왜곡돼 인식되고 말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학적인 치환의 과정을 거쳐서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 인간의 고통이 무시당하게 되는 것이다. 퀴어축제는 원래 성소수자가 겪는 고통을 다수자의 억압 때문에 생긴 것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한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므로, 원래의 의도대로 그들의 고통을 정치화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퀴어축제를 솔직히 바라보자면, 아마도 실제로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동성애자들의 경우 ‘퀴어’라는 정체 규정 때문에라도 ‘축제’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석하는 경우라면 축제라는 해방공간의 경험이 영구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퀴어축제는 퍼레이드나 노출 쇼 등의 ‘이상한’ 기획들이 고통의 정치화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조처해야 한다.   
고통은 고통 받는 자들을 연대하게 하며 경험을 공유하여 해결이나 해소의 실마리를 함께 찾게 한다. 만일 퀴어축제가 또 다른 성적 해방구를 추구하는 시도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동성애자들의 고통에 대해 본질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계기가 된다면, 그 노력은 비장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런 비장함은 실존의 조건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의 본질에 해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협조와 이해와 공감을 불러 올 수 있다. 그러니 퀴어축제에 동조하는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를 성적 취향의 문제로 표현하려고하기보다 고통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보다 본질적인 고민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욕망의 ‘이상한’ 분출을 부추기거나 외국 원병을 끌어들이거나 여타 욕망의 정치화를 위한 시도를 구안하기보다 고통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접근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고통이 모독당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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