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자수첩] 자식 잃은 부모를 짓누르는 공권력
국민 삶의 고단함 모르면 하늘이 버릴 것

입력 Apr 22, 2015 07:17 AM KST
현지시간으로 4월17일(금) 박근혜 대통령은 마누엘 산토스 칼데론 콜롬비아 대통령이 주최한 공식 만찬에서 스페인어로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Olvidar es dificil para el que tiene corazon)는 말을 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콜롬비아가 남미 국가론 유일하게 한국전쟁 당시 5,100명의 병사를 파병한 데 대한 감사인사였다. 
이를 두고 언론은 칭찬 일색이다. 전후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같은 기사를 접하면 대통령이 수준 높은 문학적 감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이 나라는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정치권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뒤숭숭하고, 서울의 한 복판인 광화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특히 광화문에서 펼쳐진 광경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목)부터 이곳에서 노숙에 돌입했다. 경찰은 광화문 누각 앞에 버스로 장벽을 세우고 유가족들을 고립시켰다. 현장에 있던 유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화장실 출입마저 막았고 그래서 여성 유가족들은 모포로 가린 채 용변을 해결했다고 한다. 경찰의 고립작전은 18일(토) 절정에 달했다. 경찰은 버스를 동원해 광화문 광장에 장벽을 쌓다시피 했다. 광화문 누각에서 고립됐던 유가족들 가운데 일부는 누각을 빠져나와 시민들의 도움을 호소했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리기도 했다. 
공권력이 이렇게까지 해도 좋은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네셔널도 18일(토)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경찰이 불필요한 경찰력을 사용해 유가족을 해산하려 한 것은 모욕적 처사이며,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유가족들은 참사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편을 먼저 여의 아내,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을 지칭하는 낱말은 있으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일컫는 낱말은 없다. 심지어 이슬람권에서는 악행을 일삼는 망나니를 향해 ‘자식 보다 오래 살아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그토록 자식 잃은 슬픔이 크고, 깊다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해왔다. 정부의 존재 의미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다. 잘못된 관행으로 부실 덩어리의 선박이 버젓이 운행됐고, 관계 부처가 초동대처를 미흡하게 해 참사가 벌어졌다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사후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정부의 도리다. 
▲18일(토) 서울 광화문에서 경찰과 세월호 유가족·시민 등이 격렬히 대치한 가운데 유가족 가운데 한 명이 ‘정부 시행령 폐기’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경찰의 공권력 행사 남용 
정부로서는 세월호 참사가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하는 사람들은 자식 잃은 부모들이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정부가 자식 잃은 부모들이 불편한 소리를 한다고 경찰력을 동원해 인간의 기본적 욕구마저 막는 건 지나치게 옹졸한 처사고, 근본적으로 공권력 남용이다. 
더구나 경찰은 온갖 불법이란 불법은 모조리 자행했다. 버스를 동원한 봉쇄는 이미 2011년 위헌판결을 받았고, 18일(토)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는 과정에서 관할 소방서의 사전 허가도 받지 않고 소화전 물을 사용했다는 정황이 제기됐다. 또 이날 경찰이 광화문 일대 CCTV 10곳을 시위대를 감시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정황도 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적반하장이다. 경찰은 19일(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 1주기 기간임을 고려해 최대한 성숙하고 차분한 추모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했지만 불법폭력시위로 많은 시민에게 교통 불편을 초래하고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만약 이런 광경을 한국전쟁에서 피 흘린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봤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조선 세종 당시 지어진 <용비어천가>는 조선 개국을 찬미하는 서사시다. 그러나 이 서사시의 지은이들은 무턱대고 찬가만 불러대지 않는다. 곳곳에 뒤이을 왕들이 어진 임금이 되어 주기 바라는 염원을 담아낸다. 가장 대표적인 장이 116장이다. 
“백성의 병폐(民瘼)를 모르시면 하늘이 버리시나니, 이 뜻을 잊지 마소서”
‘백성의 병폐’란 백성이 겪는 고난, 지금의 언어로는 국민 삶의 고단함을 뜻한다. 즉, 지은이들은 뒤에 올 왕들에게 “국민 삶을 모르면 하늘이 버린다”며 ‘이 뜻’을 잊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는 것이다. 
이 장을 음미하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진보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조선시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오히려 사고나 행동방식은 조선만도 못하다. 오로지 권력에 줄 댈 궁리만 할 뿐, 그 어느 누구도 권력자에게 직언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하는가 하면,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은 대통령이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어로 미사여구를 늘어놨다는 미담만 쓸 뿐,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진정 대통령에게 가슴이 존재한다면, 자식 잃은 부모를 향해 모질게 공권력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성명을 발표하고 행사를 치렀지만, 공권력의 횡포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온라인상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인답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드는 지경이다. 
다시 한 번, “국민의 삶의 고단함을 모르면 하늘이 버린다”는 구절을 음미한다. 국가 공권력이 자식 잃은 부모들을 모질게 대하는 지경까지 왔다. 다음에 올 하늘의 심판이 진정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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