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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칼럼] 물질에 중독된 시대

하태영 목사·삼일교회(기장)

▲하태영 목사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물질이 꼭 필요합니다. 아무리 궁핍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물질은 있어야 합니다. 연전에 성철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물건으로 일생동안 입고 사용한 누더기 옷 한 벌, 지팡이 하나, 고무신 한 켤레 이렇게 세 가지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가를 대변하는 유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가난하게 산 사람도 최소한의 물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일생 동안 먹은 밥만 해도 상당량일 것입니다. 

물질이 그토록 소중함에도 그것이 사람들의 수중에서 ‘재물’이 되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재물은 자기 생활에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매는 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찍이 재물의 독성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게 구약성서의 전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지키는 것”(전 5:13)이라고. 그 좋은 재물이 결국은 자기를 지켜준 소유주에게 해를 입히는데, 단순한 해가 아닙니다. 치료 불가능한 해를 입힌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필시 소유주에게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가 속한 가정과 사회에도 심각한 해를 입힙니다. 나라에 큰 해를 입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재물의 마력에 취해 그걸 애써 외면합니다. 그리하여 전도서는 재물에 매달리는 행위를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라고 했나 봅니다.   
예수의 재물에 대한 태도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라 하셨지만, ‘재물’에 대해서만큼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병들게 하고, 파멸시키고, 짐승처럼 만드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 아닌 ‘재물’입니다. 물론 일용할 양식일지라도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거나,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재물에 관한 한 당초부터 ‘내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막 10:25). 그만큼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인데, 생각해보면,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과,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낙타는 바늘귀로 지나갈 까닭이 없지만,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부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그 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암시가 담긴 말씀입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을 가진 게 문제가 아니라, 재물에서 마음을 놓지 못한 게 문제입니다. 그에게 재물은 하나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살벌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만 있으면 못할 게 없을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사람들은 재물이 지닌 독성에 대해서 둔감합니다. 나라 경제를 운용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건강하려면 재물은 독점되어서는 안 됩니다. 건강한 나라의 특징이 있습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가지는 대신 재물은 탐하지 않습니다. 기업인은 재물을 가지는 대신 권력을 탐하지 않습니다. 학자는 명예를 가지되 재물과 권력을 되도록 멀리합니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그 모든 것을 가지려는 전천후 탐욕 사회입니다. 그런 이들일수록 나라에 대한 의무는 남의 얘기입니다. 
물질에 중독된 이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물질추구의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난했던 시절,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시절에 사람들은 모든 고통의 원인을 물질적 결핍에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물질적으로 잘 살게 해주겠다는 신념, 신앙, 정치에 거의 맹목적으로 충성했습니다. 교회는 물질 충족을 바라는 신앙이 인간성을 극도로 왜곡시키고 사회를 얼마나 불안정하게 하는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물질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국가융성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무한대의 재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재물이 한쪽으로만 쌓이는 잘못된 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전도서는 어느 탁월한 경제학자보다 더 분명하게 재물에 대해 정의합니다. “땅의 이익은 뭇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전 5:9)라고. 재물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것이 아닌,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것, 즉 ‘사회적 재산’이라는 정언입니다. 
*이 글은 『햇순』 제230호(2015년4월)에 실렸으며 저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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