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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015년 대한민국 부활절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916년 부활절> 단상

입력 Apr 06, 2015 09:00 AM KST
희생이 너무 오래면  
마음을 돌로 만드는 것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지? 
그건 하늘이 알아 할 일, 
우리가 할 일은 하나씩 이름을 부르는 것, 
마치 마구 뛰놀던 사지에 
결국 잠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이  
이게 일몰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다, 아냐, 일몰이 아니고 죽음이야.  
결국에 가서는 필요 없는 죽음일까?   
....  
나는 시에 적네   
코널리와 피어스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올 날에  
초록 옷이 입혀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변했어, 완전히 변했어.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916년 부활절>   
1916년 4월24일, 아일랜드의 부활절은 온통 핏빛이었다. 아일랜드 임시정부 대통령 패트릭 피어스(1879~1916)가 이끄는 700여 명의 아일랜드 혁명군은 부활절 날 더블린 중앙우체국을 점령하고 일주일간 투쟁하다 영국군에 의해 진압 당했다. 영국군은 피어스를 비롯한 15명의 지도부를 군법재판에 회부해 처형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는 <1916년 부활절>(원제: Easter 1916)을 통해 이날의 비극을 노래한다. 여기서 예이츠의 다른 시 한 편을 더 감상해 보자. 
만일 나에게 하늘의 융단이 있다면 
금빛과 은빛으로 짠, 
낮과 밤과 어스름의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천으로 짠,  
그대 발밑에 깔아 드리련만  
허나 가난한 나는 꿈밖에 없어  
그대 발밑에 꿈을 깔았습니다.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하늘의 융단>
예이츠가 1899년 발표한 <하늘의 융단>은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 특히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하는 마지막 연은 절로 김소월의 대표작 <진달래꽃>을 떠오르게 한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김소월, <진달래꽃> 
예이츠의 <하늘의 융단>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건 문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이 예이츠의 시를 번역해 소개했다는 사실은 이 같은 설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대목에서 아일랜드와 한민족 간에 묘한 역사적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1916년 아일랜드, 그리고 2015년 대한민국 
▲지난 3일 성금요일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에 세월호 침몰지점을 찾은 NCCK 관계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한 국화꽃. ⓒ사진=지유석 기자

다시 <1916년 부활절>로 돌아가 보자. 예이츠는 이 시를 통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독립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탄식한다. 그리고 시구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을 적으며 그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시인의 노력 덕분일까? 1916년 부활절의 기억은 집단기억으로 되살아나 아일랜드 독립운동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A terrible beauty is born)는 맨 마지막 연은 다름 아닌 독립 투쟁에 대한 은유다. 그리고 마침내 1921년, 아일랜드는 런던 조약을 통해 비록 불완전하나마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게 된다.   
2015년 대한민국 부활절은 여러모로 1916년 아일랜드의 부활절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해 4월, 우리 사회는 304명의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조롱하고 능멸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할 기독교계 역시 이런 패륜적 행태에 앞장서 가담했다. 예이츠가 1916년 부활절의 비극을 노래하면서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지?”라고 했던 절규는 2016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 번 일렁인다. 
지난 고난주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삭발을 했다. 그리고 떠난 이의 영정을 들고 부활절을 맞이하러 광화문 광장으로 왔다. 마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의 잉태를 예고하는 듯하다.  
1916년 아일랜드의 부활절과 2015년 대한민국의 부활절은 피맺힌 절규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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