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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 그리스도인의 자유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혜암신학연구소 『신학과교회』 편집위원장) ⓒ베리타스 DB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디아 5:1)라고 썼다. 그리고 이어서 13절에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라고 권면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한 출판사 테러 사건으로 온 세상이 요란하다. “샤를리 엡도”라는 만화 주간지가 이슬람 교주 모하메드를 모욕하고 모독하는 그림과 글을 펴냈다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출판사를 습격하고 기자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의 만행을 규탄하고 반대하는 시위가 파리뿐 아니라 온 유럽에 퍼져 나가고, 이에 더하여 이슬람교도와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시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프란체스코 교황을 위시하여,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한 의견 역시 테러를 규탄하는 요란한 목소리 틈에 조용하게 들려오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남을 모욕하고 욕되게 하고 상처를 주고 화나게 하는 말과 행동을 자유의 이름으로 함부로 해도 되는가? 이웃이나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물며 세계 종교의 지도자이며 창시자를 대상으로,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을 향해서 모욕적인 말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도 자유라는 이름의 보편적인 가치로.   
프랑스 파리의 소식을 접하고 “표현의 자유” 담론과 “자유와 책임” 논쟁을 들으면서 정말 우리는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으며, 어디까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으며, 자유 행사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는 어디까지이고, 그 한계는 누가 정해 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의 문제로 돌아 와서 생각해 보면, 글 한줄 잘못 썼다고, 말 한마디 잘못 했다고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기도 하고 “국가보안법”의 “북괴 찬양”이라는 명목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최근에 재미교포 여성이 북한에 다녀와서 북한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붙들려 다니더니 급기야 미국으로 쫓겨 나간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 12월19일에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모여서 한 말을 근거로 해서 그 정당을 해산시키고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일도 있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분단 현실에서 그들의 언동을 용납할 수 없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 해가 된다는 논리였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거역할 수밖에 없다”는 이율배반의 논리가 관철된 셈이다.
 
▲사회매체를 통해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해쉬태그가 유포되면서 희생자들과의 연대와 인권(세계인권선언 19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장면. ⓒ사진제공=WCC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를 제한하고 유보할 때가 있다”라는 말이 통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표현과 언론과 학문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제한하고, 그리고 누가 무슨 자격으로 허용하고 제한하고 규제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유의 범위와 한계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의해서 강제로 물리력이나 폭력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경찰력이나 정치적 폭력으로, 법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제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테러범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유로운 표현을 막고 살상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자유의 범위와 한계는 자유를 행사하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만이 인간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도덕의 문제이고 종교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 개인이 자유를 행사할 때, 타인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자기 말과 행동이 미칠 영향과 결과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해치고,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책임 있는 자유의 행사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교회와 사회에서 “자유와 책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500여 년 전,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유명한 책,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책에서 자가당착적인 모순된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인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에 이어 곧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는 충성스런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종교개혁 3대 논문』, 지원용 역 [컨콜디아, 2003], 295).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고 만물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만물을 섬기는 종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때문에 주인이고, 사랑 때문에 종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 주인인 동시에, 자유롭지 못한 종”이라는 것이다(송용석,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에 대한 서평”에서 인용[daum.net]).    
프랑스의 “샤를리 엡도” 만화 잡지사는 무슨 그림을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자유롭지만, 사실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슬람 테러리스트 역시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한 자유인들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을 위해서는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그 끔찍한 “사람을 죽이는” 자유를 억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해서 선용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유의 이름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고, 생명을 살리는 말과 행동을 하라는 것이리라. 에릭 프롬이 한 말대로, 우리의 자유는 모든 억압과 규제로‘부터의 해방과 자유’(freedom from....)와 동시에 이웃의 자유를 존중하고 생명을 지키는 ‘자유로’(freedom to...) 변화되고 승화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보내는 간절한 말씀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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