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한국교회여, 침묵하고 또 침묵하라

2014년을 보내며 한국교회에 던지는 제언

2014년이 저문다. 올 한 해는 과거 그 어느 해 보다 불행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더구나 수년 전부터 팽배했던 이념, 지역, 빈부, 세대 갈등은 갈수록 위험수위로 육박하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 교회는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채질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돌이켜 보건데, 한국교회의 2014년은 신도수가 극적으로 감소했던 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논지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그러리라 추측할 뿐이다. 사실 개신교 인구는 꾸준히 줄어왔다. 10년마다 한 번씩 실시하는 인구센서스 결과, 개신교는 1995년에서 2005년 사이 14만 여 명이 줄어 –1.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를 개신교 인구가 급감할 것으로 감히 단정 짓는 중요한 이유는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신교계의 반응은 막장 그 자체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조광작 공동부회장,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등의 발언은 목회자임을 떠나 과연 이들이 인간으로서 기본 인성마저 제대로 갖췄는지 의심하게 했다. 더구나 뒤이어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의 망언, 그리고 분단을 하나님의 뜻으로 연결시킨 김성주 적십자사 총재의 망언이 불거졌다. 
그러나 새삼 이 같은 망언들이 개신교 인구의 급감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망언들은 그동안 한국 교회에 팽배했던 천박한 신앙관이 외부로 불거진 데 불과하다. 
과연 그렇다면 왜 세월호 참사가 개신교 인구 급감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세월호 참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의문과 회의를 던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그 곳에 신은 있는가? 
▲세월호 참사 전후 실종된 가족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글귀들. ⓒ베리타스 DB

304명의 희생자를 낸 대형참사가 전세계에 생중계로 퍼져나간 사례는 세월호 참사가 거의 유일하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생중계된 적이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인명이 살상되는 장면만큼은 TV로 전해지지 않았다. 참사 충격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월호가 차디찬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지만 정부 당국은 사실상 손 놓고 있었고, 가장 공영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언론은 거짓 보도만 양산했다. 이 와중에 세월호에 남은 아이들은 카카오톡으로 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남겨 놓았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존재다. 또 악을 심판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세월호 참사에 관한 한, 하나님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전지전능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하나님이 존재했다면, 참사 현장에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낸 다음 바다를 갈라 침몰하는 배를 건져 냈을 것이다. 이어 이 엄청난 사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악인들을 남김없이 찾아내 철저하게 죄를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은 없었고, 우리 모두는 그저 그 배가 가라앉는 광경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을 던져본다.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왜 하필 개신교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란 말인가? 그 이유는 그동안 개신교계가 보여준 행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종단과 달리 개신교계만이 유독 하나님을 기적을 베풀고 복 주시는 존재라고, 그래서 하나님만 믿으면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과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교의를 복음의 본질인양 설파했다. 이 같은 신앙관은 교회 안 뿐만 아니라 교회 밖 사람들에게도 익숙했다. 그렇기에 개신교의 신앙관에 회의를 던지게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과연 지금, 여기에 계실까? 잘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런데 비단 세월호 참사뿐만이 아니다. 윤 일병 구타 사망사고, 자원외교, 4대강 사업, 가수 故 신해철 씨 의료사고, 연말 불거진 정윤회 국정농단 사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판결 및 뒤이은 공안몰이 등등 온 나라에 거짓이 판을 친다. 더욱이 거짓의 주체는 승승장구하는 반면, 거짓을 거짓이라 외치는 이들은 온갖 박해와 수모를 감내해야 하기에 상황은 심각하다. 이런 현실을 보다 못했는지 우리 사회의 최고 지성인들인 교수들이 ‘사슴을 가르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다시 한 번 묻는다. 하나님은 과연 지금, 여기에 계실까? 
답은 침묵 가운데 있다. 
▲교계 원로들이 세월호 참사를 전후하여 명성교회에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를 갖는 장면. 이 기도회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초청돼 인사말을 전했다. 이에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이 아닌, 권력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소위 ‘권력자를 옹호하는 교게 원로들의 행사’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베리타스 DB

이제 개신교계에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개신교계는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까? 
무엇보다 개신교계에 침묵할 것을 주문한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의미다. 참사 이후 개신교계는 신앙의 회의에 대해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기껏 내놓은 답이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는 김삼환 목사의 망발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신묘막측하다. 더구나 성서는 곳곳에서 악한 세속 권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물리쳐 왔음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약자들에겐 복음이었지만, 권력자들에겐 하나님의 경고였다. 이에 헤로데는 군사를 보내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 사건을 기록한 마태오는 복음서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일어난 사건을 묵묵히 보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출애굽기의 모세 탄생 설화와 겹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속의 권력에 맞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명히 부각시킨다. 즉, 마태오의 침묵은 평화의 왕으로 오실 예수를 향한 간절한 바람이었던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드러난 현상에 대해 섣불리 하나님의 뜻을 입에 올리는 행위는 교만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불거진 김삼환-오정현 류의 발언은 교만의 일단을 생생히 드러내준다. 
저무는 2014년, 한국 교회는 깊이 침묵했으면 좋겠다. 침묵 가운데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말’로 너무 많은 죄악을 저질러 왔다. 더 이상의 죄악은 금물이다. 말 하려 하지 말고, 답을 내놓으려 하지 말라. 이런 행위들은 모두 교만의 증거다. 그보다 거짓이 횡행하고, 약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이 땅에 하나님께서 어떤 선하신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정직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물어 보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의 뜻을 구할 때 비로소 그 신비한 구원의 역사를 보이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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