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헌재 판결 뒤, 교회가 해야 할 일

이념, 지역, 빈부 갈등 치유에 교회가 앞장서야

2014년 세밑, 우리 사회는 뒤숭숭하기 그지없다. 수년전부터 이념, 지역, 빈부 갈등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아 온 우리 사회는 지난 12월19일(금) 헌법재판소(헌재)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판결로 다시 한 번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결정문 말미에 “통진당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경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람과 달리 헌재 판결은 이념갈등의 불을 지폈다. 헌재 판결이 내려지기 무섭게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통진당 당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맞서 국제엠네스티는 “통진당 해산결정을 보면서 당국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킬 의지가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기독교계 역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념지도에 따라 극명히 갈린다. 진보성향의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와 보수교단을 대변해 온 한국교회언론회(언론회)의 반응은 온도차가 확연하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저마다 보는 시선은 다르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쟁점 말고도 세월호 참사,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등 올 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모든 현안에서 늘 진영노선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고, 이로 인해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논란만 불거졌다는 점이다. 특히 통진당 해산은 이념 논리가 깊숙이 개입된 사안이기에 진영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는 다분했고, 이 같은 우려는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이 와중에서 교회는 사회 갈등을 중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영대립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만 드러냈다. 교회는 사회 갈등 중재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일까?   
헌재 판결, 종북 논란만 지펴 
먼저 헌재 판결의 타당성을 따져보자. 우선 법리논쟁은 논외로 하고자 한다. 그보다 헌재 판결문의 논리적 타당성만 따져 보고, 이런 타당성이 진영논리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법리논쟁을 제외하려는 이유는 기자가 법에 문외한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법리논쟁의 문제는 일반 언론에 자세히 소개돼 있으니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다.  
헌재는 먼저 “통진당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일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민항쟁이나 저항권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모든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법 행위가 확인된 개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당 자체의 위헌성이 제거되지는 않으며, 통진당 주도세력은 언제든 그들의 위헌적 목적을 정당의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이며 “따라서 합법 정당을 가장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정당보조금을 받아 활동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통합진보당의 고유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이번 판결이 미칠 여파를 염두에 둔 듯 보인다. “이 결정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진보정당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고 전제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 해산결정은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이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우리의 민주헌정에서 보호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일 뿐”이라고 못 박은데 이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희망을 표명했다.  
헌재 판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정치세력은 정치 영역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정작 북한식 사회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통진당이 내건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이 왜 북한 사회주의와 전체적으로 같거나 유사한지에 대해서는 특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헌재 판결은 법원의 판단과도 맞지 않는다.   
법원은 지난 8월 항소심에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이른바 ‘RO’라고 명명된 지하혁명조직의 실체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반면 헌재는 “내란관련 사건 회합 참가자들은 이석기의 주도 아래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 내 국가기간시설의 파괴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고자 회합을 개최”했고 “이 회합 참석자들의 당내 지위 및 역할과 이 사건에 대한 통진당의 옹호 등을 보면 이 회합은 통진당의 활동으로 귀속된다”고 보았다. 종합하면, 법원이 실체가 모호하다고 본 지하조직의 회합을 헌재는 통진당의 활동으로 귀속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헌재가 정당활동의 가이드라인, 즉 ‘종북정당은 안 된다’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했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사실 위험하다. 이 나라의 정치현실은 언제든 ‘종북’ 낙인을 뒤집어씌우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제1야당 후보에게 종북 낙인을 찍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벌인 것이 그 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군사정권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정치세력을 북한과 연관시키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불법납치, 고문 등 온갖 가혹행위가 자행됐다. 더구나 이번 헌재판결에서 북한식 사회주의의 개념이 모호하게 남아 앞으로도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통진당 해산, 분단현실에선 어쩔 수 없어? 
통진당 해산을 청구한 정부 측의 핵심 논리는 단순하다. 남북이 분단된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통진당 같은 정당은 자유 민주주의의 질서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정부측 입장은 일정 정도 진실성이 있다. 하나의 민족이 이념을 사이에 두고 분단된 예는 역사상 한반도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남북이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만 진실이다. 1980년대 이후 남북간 체제경쟁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 남한은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반면 북한은 당장의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정치적 민주화의 정도도 남북은 비교 불가다. 이 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분명히 인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해 6월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연설에서 “5천 만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반면 북한은 빈곤과 정치적 압제에 허덕이고 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자신 있게 한국 전쟁이 무승부(tie)가 아니고 한국은 승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지나치게 현재적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본 시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발언은 체제경쟁에서 남한이 완승을 거뒀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도 따져보아야 할 쟁점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셀릭 해리슨은 그의 저서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남한군이 67만 2천명인데 비해 북한은 예비 병력을 빼고도 정규군만 108만 명에 달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런 군사적 우위는 북한의 경제난과 남한의 군사기술 우위로 인해 상당부분 상쇄된다. 셀릭 해리슨은 “남한군 탱크들은 거의 절반이 최신 모델의 미국제 엔진과 변속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최신형 K-1전차는 걸프전 때 이라크처럼 1970년대식 기술로 만들어진 북한군의 T-62전차보다 훨씬 빠른 기동력과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KBS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추적60>은 북한군 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 적힌 북한군의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북한 군 병사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사단장급 고위 장성의 체구가 160cm, 66kg이다. 또 군은 물자 부족으로 인해 전투력 누수가 심각하다. 무엇보다 국가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장교들이 군 물자를 빼돌리는가하면 일반병사들은 아예 군 복무를 내팽개치고 생업전선에 앞 다투어 뛰어드는 상황이다.   
미국은 북한군의 열악한 상황을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감지했다. 조지 테닛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998년 7월 상원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북한군의 준비태세와 능력이 끊임없이 약화되고 있고 식량 및 연료의 부족, 발병률 증가, 사기 저하, 훈련 횟수의 감소, 그리고 새로운 장비 부족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반면 한국군 병사들의 영양 상태는 북한군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한국군은 각종 첨단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미군의 지원을 받는다. 우리 군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 비리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간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헌재 판결은 과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진당에 대해 정치적 보복을 가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한다. 일견 타당성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상당한 경제력을 누리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과민반응을 보여 왔으며, 통진당 해산은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결과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혹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동조했다고 해도 그렇다.   
앞서 지적했듯 북한은 파산한 체제다. 이런 체제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이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기보다 우스꽝스럽다. 더구나 통진당의 의회 의석수는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다섯 석에 불과하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총 130석의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이렇다할 견제세력의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끌려 다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고작 다섯 석을 확보한 정당이 무슨 수로 체제전복을 꾀한단 말인가? 또 통진당은 종북 논란으로 인해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의 주요 인사가 떠난 터여서 존립자체가 의문시됐었다. 국가 기관이 개입해 이런 정당을 해산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제 기독교계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우선 헌재 판결이 하나님의 공의에 비추어 볼 때 과연 타당한지 따져보고,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념, 지역, 빈부 갈등으로 얼룩진 이 사회를 치유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한국교회에 팽배한 반공주의 논리로 이번 사태를 재단해 이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사역자, 평신도 모두 헌재의 통진당 해산 판결의 의미를 냉철히 인식하고, 이로 인한 갈등 치유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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