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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교단 총회에 부쳐

입력 Sep 19, 2014 07:30 AM KST
9월 들어 기독교계의 각 교단들은 총회를 치르거나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9월 22일(월)부터는 한국 장로교회의 장자 교단을 자임하는 두 교단을 위시하여 기장, 침례교 등의 교단도 총회를 치른다. 총회를 통해 새로운 총회장과 임원진이 구성될 것이고 이어서 새로운 임기 동안 추진할 사업 항목들의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망하건대, 그 항목들 중에는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사업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가 홍역을 앓고 있는 것은 교단 관계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기에 이를 도외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교단은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나름대로의 해법과 전망을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기자는 새로이 구성될 교단의 지도부가 앞으로 고려하기를 바라는 몇 가지 사항을 성도의 입장에서 기대를 실어 피력해보고자 한다.

첫째, 교단 지도부는 경건의 능력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개별 교회의 목회자로 활동할 때는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던 분들이 교단의 임원이 되면서 경건의 모양만 유지하게 되는 사례를 많이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경건의 능력은 기자회견을 프레스센터나 국회의사당에서 열고 조찬기도회를 호텔에서 개최하거나 미자립 교회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정지원을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교세를 과시하고 생색내기 원조를 하며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던 교단의 과거 행적이 목회자라는 존재 자체의 권위를 실추시켰던 사실을 새 지도부는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사들이 경건의 능력을 앗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건의 능력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교단 지도부는 함께 일과시작 전에 1시간 혹은 적어도 30분 이상은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단이 집행하는 사업들은 일반국민들과 성도들의 영혼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기도의 힘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는 교단의 사업에 세속적인 일과는 다른 차별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회개와 성령의 역사를 위한 기도를 통해서 과시성 행사를 가려낼 분별력을 얻고 진정으로 섬기는 자세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도는 과시성 행사에 지출되는 비용 속에 과부의 두 렙돈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하며,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믿음을 갖고 겸손히 섬기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복음과 선교를 위한 일을 기도 위에서 실행할 때 그러한 일들을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지속할 수 있게 되고 이와 더불어 경건의 능력이 유지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둘째, 교단 지도부는 개별교회나 단체가 실행할 수 없는 영역과 수준의 일에 역량을 집중했으면 좋겠다. 교단의 사업들 중에는 마치 개별교회나 단체와 경쟁을 하는 듯한 성격의 사업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지도부가 임기 중 무척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복음의 정신이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근간으로 하며 구체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활동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사업들의 성격이 중첩되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사업의 운영을 프로그램화하거나 지속성을 유지하거나 타 교단과 협력하는 등의 일들은 개별교회나 단체가 실행하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 교단 지도부는 개별교회나 단체의 사업을 활성화할 인력과 재정과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특정 사업의 경우 일회적 행사로 그치지 않도록 조정하며, 대국민 복음 사역이나 북한선교 등의 사업이 중구난방이 되지 않도록 지휘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교계가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을 거론해볼 수 있다. 개별 교회나 단체들도 이러한 일들을 매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교단은 이러한 일들이 행사성이거나 단순히 퍼주기 식의 지원으로 그치지 않도록 그러한 일들의 복음적 의미를 개발하여 배포하고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여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온전히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와 재판장을 자처하시기(시68:5) 때문에, 그리고 예수께서도 최후심판의 기준으로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를 대접하는 일에 집중해야한다는 등의 취지로 교단은 그 사업의 의미를 개발하여 배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단은 이러한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개별교회나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주고 일정을 협의하여 개별교회들 사이에서 그 사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도록 조정해주며 격려하고 장려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교단 지도부는 산하단체에 자기사람 심기를 중지했으면 좋겠다. 자기사람 심기 때문에 권력 쟁탈과 이권의 문제가 발생하고 심지어는 사회법적인 갈등을 초래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교단 지도부의 지도 이념을 적절히 수행할 인력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전문인력의 충원으로 처리해야지 자기사람이기 때문에 위인설관하는 방식으로 인사를 집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단 지도부는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직역이기 때문에 그들의 수족이 될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산적한 문제들을 복음의 정신에 따라 고민하고 협의하며 화평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지도부가 자신들의 이권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실무진들의 헌신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단 지도부의 지도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위에 제시된 기대 항목들이 모두 작용하겠지만, 회원교회들이 지도부의 권위를 먼저 인정하며 순종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도부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종들이기 때문에 비록 실수가 있다하더라도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를 새기며 그들에 대해 거룩한 두려움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기대가 지도부의 부당한 집행과 오류를 묵과하라는 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도부가 솔선해야 할 일이 있다. 인사나 사업의 집행에 있어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인사나 사업의 타당성이나 결과에 대한 점검도 공개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공개성이 공정성을 담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밀리에 처리한 일들의 상상할 수 있는 여파보다는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도부는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복음의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만일 지도부가 자기사람 심기 때문에 내홍을 겪는다면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도 그것을 복음과 모순되는 행동으로 간주하고 목회자들을 바리새인으로 볼 것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이 교단의 사업들을 맡게 될 지도부들은 경건의 능력을 유지하며, 지도부에 걸맞게 사업 구도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회원교회들을 지원하고, 교단의 행정에서도 복음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비록 오해를 받는 일이 있더라도 이런 종류의 일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면서 결국 복음의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실행할 수 있을 때, 그 교단은 한국교회의 장자로 불러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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