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자수첩] 공권력의 존재 의미를 묻다
미쳐 날뛰는 공권력, 하나님을 먼저 두려워 하라

입력 Aug 30, 2014 06:54 AM KST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인근에서 경찰이 스크럼을 짜고 사제와 수녀들의 기도회를 막으려 하고 있다. ⓒ베리타스 DB 

장면 #1. 

지난 20일(수)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이때 건장한 체구의 경찰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길을 막았다. 김 씨는 경찰들에게 거세게 항의했으나 경찰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이때의 후유증으로 몸 상태가 악화돼 결국 22일(금) 병원으로 후송됐다.   
장면 #2. 
25일(월)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수녀들과 사제들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이들은 김영오 씨의 입원 소식이 전해지면서 동조 단식을 결심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단식에 임하기 전 기도회를 갖고자 광장 중앙에 자리한 세종대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스크럼을 짜고 사제와 수녀들의 이동을 막았다. 이러자 실랑이가 벌어졌다. 수녀들과 사제들, 그리고 성도들은 경찰에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경찰은 스크럼을 풀었고, 수녀들과 사제들은 단식 기도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단식 기도회장을 포위했고, 이어 병력을 더 동원해 아예 광장을 점령했다.    
공권력이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앞서 든 두 장면은 최근 공권력이 어느 정도까지 광기를 부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영오 씨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날은 그가 곡기를 끊은 지 39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의 얼굴은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김 씨도 자신의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지 지팡이를 짚고 발걸음을 옮겼다.   
청와대가 최고도의 경비가 불가피한 곳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김 씨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았고, 더구나 40일 가까운 단식으로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들어 했다. 이런 사람을 건장한 체구의 경찰관 몇 명이 에워싸고 그의 발걸음을 제지했다는 사실은 분명 공권력의 과잉 행사다.     
광화문에서 벌어졌던 경찰과 사제·수녀들 사이의 실랑이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녀들과 사제들은 모두 기도를 위해 광장으로 향했다. 경찰 지휘관은 이들이 위험천만해 보였던 것 같다. 순식간에 경찰관 수십 명이 달려들어 스크럼을 짜고 이들을 막았으니 말이다. 사제, 수녀 그 어느 누구도 무기를 손에 쥐지 있지 않았다. 이들이 손에 쥔 건 묵주,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입법’이란 문구가 적힌 팻말 말고는 없었다. 이런 분들이 무슨 테러나 위협 따위를 가한다고 경찰이 이들의 길을 막고 기도회 현장을 포위했는지 그저 의아스러울 뿐이다.

공권력 입장에서는 충분히 변명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경찰은 무리 가운데 ‘불순한’ 세력이 뒤섞여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공권력 행사를 빈번히 정당화했다. 또 경찰관 가운데 일부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특히 기자가 현장에서 마주친 일선 지휘관 대부분은 상부의 지시를 앵무새처럼 되풀이 해 말하곤 했다.

일선 경찰에게 되묻고 싶다. 상부의 지시가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을 거스르고 있다고 해도 그저 따라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수뇌부가 정치 논리에 휩쓸려 국민의 안위를 우선시하기보다 부도덕한 정치세력에 우호적인 지시를 내렸을 경우에도 그대로 움직일 것인가?    
권력자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히브리 산파    
출애굽기는 섬뜩한 장면으로 이야기의 첫 장을 연다. 요셉의 사후 이스라엘인들은 “온 땅에 가득 찰 만큼” 불어난다. 이집트의 절대군주 파라오는 이스라엘 인구의 팽창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원수의 편에 붙어 우리를 치고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파라오는 이스라엘 성인에게는 강제 노동을 시킨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인구는 줄어들 줄 모른다. 오히려 억압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이스라엘 인구도 늘어난다. 파라오는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친다. 히브리 산파로 하여금 이스라엘 아이를 죽이라고 명한 것이다.   
“히브리 여인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에, 사타구니를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두어라.” (출애굽기 1장 16절 [공동번역])
그러나 산파들은 이 같은 명을 거역한다. 당시 파라오는 절대권력이었다. 따라서 명령불복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산파들의 집단행동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왜 산파들이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파라오의 명을 거역했을까? 출애굽기 기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하면서도 강력하게 제시한다.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출애굽기 1장 17절[공동번역])   
산파들에게 목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 반인륜적 범죄에 가담했을 때 자신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징벌을 더 두려워했다.   
잘못된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그 자체로 공권력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중대 범죄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해 300여명의 승객이 탄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당국은 ‘윗선’의 지시만 기다리며 그저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론이 들끓는 근본원인은 공권력의 중대범죄 행위다.   
지금은 과거처럼 권력자에 대한 불복종이 곧 죽음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상부의 지시를 어긴데 따른 징벌은 고작 인사상 불이익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시를 핑계로 경찰은 반인륜적, 반헌법적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경찰은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포위했고, 일반 시민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유가족들은 그 자리에 앉아 농성에 들어갔다. 이러자 경찰은 담요, 이불이 유족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막았다.  구태여 기독교의 신앙적 전승을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거스른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징벌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고등 종교치고 인과응보의 징벌을 경고하지 않은 종교는 없다. 무엇보다 지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공권력 구성원 모두가 수뇌부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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