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시선] 고용허가제, 암양 새끼 한 마리를 빼앗는 것

고용허가제가 8월17일로 시행 10년을 맞았다. 산업연수제의 폐해를 시정하고자 2003년 입법된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2004년부터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차별과 착취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개선된 점이기는 하나, 고용허가제는 그들의 작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특히, 농수축산업 분야에 고용된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에다 방치하고, 최근에는 퇴직금 수령기간을 ‘출국 후 14일 이내’로 변경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을 유린한다고까지 비판받고 있다. 이에 지난 8월12일(화)에는 4대 종단 이주노동자 대책위 관련 대표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고용허가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주민소위원회 위원장 김은영 목사는 “단지 얼굴색과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하게 하는 이 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원래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이주노동자들로 하여금 국내 노동시장의 브로커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급하게 함으로써 불법체류를 양산했던 폐해를 일소하기 위해 이주노동자의 국내 노동시장을 정부가 관리하도록 한 방책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를 도입함으로써 이주노동자의 수급을 정부가 담당하면서 국내 브로커들은 없어졌으나 송출국에서 유사한 브로커들이 생겨났고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그들에게 웃돈을 얹어주고 한국행 티켓을 얻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고용허가제 아래서도 산업연수생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이 기백만 원에서 일천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하고 한국에 오는 일이 계속 된 것이다. 이렇게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한국에 왔기 때문에 그들은 한 두 해 정도의 봉급으로 그 웃돈과 관련된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정작 돈을 모아보려고 하면 벌써 출국을 해야 하는 기한에 이르게 되고 만다. 그래서 이 제도도 결국 원래 의도와는 달리 불법체류를 유도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국내 이민당국은 이러한 사정을 파악했고, 또한 체류기간을 5년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이민정책상의 어려움도 고려하여, 그들의 체류기간을 4년 10개월로 연장하기는 했다. 그러면서 불법체류를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으로서 출국 후 퇴직금 수령 방침을 안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가 개선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인권을 유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제도의 발상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고용허가제는 발상 단계에서부터 이주노동자를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 혹은 “말하는 기계”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최소한 보장받아야 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외국인들, 소위 경제력과 학력이 높은 전문인력의 경우 가족 동반이 인정되는 것과는 비교된다. 이주노동자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본다면, 어떻게 5년여 타국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을 동반하지 못하게 하겠는가? 물론, 가족을 동반하게 되면 국내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국내 물가 때문에 그들의 봉급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겠지만,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나아가, 5년여의 기간 동안 국내 산업에 기여한 이들에게 국내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출국을 강요하는 것도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개발욕구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본다면, 어떻게 인간의 향상 욕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5년여 생활하면 국내 상황에 적응하게 되고 언어구사 능력이나 노동숙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실하고 기술실현력이 높은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국적이나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과 직장 이동의 자유 등도 허용함으로써 그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물론, 정부는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명분을 만들어 일정한 조건에 해당되는 자들에게 전문인력비자를 주겠다고 하였으나 이는 이주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출입국에서 제시한 E7 비자 조건은 내국인들도 실현하기 어려운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어서 실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듯 이주노동자에 대해 비인간적으로 야박하게 구는 모습은 나단 선지자가 범죄한 다윗을 꾸짖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다윗은 “헷 사람”[히타이트 족](삼하 11:3)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는 간책을 써서 그를 전장에서 죽게 한 뒤 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취했다. 나단이 다윗을 일깨우기 위하여 들려준 예화는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매우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양과 소가 심히 많았던 부자에게 어느 날 손님이 오자 가난한 사람이 유일하게 키우고 있던 암양 새끼 한 마리, 그것도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된]”(삼하12:3) 새끼 암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실상 ‘그 부자’인 다윗이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삼하12:5)라고 분개하는 장면은 누구든지 이러한 착취를 옳지 않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보고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고 지적했을 때, 그의 꾸지람이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 부자’처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딸처럼 소중히 여기는 ‘암양 새끼 한 마리,’ 예를 들면, 이방 땅에서 험한 일을 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한 꿈, 혹은, 고국의 처자식이 험한 세파를 이기도록 힘을 주고 싶은 희망, 혹은,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 자체를 고사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꾸짖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삼하12:1)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꾸지람은 ‘그 부자’의 착취를 여호와께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알려준다. 여호와의 뜻은 그 ‘암양 새끼 한 마리’를 그 가난한 자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최대한의 보루로 인정하여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충분하지도 않는 임금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의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대신하고 있는데 오로지 ‘3D업종 전담반’으로서만 효용가치를 인정하는 행정을 지속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의지하며 사는 ‘암양 새끼 한 마리’를 우리가 빼앗는 짓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이주노동자에게 가급적 최소한의 임금을 주려고 하며 최대한의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이민정책이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의 기본방침이라면, 우리는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삼하12:6)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 고용허가제가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기회로 이주노동자들을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전제하는 발상의 전환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배타적 관점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하려고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조세계의 원리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 포도원 노동자들의 임금에 관한 예화를 통해서 알려주고자 한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예화에서 포도원 노동자들은 일한 시간에 비례하여 임금을 지급받은 것이 아니라 공히 한 데나리온[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 씩 지급받는다. 포도원 주인은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마20:14)이라며 불공평함을 주장하는 사람의 의견을 묵살한다. 주인의 말과 태도는 노동자의 임금을 한 ‘인간’이 생활하기에 적절하게 보장하는 것이 성과나 계약에 따라 공평하게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지급한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주노동자의 효율적 가치를 따져 ‘공평하게’ 고용허가제를 적용하고자 하는 방침은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 앞에서는 재고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주노동자도 당신이 창조한 인간으로서 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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