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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교황 떠난 뒤 아쉬움
가톨릭의 처신이 불편한 두 가지 이유

입력 Aug 21, 2014 07:01 AM KST
먼저 조마조마한 심정부터 밝히고 싶다.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가 자칫 이웃 종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관련해서 보여준 가톨릭의 처신은 사뭇 납득하기 어렵다.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교황은 지난 14일(목) 오후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를 방문해 연설했다. 그런데 교황방한위원회는 언론에 연설문을 배포하면서 17줄 분량은 빼고 배포한 것으로 가톨릭 인터넷 신문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의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주교회의는 교황청이 보내준 연설문과 교황이 실제 한 연설이 달라서 누락했다고 해명했다.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인 강우일 주교도 20일(수) JTBC에 출연해 교황의 연설이 사전 문구의 차이로 인해 차질이 빚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가톨릭이 이를 고의적으로 누락하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문제가 된 교황의 즉흥연설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바로 이 대목이다.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저 또 다른 ‘사회의 일부’가 되는 위험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비적 차원을 잃고,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능력을 잃으며, 그 대신에 하나의 영적 단체가 되는 위험입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교 단체이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가진 단체이지만 예언의 누룩이 빠진 단체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유혹에 특정 교회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크게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어떤 사례들에서 이런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되어서 그런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가난한 이들이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이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이들을 위한 교회, 또는 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입니다. (중략) 저는 여러분 주교들께서 좋은 일들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지금 여러분을 훈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확인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한 형제로서,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매우 선교적인 교회이며 위대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교황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회가 대형화를 추구하는 나머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가톨릭의 성장세는 무섭다. 2005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인구는 10년 전인 1995년에 비해 74.4%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외적으로 비치는 이미지도 좋다. 무엇보다 가톨릭은 4대강 사업, 쌍용자동차,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 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등 이 사회를 분열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쟁점 현안에 뛰어들어 약자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특히 수녀들이 경찰에 의해 머리채를 잡히는 장면은 가톨릭 신도는 물론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정작 교권을 움켜쥐고 있는 주교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추기경이 두 명 씩이나 있음에도 약자의 눈물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권력에 의해 성체가 훼손되어도, 수녀가 머리채를 잡히는 수모를 당해도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편 사회 문제에 앞장서 목소리를 낸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가톨릭 내부에서도 백안시되는 실정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가톨릭 신도들과 수녀, 사제들은 아픔 당한 유가족들을 위해 앞 다투어 조문에 나섰으며, 미사를 봉헌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주교들은 침묵을 지켰다. 교황이 방한 기간 동안 가슴에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있었음에도 우리 주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선과 수뇌부 사이에 온도차가 심한 것이다. 더구나 최근 몇 년 사이 가톨릭에서는 ‘메가 처치화’ 경향이 현저하다. 이런 저간의 상황을 감안해 보면 주교회의에서 행해진 교황의 연설이 누락된 건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뒷맛을 남긴다.  
교황 기자회견, 가톨릭은 잠잠 
가톨릭의 처신이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교황이 기내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이다. 교황은 한국을 떠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떤 이가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해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어 달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아픔은 정치, 종교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슬픔이자 아픔이다. 교황은 이런 아픔을 잘 이해했고, 그래서 아픔 당한 이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렸다. 이런 행보를 정치적으로 보았다면, 이런 시각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감히 교황에게 ‘정치적’ 운운하면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라고 권유했을까? 교황에게 권유하려면 그와 지근거리까지 접근해야 하기에 한국 정부 혹은 가톨릭 고위직 가운데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만약 고위직 사제가 이런 권유를 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에 대해 강 주교는 우리 주교 가운데는 없다고 언급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행한 기적의 백미는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일이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 기적 중의 기적이다. 그러나 기적이 먼저가 아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에서 37절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기 전, 슬피 우셨다고 적었다. 기적을 행하기에 앞서 한 영혼의 아픔 앞에 슬피 우신 것이다. 이런 예수의 기적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자들은 바리새파였다. 세월호 유가족을 챙기는 교황의 행보를 정치적이라고 바라본 자들은 바리새파의 21세기 버전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불거졌음에도 가톨릭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의 해명이 있었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고자 한다. 초입에서 밝혔듯이 이웃 종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고, 또 내부적으로 움직임이 활발한 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몇 가지 일만 갖고 침소봉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가톨릭이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리고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는 교황의 메시지를 늘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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