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자수첩] 교황 방한이 남긴 것
교황 방한과 개신교 교계 위축은 무관

입력 Aug 19, 2014 06:26 AM KST
“교황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게 교황의 참 모습이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떠났다. 교황은 4박5일 동안 실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럼에도 힘든 기색 없이 예의 그만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극적인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각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기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교황이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 이 씨는 참사 직후 진상규명을 염원하며 십자가를 짊어지고 도보 순례에 나섰다. 그가 걸은 날수는 38일, 걸은 거리는 800km에 이른다. 군대로 말하자면 천리행군을 두 번 한 셈이다.   
교황은 그에게 직접 세례를 주었다. 바티칸에서 가져온 묵주와 성모마리아와 예수가 새겨진 메달, 한글 성서, 세례식에 쓴 초와 수건 등 선물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여러 가지 제약상 미디어를 통해 이 광경을 접할 수밖엔 없었지만 당시의 극적인 분위기는 간접 경험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이 대목에서 문득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미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교황과 공통분모가 많다. <미션>의 주인공 가브리엘 신부는 예수회 소속이었고, 교황 역시 예수회 출신이다. 영화의 주제 자체가 예수회 사제들의 ‘선교(Mission)’이다. 
영화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영화의 초반부는 악덕 노예상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와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의 갈등으로 짜여져 있다. 멘도자는 브라질 원주민 부족인 과라니족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이속을 채우던 악명 높은 노예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치정에 얽혀 자신의 친동생을 결투 끝에 죽이고야 만다. 분노는 잠시, 그는 이내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가브리엘 신부는 이런 소식을 듣고 멘도자를 찾아 간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에게 귀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가브리엘 신부가 섬기던 이들은 그가 노예로 삼았던 과라니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회의 의미로 지난 날 자신이 입었던 갑옷을 멍에로 짊어지고 순례의 길을 떠난다. 가브리엘 신부의 사역지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어 그는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이구아스 폭포로 오르는 길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야 했던 골고다 언덕을 방불케 한다. 
가브리엘 신부,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자신의 죄를 씻겠다는 일념으로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넘어질 때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뿌리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이 광경을 보기 힘들었는지 과라니족 아이는 칼로 그의 멍에를 끊는다. 그 순간,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함께 있던 인디오들도 함께 운다. 이 장면은 멘도자에겐 과거와의 단절을, 과라니족에겐 용서와 화해를 가져다줬음을 상징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교황에게 세례 받은 이호진 씨는 세례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가톨릭은 세례 규정이 엄격해서 세례‧견진성사를 받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규정대로라면 이 씨는 세례를 받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교황에게 규정은 문제되지 않았다. 교황은 그보다 이 씨가 걸어왔던 고난의 길에 주목했고, 그래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사실 아들 잃은 아버지가 나서야 했던 멀고도 험한 순례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걸어야 했던 순례길과도 겹친다. 
개신교와 가톨릭 간 교리 상의 차이는 일단 접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교리에 있지 않고 행함에 있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으로서 가진 강력한 영향력을 선하게 사용해 왔다.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와 낮은 자와 눈을 맞추는 그의 모습은 세계인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줬다. 특히 교황이 방한 일정 내내 청와대와 정치권으로부터 홀대를 당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세심하게 배려한 점은 우리 사회와 개신교계 모두를 부끄럽게 했다. 
개신교 교회는 말로만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이라고 외쳤을 뿐, 돈과 권력에 눈멀어 상처 입은 이들의 눈물을 철저히 외면했다. 한 해 예산 몇 천억에 수만 명의 신도를 거느린(?) 대형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되레 아이 잃은 부모 마음을 후벼 파는 설교만 일삼았고, 교황 방한 즈음해서는 교세 위축을 우려해 작심하고 소란을 벌였다. 
교황 방한이 가톨릭 교세 성장에 일정 정도 기여할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개신교 교세 위축으로 직결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개신교 교세는 꾸준히 위축돼 왔고,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교황 방문 때문이 아니다. 교세를 좀먹는 요소들은 따로 있다. 천박함,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일부 개신교 정치인들의 종교편향, 수구‧반공논리, 성추행‧공금횡령‧논문표절 같은 갖가지 비리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런 문제점들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은 해수로만 4년을 끌었어도 치리권을 가진 평양노회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한편 세월호 망언의 주역인 김삼환, 오정현 목사는 교황 방한을 눈앞에 두고 보란 듯이 포옹하며 세과시에 나섰다. 과연 이런 개신교 교회에 예수가 존재할까? 
이제 교황은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여운은 여전히 진하다. 특히 아들 잃은 아버지의 고난의 순례길을 인정해준 교황은 새삼 존경스럽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교황에게서 악덕 노예상 멘도자를 감화시킨 가브리엘 신부가 아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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