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자수첩] 구원파와 다름없는 기독교
정통/이단 구분선, 어렵지 않아

입력 Jul 09, 2014 04:16 PM KST
한국 기독교인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제공자인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처럼 행동한다. 인도 불교 성지에서 벌어진 한국 기독교인 3인의 ‘땅 밟기’ 행위는 정통 기독교가 구원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구원파 교리에 따르면 죄를 깨달으면 구원이 이뤄진다. 여기서 구원은 영혼의 영역에 국한된다. 육신은 영혼과 별개다. 이들은 “율법이 십자가에서 없어졌기 때문에 구원받은 후에 간음 살인 등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교의를 설파한다. 즉 어떤 행위를 벌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파 교의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지 않아도 되기에 기독교로 볼 수 없다. 
교의에로만 논의를 좁힌다면 구원파 교의는 이단 시비를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어떤 면에서는 위험천만하다. 따라서 정통 기독교를 구원파와 함께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진 불교성지 땅 밟기는 정통 기독교나 구원파나 행동양식에 있어서만큼은 차이가 없음을 알려준다.  
본지는 이 사건을 단독 보도한 <법보신문>의 협조를 얻어 제보자인 법수 스님의 증언과 원본 동영상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사건이 벌어진 곳은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이다. 이 사원은 부처가 보리수 아래 최초의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인도 불교 4대 성지인 동시에 UNESCO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다. 이곳에서 한국 기독교인 3명은 기타를 치며 CCM을 불렀다. 찬송가를 부르기 전에 이들은 선포기도를 했다. 이런 모습들은 일반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영상 속 주인공들은 앳된 젊은이들이었다. 이런 광경은 법당을 관리하는 인도 스님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인도 스님은 일본인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법수 스님이 가까이 가 들어보니 한국어 찬송이었다. 그래서 법수 스님이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이들은 스님에게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이시다”고 답했다. 스님이 “당신들은 구원을 받았는가?”고 물었다. 이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스님이 재차 “구원 받은 분들이 어찌하여 부처님 깨달으신 곳에서 상식도 없는 행동을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이들은 “스님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불쌍해서”라고 답했다. 스님에 따르면 이들은 계속 찬송가를 부르려 했고, 스님과 말싸움을 할 기세였다고 했다. 
다시 도마에 오른 구원 만능주의
스님과 기독교인 사이에서 오간 대화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바로 ‘구원’이다.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스님과 불교 성지에 온 사람들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긍휼한 마음이 들었고, 이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이 영혼들을 구원해 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들에겐 찬양을 부른 장소가 불교 성지이며 국제기구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셈이다. 바로 이 대목이 어떤 행위를 저질러도 죄가 아니라는 구원파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행동을 일부의 일탈행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이들과 비슷한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특히 이런 사고와 행동은 해외선교 때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제보자인 법수 스님이 지적했듯이 기독교인들은 미얀마 법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는가 하면, 티벳 사원에서는 성경책을 묻는 행위를 공공연히 저질렀다. 또 해외 선교를 떠난 이들이 현지의 타종교 유적을 훼손하는 장면을 찍어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 계정, 심지어 교회 게시판에 올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이 다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이 국가권력의 횡포에 맞서서 박해 받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집단행동을 벌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집단행동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빈 집단이기주의의 표현일 경우가 더 많았다. ‘믿는 자를 대통령에 뽑지 않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제명하겠다’는 설교로 공공연히 정치에 개입하거나, 동성애 조항을 문제 삼아 조직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려했던 행동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더구나 기독교인들의 집단행동은 다른 시민, 사회단체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성향을 띠었다.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선은 얼핏 희미해 보인다. 그러나 의외로 구분선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와 행동을 신앙, 특히 구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조장한다면 바로 그것이 이단이고 사이비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몰상식을 부채질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를 구원하셨던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의 의미, 그리고 구원 받은 자로서의 행동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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