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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한국교회 역할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한국 교회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입력 Jul 04, 2014 08:05 AM KST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이 1일(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 의결한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은 이날 “일본은 최근 들어 집권당이 역사 문제에서 문제를 만들고 있고 군사안보 정책에서 전대미문의 조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일본이 전후 걸어온 평화발전의 길을 바꾸려는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불가’라는 기존의 헌법해석을 변경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키로 결정한 것과 관련, 이를 전후 평화헌법에 따른 방위안보정책의 중대한 변경으로 보고, 예의주시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은 동북아 정치의 역학구도를 보여주는 핵심 쟁점이다. 또 한국 교회, 더 나아가 한일 양국 교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쟁점이기도 하다. 
먼저 ‘집단적 자위권’의 개념부터 짚어보자.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자위권, 즉 외침에 맞서 무력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 이를 개별 자위권이라고 한다. 집단 자위권은 이보다 더 확장된 개념으로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가 침략을 당하면, 이를 자국에 대한 침략행위로 간주하고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기본 개념만 살펴보면 얼핏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은 국가로서의 당연한 일이라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전범 국가이며, 중요하게는 과거사에 대해 그 어떤 책임 있는 행동도 보이지 않아왔다. 더구나 최근 들어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권은 공공연히 과거 자신들이 자행했던 침략행위를 부정하는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이런 일본이 ‘보통 국가’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집단적 자위권, 미일 이해관계의 산물 
사실 집단적 자위권 논란은 새삼스럽지 않다. 지난 1996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郎) 일본 총리는 ‘미일 신안보 공동선언’을 체결했다. 이 선언을 통해 미일 양국은 일본 주변에 사태가 발생해 미군이 출동할 경우 일본 자위대가 미군에 대한 후방지역 지원, 즉 물품과 용역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모호하게 ‘일본 주변’이라고 했지만 이 낱말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를 의미한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또 미군을 지원하는 일본 자위대가 공격을 당했을 경우 ‘자위’를 위해서라도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명백했다. 
전후 일본은 스스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봉쇄해 왔다. ‘전범국가’라는 트라우마에다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 재건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자국 영토 방위에만 전념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은 일본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군사패권 약화는 이런 움직임을 부채질했다. 균열의 신호탄은 앞서 언급한 ‘미일 신안보 공동선언’이었다. 
일본의 전쟁권리 주장은 일본 국내 정치는 물론 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 정치의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일본 정치권,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향후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다. 미국의 힘의 공백은 일본이 메워야 한다’는 사고를 키워나갔고, 이런 사고는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졌다. 일본 사회 전반의 우경화는 군사대국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한편 탈냉전기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중심은 옛 소련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무엇보다 중국이 일본을 밀어내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미국은 중국 견제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은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부채질했다. 일본이 주변국의 우려에 아랑곳없이 집단적 자위권을 밀어 붙인 것도 미국의 배후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베 내각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의하자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즉각 환영입장을 밝힌 건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해방 이후 한반도 정치 상황은 이념대립에 종속돼 왔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 10년 동안 이념대립을 해소하고 남북 화해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북은 대결구도로 회귀했고, 이런 상황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중이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남북대치 상황을 강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공공연히 수구-반공 이념이 마치 성경적인양 반공복음을 설파해 왔다. 이런 행태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한반도 및 동북아의 급변하는 정세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막았다.
미국과 일본이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중요한 명분은 한반도 정세 불안이다. 만약 남북이 ‘하나의 민족’ 대의 하에 이념대립 해소를 궁극적인 목표로 화해와 협력을 꾸준히 이어왔다면 애초에 미일 양국이 군사 전략을 추구하는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나마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가 아베 내각의 책략을 간파하고, 성명을 발표해 아베 내각을 규탄함과 동시에 한국 정부에 강력 대응을 촉구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베 내각이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는 배후엔 미국이 있기에 더욱 큰 행동이 필요하다. 특히 평화를 갈구하는 일본의 지성과 시민단체, 그리고 기독교인과의 연대를 이뤄내는 일이 시급하다. 
이스라엘은 잦은 외침을 당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동방 세계와 지중해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 통로였고 이로 인해 페르시아, 로마 등 강대국들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이런 거대한 힘 앞에 어쩔 줄 몰라 했고, 이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다. 
한반도도 이스라엘과 비슷하게 열악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의 운명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졌다. 
21세기 한반도는 미-일-중-러 4대강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민감한 지역이다. 더구나 지금 미국과 일본은 군사동맹을 구축해 중국과 맞서려는 형국이다. 이런 흐름 앞에 한 사람의 기도는 미약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토록 미약하기에 서로 서로 연대해 세상의 권세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 한일 양국 교회에게 맡긴 십자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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