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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만인이 기도하는 집과 아수라장

입력 May 02, 2014 08:03 AM KST

서울시 강북구 소재 강북제일교회(담임 조인서목사)에서 지난 4월20일 부활절 예배 후 폭력 사태가 다시 벌어졌다. 현재 강북제일교회는 지난 3년간 전임목사의 재정 비리와 독단적 교회운영을 둘러싸고 극심한 이견 속에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사태는 전임목사측이 전임목사에 대한 총회의 위임취소 결정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고등법원에서까지 받음으로써 이것을 기화로 교회를 강제로 점거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다.                                                                                                                         

강북제일교회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조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승인을 막으려 했던 황형택 전임목사측이 지난 4월 20일 부활주일 오후 4시경 교회의 모든 공예배가 종료되고 성도들이 거의 없는 틈을 타, 미신고된 불법용역을 동원해서 교회를 강제 점거하는 일이 일어났다. 교회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교회내부에서는 동원된 세력에 의한 극심한 기물 파손, CCTV 파괴, 빠루를 이용한 재정부실 탈취, 성도에 대한 폭력 폭행이 이루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고, 일부 용역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이 사실은 지난 4월28일 교계 기자들의 밴드에 공개된 비디오 채증 자료에 의해서도 입증됐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현장은 예수가 질타한 ‘강도의 소굴’을 재현한 듯했다. 폭행 장면도 그러하거니와 ‘빠루를 이용한 재정부실 탈취’는 강도짓의 전형이지 않은가? 이처럼 교회가 인간의 욕망 때문에 그 본래적인 기능을 소실하게 되면 아수라장의 사전적인 의미대로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이 난동을 부린 곳이 되어버린다. 기도 소리와 이웃을 위한 애통과 교제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 욕망에 사로잡힌 아수라들의 폭언이 난무하게 된다. 비디오는 과연 그러한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내어 모은 곳(ecclesia)이다. 그곳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시되는 공간이지 권력과 금력을 토대로 한 비인격적 질서가 우선시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경쟁을 위해 사람들을 불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복종과 희생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사람들을 불러낸 곳이다. 따라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나의 것을 먼저 내어놓는 생활의 모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다. 그곳은 권력과 금력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힌 우상의 제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곳은 두목과 돈주머니를 위해 몸을 던지는 강도들의 폭력이 자행될 수밖에 없다. 

교회를 교회답게 회복하려면 예수의 숙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예수의 성전 숙정은 본질적으로 환전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 뒤에서 이권을 챙기던 종교권력가들을 비판하려는 의도에 따른 행위였다. 따라서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예수의 채찍이 내리쳐질 것이며 그들의 환전대가 뒤집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숙정은 난동의 일부분이 아니라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강북제일교회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의 논리를 적용하면 난동은 계속되겠지만 예수의 채찍을 의식하면서 깨우쳐야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황목사측은 일단 교회에 들어왔으니 반대파를 축출하려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은 백의종군이다. 와신상담이 아니라 자발적인 백의종군이다. 백의종군은 예수 앞에서 거듭나는 과정이며 성도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따라서 그동안 누렸던 권력과 금력의 갑옷을 벗고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섬겨야 한다. 그러한 공개적인 회개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도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죄를 예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회개를 시작할 때 예수의 채찍은 비켜갈 것이다. 

그리고 황목사는 총회 재판국의 결정이 과도하다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사법적인 조처들을 즉각 철회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이후에 자신의 결정과 권위가 꼭 같이 무시당하는 일이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황목사는 버림받은 존재가 된다. 황목사의 진의는 진정한 리더가 되고 싶은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의 영성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리더가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기 위해 오해를 견디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 영성의 감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조목사측은 이 회개를 도와야 한다. 돕는다는 말 속에는 복잡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더군다나 돕는 측의 인내도 담보되어 있다. 그리고 성도들은 예수 앞에서 한 영혼이 거듭나는 과정을 관심을 갖고 기도로 후원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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