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데스크시선] 분노의 정치학
한 지체로써 고통을 공감하며

입력 Apr 26, 2014 01:45 AM KST
세월호 침몰후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이 벌써 일주일째 접어들고 있다.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에 아무런 반향이 없는 시간은 이제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치고 있다. 그 분노는 파열적인 해소를 꾀하며 하나님에 대해, 동료 인간에 대해, 정부에 대해 도화선을 접속시키고 있다. 출구 없는 상황에만 집중하여 상상적인 돌파를 꾀하는 이러한 분노는 희생양을 만들어 거기에 저주를 쏟아부음으로써 자체를 정서적으로 해소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분노의 정치학은 결국 망각으로 이어진다. 


우리 역사에서 거룩한 분노가 “포도처럼” 영글어 동료 인간간의 결속과 실질적인 구조개선을 이루어냈던 적도 있었지만, 절망적 사태와 희생양과 정서적 해소와 망각 그리고 다시 돌출하는 절망적 사태의 순환 속에서 정서적 효과에 기댄 분노의 사례들이 더 빈번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이 난지 21년이 지났는데 그 당시의 몽매함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때의 ‘거룩한’ 분노가 정서적 효과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종자 가족들의 타들어가는 가슴 속에 영근 분노만큼 진솔하고 열정적이며 거룩한 분노는 없을 것이다. 그 분노는 사회의 실질적인 구조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동료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분은 그 가족들의 분노를 정서적 효과로 희석시키지 않도록 유도될 필요가 있다. 공분은 자칫 희생양을 만드는 손쉬운 돌파구에 기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분노를 공감한다면, 그러한 절망적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혹은 그러한 사태의 처리 과정에 대해 설득력 있는 경로를 만들며,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 도사린 돈과 효율을 위해 인간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의식과 제도에 대한 반성과 그것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를 거룩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의 고통이 재생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사실 우리가 함께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가 희생자 가족들의 심정을 공감하는 하나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손이 아프면 온 몸이 긴장하며 그 아픔을 함께 겪지 않는가? 분노의 공감은 그 분노를 일으킨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들의 분노를 해소하고자 할 리 만무하며 누구보다 자신들이 당한 불행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강하게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들과 한 지체로써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한 지체는 고통뿐만 아니라 반성의 결실로 얻는 영광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12장26-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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