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병학] 유대 묵시문학과 신약성서: 에녹과 예수(5)

이병학·한신대 신약학 교수

III. 결론: 에녹과 예수

▲한신대 이병학 교수(한국신약학회장)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의 일부인 비유들의 책의 네 메시아적 인물들의 기능들은 신약성서의 기독론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비유들의 책에서 의인, 택한 자, 인자, 그리고 메시아는 각기 동일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이다.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억압자들에 대한 심판자이며, 희생자들과 고난당하는 약자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서 함께 싸우는 투사이고, 또한 해방자이다. 그는 희생자들과 약자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이고, 현재 감추어져 있고, 그리고 마침내 종말의 날에 심판의 권세를 가진 왕으로 세워질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메시아적 인물의 선재적, 현재적, 그리고 종말론적 차원이 인식될 수 있다. 그가 나타나면, 그는 혼자 있지 아니하고, 항상 하늘에 있는 의인들과 성인들과 택한 자들의 공동체와 더불어 있다.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의 메시아론은 예수의 메시아적 자기 이해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통적인 서구 신학자들은 예수의 자기 이해의 자료가 오직 예수 자신에게만 있지 초기 유대교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입장을 지닌 대표적 학자들 중의 하나인 고펠트(Leonhard Goppelt)는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의 실천지향적인 메시아론적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마가가 이미 상응하는 기독론에 친숙했다고 할지라도, 공관복음서에는 예를 들어 인자가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에서 처럼 선재상(Praeexistenzvorstellung)과 연결되지 않는다. 공관복음의 진술은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와 제4 에스라서로 대표되는 묵시문학적 전승들과 결부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촬스워즈(James H. Charlesworth)는 예수의 자기 이해와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면, 예수는 자기가 인자라고 또는 하나님에 의해서 인자로 선포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에녹1서 37-71에 발견된 실례처럼 이 호칭의 메시아적 배음들이 그의 사명에 대한 그의 점증하는 자각을 주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승들은 확실히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선포했다는 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의 인자 어록의 세 가지 유형들인 인자의 권위, 미래적 오심, 그리고 현적 수난은 교회에 의해서(필하우어와 콘첼만의 입장) 창안된 것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한 확실성을 더 진전시키시는 어렵지만, 그러나 예수가 그의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하였던(참조, 막 1:22; 7:37; 11:18; 마 7:28; 눅 4:32; 19:48; 요 7:46) 그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에녹 전승들(에녹1서 62-63, 69)의 영향 아래서 아마도 간접적으로 구전들을 통해서 인자 용어를 사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이 모든 가능성들은 학자적 성찰을 결코 넘어설 수 없지만, 그러나 오로지 종말론적 인자 어록들은 예수 자신으로부터 유래하고 또 그것들은 미래적 구원자를 가리킨다는 불트만의 주장을 이제 넘어 설 수 있는 이유들이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촬스워스는 예수가 어떻게 자신을 인자로 이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예수가 자신을 에녹과 동일시하고 메시아 실천을 함으로써 인자로서의 자기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에녹과의 동일화를 통한 인자로서의 예수의 메시아적 자기 이해를 성서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가? 나는 막 8:27-38의 본문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거기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질문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 8:29). 이것은 예수의 자기 이해를 위한 가능한 근거를 나타낸다. 그러데 이 물음에 앞서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다(8:27). 예수는 사람들이 그를 세례자 요한, 엘리야 혹은 예언자들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맥락에서 예수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질문을 제자들에게 했다. 거기서 제자들은 예수 안에서 메시아를 본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는 그것에 대해서 침묵하도록 그들에게 명령한다(8:30). 나중에 베드로는 예수의 책망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의 수난 선언, 즉 인자의 수난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왜 그의 행동에 고난이 불가피한지를 물을 수 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초기 유대교와 연관을 짓지 않는다.  그들 중의 일부 학자들은 마가복음 8:27-30의 단락에서 예수가 제자들의 의견을 묻는 질문의 역할을 단지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일반 사람들의 의견과 강하게 대조된다는 점에서 찾는다.
 
이와 반대로 나는 예수가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과 동일시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예언자가 바로 에녹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에녹은 노아 홍수 이전에 한 예언자로서 정의를 실천한 자이고, 또 비유들의 책에서 인자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의 자기 이해와 그의 행태는 인자와 에녹을 동일시한 비유들의 책의 메시아론적 구조의 빛에서 인식될 수 있다고 본다. 에녹은 지상에서 정의 투쟁을 통한 메시아적 실천을 함으로써 인자와 동일화되었다. 예수는 자신을 범례적으로 이러한 에녹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자신을 인자로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가 오기 전에 이미 초기 유대교에는 비유들의 책에 서술되어 있듯이 메시아 실천을 통한 약자들의 해방을 위한 한 메시아적 구조가 있었다. 이러한 에녹 전승에서 인자로서의 예수의 자기이해가 싹튼다. 이러한 인자상의 급진성은 특히 고난의 측면에서 나타난다. 정의와 평화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신의 육체에서 경험하는 고난은 정의와 평화의 대안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유대적 메시아 실천을 실행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불가피한 전제 조건이다. 나는 에녹이 하늘로 이끌려 올라가서 인자와 동일화되기 전에 지상에서 권력자들과 직접적인 육체적 대립 없이 정의를 실천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고난은 정의실천과 해방 투쟁을 통한 메시아 실천을 행동화하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예수가 베드로를 책망한 이유는 베드로가 메시아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고난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메시아 실천은 에녹과 예수 사이, 초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상수이다. 그러므로 초기 유대교는 초기 기독교의 어머니로 생각될 수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합이 예수의 인격 안에서 구체화되었다. 왜냐하면 유대인으로서 예수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억눌린 남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는 이러한 그리스도 실천에 대한 증언이다.
 
비록 마가복음의 저자는 에녹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는 비유들의 책의 메시아론적 구조의 빛에서 나사렛 예수를 인자로 이해하였을 것이다. 비유들의 책의 메아시론적 구조, 즉 에녹과 인자의 동일화는 한걸음 더 나가서 기독론의 새로운 차원을 제공한다. 그것은 십자가 이전 기독론이다. 십자가 이전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예수의 자기이해에 기초한다. 이러한 기독론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 전에 이미 에녹의 범례적 모형에 따라서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메시아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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