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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범의 길에서][11][길에서 이탈하다]

이충범·협성대 신학과 교수

터미널에서 나와 삼남대로인 831번 지방도로를 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오래된 고도이다 보니 나주는 도시 자체가 유적지나 다름없다. 사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터미널도 예전 나주성 동쪽 문이 있던 자리였다. 그 외에도 나주엔 수많은 지석묘들과 삼한시대의 천년 유적지들이 널려 있고 나주향교를 비롯하여 여러 채의 대궐 같은 고가들이 즐비하다. 원래 부자동네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지은 호화주택들이 남아 있는 셈이다. 게다가 나주엔 영산강으로 올라오는 장어 요리가 예부터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있었다. 이 땡볕에 그곳들을, 그것도 걸어서 찾아다닌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저 내가 걸어가야만 하는 길 주변의 유적지와 밥집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어서 시내를 빠져나가 산정 삼거리까지 가서 광주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 삼남대로로 올라서야 한다. 급한 마음에 빨리 걷고 싶지만 나주 시내의 여러 풍경이 쉽사리 나를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나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도시와 농촌을 여행하면서 내심 많은 실망을 했다. 나라 밖을 다녀보면 도시는 각 도시마다 특색이 있었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그 특징은 더욱 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딜 가도 다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대도시는 예외 없이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건물들과 아파트, 농촌지역엔 임시 가건물과 공장, 그리고 어디든지 들어서 있는 천박한 음식점 입간판들,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나라가 역사도 없는 민족인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웠다. 그런데 나주는 좀 달랐다. 시 외곽은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고분군들이 펼쳐져 있고, 영산강가에는 개발시대의 추억을 담고 있는 낡은 담장과 집들, 도시 한복판엔 어설픈 현대화의 밑바닥 곳곳에 천 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남겨진 고택들과 군데군데 나주읍성의 자취들은 재촉하는 발걸음을 자꾸 잡아챘다. 더운 것을 핑계 삼아 느릿느릿 나주시내를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광주방향 국도로 올라섰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얼마 걷지도 못하고 바로 길 옆으로 빠져 그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늘에 들어와 앉아 있는데도 계속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이로 보나, 건강상태로 보나, 저질체력으로 보나, 영양상태로 보나, 더 이상 이 뜨거운 국도 길을 이대로 25킬로미터 이상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또다시 목표를 변경했다. 이제부터 여행은 걷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보는 것을 목적으로 재설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여행의 목표를 재설정하고 나니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졌다. 한참을 길에 널부러져 쉬다가 나는 다시 나주시내로 들어갔다. 참으로 우습다.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던 이스라엘, 그리고 40일을 수행하시던 예수님, 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아주 무심코 들어왔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고 나니 나는 패배한 신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광야에서 불만 가득한 민중을 이끈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고독, 40일을 홀로 광야에 나가 지겹도록 유혹과 자기 자신과 싸우시던 그 분의 고독이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시내로 다시 들어오자마자 우선 뭔가 먹어야겠기에 분식집을 찾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잘하는 냉면집을 찾는 것은 무리이겠거니와 설사 찾는다고 해도 거기까지 걸어 갈 용기가 없었다. 마침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프랜차이즈 분식집이 보여 들어가 세숫대야냉면을 시켜 맛이 아닌 시원함으로 들이켰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호사라도 떨어 볼까 하는 생각에 커피집에 들어가 오랜만에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비록 별다방(?) 커피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커피가 일품이었다. 사실 나는 커피광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부터 만들어 하루 종일 홀짝홀짝 마시는 아버님을 빼닮은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아직까지 커피믹스 두 잔을 제외하곤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했다. 그러니 오늘 이 커피가 얼마나 입에 착착 붙었겠는가? 그러면서 배만 채우면 만족하던 것에서 언제부터인가 맛을 구별해내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이 탓도 있었고, 도시와 직장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점심은 뭘 먹을까 궁리하기 시작했고, 지방에 내려가면 네비게이션에 저장된 맛집을 찾아 다녔고, 맛없는 음식을 먹었을 땐 괜스레 돈이 아깝고 화가 났다. 어느덧 나의 삶은 살기 위해서 배를 채우던 삶에서 먹으며 즐기기 위한 삶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무엇이든지 몸이 궁하면 다 맛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뼈저리게 느꼈다. 그것을 다시 깨닫고 나니 오랜만에 맛보는 커피보다도 더 진한 감사가 넘쳤다. 이것을 주신 이에게도 감사하고, 농사지은 분들에게도 감사하고, 사먹을 수 있는 여유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 먹어도 괜찮을 건강을 허락하신 것도 감사했다. 

넋 나간 모습으로 거지꼴을 하고 커피집에 앉아 있는 나를 옆 사람들이 힐끔힐끔 자꾸 쳐다본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시선’의 의미를 참 많이 깨달았다.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다보니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일종의 버릇이 되어 버렸었다. 캘리포니아 촌구석을 혼자 여행하던 시절 너무 배가 고파 뭔가를 사먹어야 했는데 워낙 시골로 들어가다 보니 그 흔한 햄버거집 하나가 없었다. 당장 권총을 든 카우보이가 나타날 것 같은 주막을 발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주막에 앉아 점심을 먹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리고 천천히 테이블에 앉는 순간까지 이상야릇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그들은 흘금흘금 나를 쳐다보았다. 스물 아홉의 청년이었던 나는 이때 사람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지속적으로 시선을 받아 왔다. 그런데 그 시선은 폭력적인 시선이 아니라 따듯한 시선이었다. 옷차림새가 다른, 타지의 중년남자의 모습에 내가 거쳐 간 마을의 사람들은 흥미와 친절과 관심과 배려의 따듯한 눈길을 보내주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이러한 시선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주의 커피집에서 처음으로 이방인을 쳐다보는 낯선 시선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나주는 내가 거쳐 온 지역보다 도시화가 진행된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 매일 이렇게 낯선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거늘 단 며칠 따듯한 시선을 경험하고 나니 며칠 만에 경험하는 낯선 시선이 정말 낯설었다. 그만큼 사랑과 배려의 힘은 큰 것임이 분명하다. 단 며칠만 경험해도 평생 익숙한 것들을 물리치니 말이다. 여하튼 그 시선을 뒤로 하고 나는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빛고을 광주를 섭렵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물건을 파는 분이 올라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풍경이라 참으로 반가웠다. 천성 상 기차, 전철, 버스 안에서 파는 물건을 잘 사들고 들어오는 편인데 이 아저씨가 파는 물건은 지금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팔뚝을 덮어서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팔토시였다. 신상품이라고 침 튀겨가며 장황하게 설명하시는 중간에 나는 참지 못하고 일단 하나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앞으로 이 팔토시가 내 여행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받자마자 포장을 뜯어 팔에 끼자 여기저기서 나를 훔쳐보던 사람들이 팔토시를 주문했다. 물끄러미 나를 보시던 내 앞쪽에 앉은 할머니 둘은 일할 때 하면 좋겠다면서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꺼내서 각자 하나씩 사셨다. 그리곤 나에게 동류의식에 가득 찬 눈길을 보내셨다. “여기요!” “저기요!” 하는 주문소리에 아저씨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팔토시를 전달하였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나하고 짜고 장사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하튼 팔토시 장사는 목청 돋우어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여러 개를 팔고 흡족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거봐라, 나 때문에 유용한 물건 싸게 샀지?”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한 청년이 어렵사리 차에 오르더니 어눌한 말로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꺼내든 물건이 또 팔토시였다. 무더운 한 여름, 혼자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은 청년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팔토시의 효능(?)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팔지 못한 물건이 가득 찬 큰 가방은 너무 무거워 보였다. 때마침 밖에서 담배를 다 피운 운전기사가 운전석에 앉았다. 청년의 힘겹고 안타까운 설명이 계속되자 아까 물건을 사신 할머니가 팔토시를 들어 보이며 “좀 전에 샀는디...”하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셨다. 나는 정말 한 개를 더 사고 싶었다. 그런데 주눅이 들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팔토시를 본 청년은 설명을 멈추고 비틀비틀 가방을 들고 버스를 한 바퀴 돌더니 아슬아슬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심한 차는 휙 출발했다. 나는 의기양양하던 표정에서 “죄송합니다”하는 표정으로 급전환 하였다.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그 청년에게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리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버스에 탄 사람들 전부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서 숨쉬기도 버거웠다. 그렇게 급썰렁해진 버스는 광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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