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0)

조선(한국) 선교 - 가톨릭 선교




제14장 조선(한국) 선교

1. 가톨릭 선교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선교가 먼저 된 중국과 일본을 이웃으로 한 조선에 천주교 선교의 길이 트일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때 천주교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장군의 군목, 포르투갈 신부 세스페데스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있던 천주교회에서 전쟁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 와 있던 천주교 선교회는 조선인 포로를 노예로 매매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중국 북경에서 선교하던 천주교 신부 마테오 리치(Ricci)가 만든 세계지도를 가지고 조선에 들어온 이광정(李光庭)이 그 신부에게서 전도를 받았을 것이다. 허균(許筠)이 중국 북경에서 천주교에 접했고 조선을 소개받은 북경의 천주교 신부가 조선에 들어오려다가 입국을 거절당했다. 1644년에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천주교 신부 아담 샬과 교제하고 천주교 서적과 서양 과학기물 등을 가지고 왔으나 2개월 후 그가 사망하여 천주교 포교는 실패했다. 그러나 천주교 서적과 서양 과학서적을 입수한 조선의 학자들은 숨어서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는 「천주교 교리 연구회」를 1777년에 조직하였다.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포르투갈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어 귀국해서 남인파 학자들과 친구들에게 전도하여 이벽, 정약전, 정약용 등을 개종시키고 이승훈은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주었다.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1785년에 서울의 김범우 집에서 처음으로 천주교도들의 집회가 열렸으나 이것이 관청에 알려져서 김범우가 투옥되었다가 순교하였다. 이때 조선 조정은 천주교 박해를 결의하고 천주교도의 구금과 처형과 천주교 서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조선 천주교 신도들은 북경의 프랑스 동방전교회(傳敎會) 선교사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선교를 계속했다.

1794년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조선에 비밀리에 입국했을 때 천주교 신도 수는 4,000여 명이었다. 그러나 주 신부의 비밀입국이 당국에 알려져 박해가 일어나 주 신부는 피하였고 관련된 사람들이 처형되었고 이승훈은 유배를 받았다. 그러나 천주교도들은 전도단체를 만들어 계속 전도하여 교인 수가 1만 명을 넘었는데, 이때 조정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만들어서 천주교도들이 집회를 가질 수 없게 하였다. 많은 교인이 체포됐고 이때 이가환과 권철신이 순교했고 계속 순교자가 생겼다. 주문모 신부도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았고 이승훈도 참수형을 당했다. 이렇게 하여 신유박해 때 300명 이상의 교인이 순교했다.

1811년 천주교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충청도와 영남지방에서 박해가 일어났다. 조선 천주교회는 북경의 동방전교회에 신부를 한국으로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여 1836년에 모방 신부(P. Maubant)가 입국하였다. 조선 교회는 그의 지도로 선교의 큰 진전을 보았다. 신학 공부를 위하여 김대건과 최방제와 최양업 세 청년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다. 1839년 3월 천주교를 서학(西學)으로 부르고 서학퇴치를 시행하여 서울, 전주, 상주, 동래 등지에서 많은 천주교도들이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앵베르 주교가 자수하여 처형되었고 모방 신부와 사스탕 신부가 홍주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서양 신부가 조선에서 처형된 첫 사건이었다. 그 밖의 조선의 천주교 지도자들이 많이 처형되었다. 김대건은 1845년 8월에 상해에서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되는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페레올(Ferreol) 주교와 함께 몰래 입국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지도 아래 천주교는 크게 성해갔으나 그는 1846년 7월 2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프랑스 군대가 충청도에 와서 프랑스 신부 살해에 대하여 항의하였다. 이 해의 기해(己亥)박해는 1801년 신유박해보다 더 혹독하여 참수된 순교자가 54명이고 옥사한 사람이 60여 명이고 배교하여 석방된 사람이 50명이었다. 로마교황은 일찍 조선 천주교구를 설치하고 주교로 중국의 프랑스 선교사 신부들을 임명해 왔는데 이번에 순교한 앵베르 주교 후임으로 페레올 주교를 1845년 10월에 임명하였다.

조선 조정이 천주교도들을 박해한 정책은 조정 대신들의 정파싸움과 무관하지 않았다. 기해와 병오박해는 정권을 잡았던 안동김씨 세도에 도전하려던 풍양조씨 세력이 일으킨 일이었는데 풍양조씨 세력이 약화되고 안동김씨가 다시 세력을 잡아 철종을 왕으로 세우고 순원왕후가 섭정하면서 천주교 박해는 당분간 소강상태에 들어가서 천주교도로 정죄되어 유배 갔던 사람들이 해벌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하여 1851년 이후 10여 년 동안 천주교 교세는 크게 성장했다. 이때 천주교도는 2만 3천여 명이었다. 중국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10여 명 조선에 입국했고 국내에 신학교를 세워서 신부를 양성하였고 교리서적을 비롯한 신앙서적들을 조선말로 만들어 보급했다. 1853년 이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을 위하여 조선어, 중국어, 프랑스어 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교리서들과 다른 책들을 처음에는 손으로 써서 만들었지만 1854년에는 서울의 목판출판사 두 곳에서 출판하였다. 15세기 중엽에 한글이 발명된 후에도 계속 한문 문화의 우세가 계속되다가 이제 천주교의 조선어 교리서들이 출판되어 우리 한글 문화의 보급과 발달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고, 한글의 보급이 권위주의 봉건사회를 대치(代置)할 평등사회의 준비가 되었다.

이승훈이 중국 북경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여 조선 천주교 선교를 시작한 이후로 80년 동안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 끝까지 선교전선에서 싸워 온 조선 천주교가 5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유교전통의 조선 왕조를 넘어뜨린 여러가지 세력들 중 한 세력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조 말년의 대원군 정권이 천주교를 그토록 무자비하게 박해하고도 천주교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나라까지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조선 천주교는 서양나라의 정치나 무력의 힘을 업고 시작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세력의 도움도 못 받았다.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가 천주교 신도들을 무차별 죽이고 고통을 준 것은 하나의 전쟁터의 장면이었다. 이 전쟁은 정신무장한 신도들과 무기로 무장한 군대 사이의 전쟁이었으나 최후 승리는 정신무장한 신도들에게 돌아갔다. 성서대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가이사의 전쟁이었다.

고종황제 3년 병인년에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대원군이 실각한 1873년까지 무려 8년간의 긴 그리고 무자비한 박해였다. 그동안 순교한 신도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으나 대략 8천에서 2만 명으로 보고 있다. 1890년에 순교자에 대한 조사가 있었고 1895년에 77명의 순교자들의 행적을 실은 책이 간행되었고 그 중 24명이 로마교황청의 심사를 거쳐 1964년에 시복되었다. 그들 중에는 프랑스 선교사 7명이 있다. 그러나 처음 박해 때부터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에게는 하늘의 하나님의 시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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