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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가니’로부터 한국교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요즘 화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학교의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사람들이 그 학교의 교장 등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었다는 점은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도가니’로부터 한국 교회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삼거리픽쳐스

인화학교 사건은 단순 성범죄가 아니다. 4년 동안 끈질기게 그러나 조용히 범행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힘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남성이면서, (신체적으로) 정상이고, 학생들을 계도하는 입장이었던 반면, 피해자들은 대체로 나이 어린 여성이면서, 청각장애를 갖고 있거나 때로는 지적장애도 동반했고, 가해자들의 지시에 따라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발가벗겨 추행한 후 “이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무시무시한 권력 앞에, 어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침묵 밖에 없었다.

사실 많은 성범죄는 이러한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남성이 여성을,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을,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하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이 점에서, 교회 역시 성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자칫하면 교회는 성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 목사와 신도의 관계는 많은 경우 남성목사와 여성신도라는 틀을 띄며 이 중 우위적인 입장은 단연 목사다. 특히 이들의 권위는 성서라는 절대적인 기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반(反)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로 해석되면서, 이들에 대한 순종과 복종의 체제는 점점 강화되어 간다. 복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일 수 밖에 없는 목사가, 성서의 권위를 자기화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그 권위를 가지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면 이를 막을 방도란 과연 있는 것인가.

기독교여성상담소 박성자 소장이 지난 7월 발표한 교회 내 성폭력에 관한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0년간 100여건의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으나, 사후처리가 제대로 된 적은 많지 않다. 가해자인 목사는 말할 것도 없다. 해결의 실마리를 가진 교단 측 심의위원들까지도 “고소 여성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들을 유혹자 내지 스토커로 내모는 실정”이다. 교회 내 신도들 역시 2차 가해자로 전락한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은 “목회자를 지지하는 직분자들로부터 거짓을 고한다고 배척당할 뿐만 아니라, 음란마귀가 들었다거나 ‘주의 종’을 음해하고자 하는 사탄이라고 정죄당하고, 결국에는 소수의 지지자들과 같이 교회에서 탈퇴당하고” 있다. 상담소를 찾은 것부터가 교회에서 지지자들을 확보하지 못한 까닭이다.

특히 교회 내 성폭력에는 “항상 힘의 불균형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 때문에 성폭력을 거부하는 데 한계가 있고, 비밀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으며, 성폭력 이후에도 목회자를 목회자로 대우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당하게 된다.

교회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떻게 목사를 고발할 수 있느냐’고 하는 정서부터 들어내야 한다. ‘어떻게 목사가 교인을 성폭행할 수 있느냐’고 그 물음의 방향을 돌려 사회법의 판결에 회부해야 한다. 또 교단 내에 성폭력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교회법 내에도 관련 조항을 만들어 성폭력 목사를 엄중히 처벌, 면직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제2의 도가니’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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