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

이충범·협성대 신학과 교수


조수석 유리창을 내리고 내게 묻는 사내에게 나는 북일면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여기서 북일면이 어딘데 걸어가려고 하느냐며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여러 번 사양을 했지만 이 사내는 막무가내로 버티며 차에 타란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한 장면과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젊은 시절의 특이한 경험이었다. 무슨 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명동에 갔다가 무척 늦은 시간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판교의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L백화점 앞이 무척 막혔다. 거의 새벽이 다 된 시간에도 차가 막히는 것이 이상하여 두리번거릴 무렵 갑자기 한 젊고 화려한 여성이 내 차의 조수석 문을 열더니 “이태원!”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무슨 소리냐고 반문을 하자 이 여성이 갑자기 내 차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자기 마음대로 뒷문 잠금장치를 열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여자가 후다닥 달려와 뒷좌석에 올라탔다. 졸지에 나는 세 여자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그들이 설명하는 연유는 이랬다. 그 늦은 시각에 백화점 앞이 차량으로 가득한 이유는 자가용 영업차들(소위 나라시 택시)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내 차를 타게 된 이유는 3명이라 합승을 못한다는 이유로 나라시들이 차를 태워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여성들인지 모르겠지만 자주 자가용 택시를 이용한다는 그녀들은 혼자 차를 탈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잘못 탔다간 돈도 다 빼앗기고 몹쓸 일도 당한다고도 했다. 결국 어리바리한 나는 이 프로페셔널들에게 찍혀서 졸지에 자가용 영업을 하게 된 것이다. 거절하는 내게 내리면서 책값이나 하라고 그녀들이 준 택시비(?)는 정확히 얼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상상외로 꽤 많은 액수였던 것 같다. 난 한사코 내게 자기 차에 타라고 윽박지르는 그 사내와 대화하면서 이 기억이 스쳤다. 더 이상은 거절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는 최후의 반격을 가했다.

“저는 지금 도보 여행을 하는 중이라서 차를 타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정도 강력한 펀치를 날렸으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아~ 걸을 때 걷더라도 일단 타쇼잉”

허걱! 이미 마지막 남은 총알까지 다 쏟아 부은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있는 논리가 없었다. 사내의 고물차는 바닥이 흙투성이에다 내부는 엉망이었다. 게다가 냄새도 심하게 났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의 차가 분명했다. 내 나이 또래 정도의 그 사내는 내가 차에 타자마자 대뜸 어디서 뭐하러 왔느냐고 묻더니 나를 차에 태운 연유를 이야기했다. 막걸리를 사러 가는 길에 반대편 차선에서 걷는 나를 봤는데 한참을 구멍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오는데도 내가 여전히 걷고 있기에 맘이 짠해서 태워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약수터까지 가면 그때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되니 걷기 편할 것이라고 했다. 놀란 것은 그가 구멍가게 가까이 산다는 점이었다.

그는 나를 북일 약수터 앞에 내려주더니 잘가라는 인사와 함께 휙하고 유턴을 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순간이나마 그에게 의심을 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일부러 자신의 집을 한참 지나쳐 나그네를 태워 준 그는 나에게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했다. 바글거리면서 도시에 사는 삶밖에 모르는 나 따위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른 정과 인심을 가진 분이었다. 갑자기 나는 기쁘고 행복해졌다. 게다가 눈앞엔 시원한 약수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약수도 마찬가지였다. 투명하고 맑은 계곡의 물은 없었다. 이상하게 탁한 약수였지만 물맛은 일품이었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도가 있어 나는 땀에 쩔은 머리를 처박고 물을 쏟아 부었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시원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만큼 물을 들이켠 후에도 길을 떠나려니 아쉬웠다. 조금만 가면 다시 땀범벅이 되고 목이 탈텐데 그 때 이 물이 아쉬워서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기왕 물을 만난 김에 호기를 부려 모자에 물을 가득 부어 온몸에 몇 번을 쏟아 붓고 다시 길을 떠났다.

역시 내리막이라 걷기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물에 젖은 온 몸은 금방 말랐고 또 땀은 비오는 듯하다. 그런데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양옆으로 아름다운 산을 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오른편엔 두륜산이 아름다운 바위를 드러내며 호위병처럼 서 있고 멀리 왼편엔 주작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동, 불기둥으로 호위하셨다더니 내겐 산들로 호위하시는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특히 멀리 보이는 주작산은 왠지 모르게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롭게 보였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북일면 사거리에 도착하였다. 간만에 보게 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인적이 거의 없었다. 그 마을을 지나 드디어 삼남대로인 55번 국도를 만났다. 강진까지 24킬로, 아직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 그런데 벌써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우선 날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첫날치곤 이미 너무 많이 걸었고 정류장 어머니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게다가 장마철 먹구름은 일찌감치 해를 가려버렸다. 무엇보다도 초보자로서 해남 한 바퀴를 돌아서 강진까지 하루에 주파한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더 심각했는데 몸의 한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걸을 때마다 미묘하게 느껴지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나는 하루 종일 걸으면 다리, 발바닥, 허리가 제일 먼저 아플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부위들은 넉넉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아프기 시작한 부위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부위였다. 남살스러워서 말하긴 곤란하지만 독자들에겐 중요한 정보라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솔직히 고백한다. 제일 먼저 아파오기 시작한 곳은 사타구니부위였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서 인간이 네발로 걷는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좀 편하게 걷겠다고 펑퍼짐한 반바지에 사각속옷을 입고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걸으면서 연한 살과 살이 마찰하고 살과 옷이 마찰하면서 인간 육체의 접히는 부분이 마치 화상을 입은 듯 쓰라려 왔다. 점점 내 걸음은 어기적 어기적 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여관 하나 없는 이 시골마을에서 노숙으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통증을 참는 것보다 더 막막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프지만 다시 강진을 향해 행군을 하기 시작했다.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차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55번 국도는 왕복 2차선의 구도로이다. 뒤에서 큰 트럭이나 버스가 내 곁을 휙 지나가면 땅이 흔들리고 내 몸이 휘청거렸다. 게다가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차에 깔린 납짝개구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뒤에서 차오는 소리만 들리면 얼른 농지로 몸을 숨겼다. 날은 어두워지고, 차들은 나를 공격하고, 걸을 때마다 쓰라린 통증은 점점 더 커지고, 주변엔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악전고투하며 나의 욕심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통증 때문에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데 모기들이 덤벼든다. 잘난 척 하며 삶의 단순성을 맛보겠다고 가볍게 묶은 내 배낭 안에 뿌리는 모기약 하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제까지,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작고 큰 도움도 받았지만 결국 나 혼자다. 내가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 역시 그동안 부모도 계셨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결국 나 혼자 걸어온 길이었구나. 지금 여러 가지로 더 이상 걷기 힘든 구간이지만 결국 이 구간은 나 혼자 걸어야 할 몫이구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통증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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