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과 예방대책
이기춘(한국생명의전화 이사장)

입력 Sep 28, 2010 08:00 AM KST

I. 자살의뜻

  자살(suicide)이란 단어는 구약이나 초기의 기독교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단어이다,  이 말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Edward Phillips 의 New World of Words라는 사전이 출판된1662년이다. 그는 이 말을 야만적인 말이라고 해석하고 라틴어의 대명사인 sui(자기)대신에 sus(돼지)에서 유래 되었다고 보고 인간이 자신을 살해하는 돼지 같은 성격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이 말의 적합한 뜻은 1651년 Oxford English Dictionary가 출판되면서 라틴어의Suicidium 곧 자신을 살해한다는 뜻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바로 잡게 되었다.

Ⅱ.성서의 관점

  유대사상 속에서 자살은 분명히 금기시 되었다. 자살행위는 생명의 존엄성, 인간의 품위, 개인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생명은 살인죄, 성적부도덕, 우상숭배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존되어야하는 존엄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사상 속에서도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첫째로 유대인으로서 신앙을 배반하도록 강요를 당할 경우.
둘째로 치명적인 죄를 지었거나 전쟁 중 포로가 되거나 불명예를 당하게 되는 경우.
그 밖의 경우에 자살은 중립적으로 묘사되었다.

1. 구약의 사례

1) 아비멜렉 : 여인이 성위에서 던진 맷돌 짝에 두개골을 다치자 병사에게 명하여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함(사사기 9:50-54)
2) 삼손 : 머리카락이 자라나서 힘이 회복되자 불레셋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자신도 죽어버림(사사기16:25-30)
3) 아히도벨 : 압살롬과 손을 잡고 시도한 다윗에 대한 반역이 실패하자 목을 매 자살함(사무엘하17:23)
4) 사울 :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상황이 불리해 지자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죽기 싫어 자기 칼 위에 엎어져 자살함. 무기당번도 같은 방법으로 자살함(사무엘상31:3-5, 사무엘하1:9-10, 역대지상10:4)
5) 시므리 : 오므리의 공격으로 디르사가 포위되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불에 타죽음(열왕기상16:18)
6) 라지스 : 예루살렘의 원로 애국자 라지스는 니가노르의 공격을 받고 자기 칼로 배를 찔러  창자를 뽑아 항의 하며 자살함((마카베오하14:43-46)

2. 신약의 사례

1) 가롯유다 : 스승을 배반한 유다가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 목을 매 자살함(마태27:5)
2) 바울의 간수 : 지진으로 감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간수가 자살을 시도하자 바울이 만류함 (사도행자16:28)

3.  그 밖의 사례

1) 토라 : 토라는 특별하게 자살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으나 랍비들의 전통은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면서도 예외를 인정한다. 곧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는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에 예외를 인정한다.
2) 마싸다의 집단자살 : 기원 74년 로미군 에게 포위되어 3년간을 버티다가 야이르(Eleazar Ben Jair)가 지위하던 960명의 유대인들은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한 다음 서로를 죽임으로 집단자살을 실천함.    
 이상의 사례에서 보면 전쟁 중 불명예를 당하거나 신성모독의 위험이 있을 때는 자살이 전통적으로 자행 되었다. 신약의 사례는 죄책감이나 책임완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자살을 시도 하거나 실행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살은 창조주의 뜻에 반하는 것 이였다.

Ⅲ. 중세의 관점 

  중세기에 진입하기 전 그리스-로마시대는 자살에 대한 관점이 더욱 다양해 졌다.  플라톤은 예외를 두기는 했으나 대체로 자살에 대해 반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살은 비겁한 행동이고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에피큐리안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자살을 인간 자유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정부는 공식적으로 자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원로원에서는 자살에 도움을 주는 맹독(hemlock)이 포함된 약물을 공급했다. 로마시대에 자살은 빈번하게 자행되었다. 군중 앞에서 공격적인 자살도 이루어 졌으며 반역죄를 저지른 경우 온 가족이 자살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중세기는 이런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자살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자살은 매력적인 것 이었다 그 이유는 순교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교회는 순교자의 가족을 돌보았기 때문에 4세기까지 이런 풍조가 이어졌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삶은  다음 세계를 준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지 이 세상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이단으로 규정된 북아프리카의 Donatists와 Circumcellions 신자들은 집단으로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감행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자살은 제6계명에 반하는 것이라고 저주했다. 그는 삼손과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친 행위는 하나님이 인정한 것이어서 일반적 자살과 다르다고 했다.

 Arles 공의회(452)는 자살을 논의하기는 했으나 노예들의 자살을 반대했고 자살자는 마귀에게 사로잡혔다고 보았다. Braga 공의회 (563)에서 비로소 자살자와 그 가족에 대해 엄한 책벌이 부과되기 시작했다. 곧 이들에게는 통상적인 장례를 치루는 일과 성례전과 시편을 노래하는 권리가 박탈되었다. Auxerre 공의회(578) 는 자살자로부터 어떤 봉헌물도 받을 수 없게 하고 자살에 대해 전반적인 저주를 선언했다. Toledo 16차 공의회(693)는 자살 시도자는 2개월간 교회출석을 금지 시켰다. 그러나 829년에 출간된 참회서 (Penitential)는 정신병자로 자살한 신자에게는 미사와 기도를 제공받게 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1823년까지 유지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자살자에 대한 처우가 더욱 잔인하게 다루어졌다. 자살자의 시체는 거리를 끌고 다니다가 단두대에 매달았다. 

 Danzig(현재의 Poland일부)에서는 자살자의 시체를 출입문으로 운반하지 못하게 하고 창문을 통해서만 옮기게 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세기에는 자살자의 재산을 국가나 교회가 몰수했다. 13세기에 와서 성아퀴니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자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살반대의 입장을 3가지로 그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자기 파괴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와 활동을 박탈 할 권리가 없다. 셋째,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생과 사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가 없다. 어거스틴-토마스가 형성한 자살에 대한 견해는 오늘 날 가톨릭의 자살 이해에 근간을 이루고 있다.

1. 중세기의 사례

1) Jean-Claude Schmitt의 통계

   남자는 여자보다 3배나 더 자살한다. 목을 매다는 방법이 가장 많다. (54건 중 34건). 다음으로 물에 빠지기(12건), 칼로 찌르기,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기 등이다. 계절적으로는 3,4월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7월이다. 3,4월은 사순절 행사로 금식 때문에 신체가 허약해진 원인으로 볼 수 있고, 7월은 힘든 농사일 때문이다. 중세기에는 소작인과 농부들의 자살율이 가장 높았다. 이 통계는 오늘의 통계와도 유사하다.

2) Bracton의 연구

  중세기의 자살은 굶주림, 질병, 빈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투옥,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시도 되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살고 싶은 의지를 상실 할 때 이를 광증으로 판단했다. 광증으로 죽은 이의 재산은 정부에 의한 재산몰수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살원인을 광증의 결과로 증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중세기는 자살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어서 자살자의 시신에 치욕을 주려고 하여 매장도 금지하고 재산도 몰수했다. 성직자가 자살하는 경우 교회 묘지에다 매장하는 것도 금지했다.

Ⅳ. 종교개혁 이후의 관점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 자살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보편화 되었다. 중세 시대의 스콜라 사상은 기독교 사상과 제휴되면서 자살을 죄악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16세기는 코페르니쿠스, 루터, 몽테이뉴를 삼각점으로 하는 문화적 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루터는 복카치오와 에라스무스의 뒤를 이어 르네상스 시대의 증가하는 자살현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루터는 1542년 독일 안에서 증가하고 있는 자살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자살은 마귀에 의해 감행되는 살인이라고 했다. 그는 자살은 인간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짓이라고 규정 했다. 루터는 1544년 12월 1일 자살한 한 여인을 매장 해준 목사의 행위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이 여인은 사탄의 희생물일 뿐이기 때문 이라고 했다.  이는 자살자에 대한 처우를 루터는 가톨릭교회 보다 완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도 자의적인 자살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여타의 개신교 신학자과 도덕론자들과 같이 자살에 대해 반대 입장에 동조했다. 칼빈은 자살은 생사여탈권을 지닌 하나님의 절대성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 되면서 선은 풍요이고, 악은 가난으로 치부되어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인생고 때문에 이루어지는 자살에 대해 교회는 죄악시 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당대의 사상적 지도자인 루소와 베카리아(Cesare Beccaria)등은 이전 시대가 자살자에게 부과했던 가혹한 처사를 경험적 관점과 비판적 이성으로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흄은 1783년 에 󰡒자살이론󰡓(Essay on Suicide)을 통해 자살이 하나님, 이웃, 자신에 대해서 증오할만한 죄라면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킬 가치가 없는 삶을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괴테의 1774년 작품 「베르테르의슬픔」(Sorrows of Werther)은 자살을 낭만적으로 서술하여 오늘날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부르는 문화적 풍조를 형성하기도 했다. 1800년에 와서는 엄격한 종교적 규제가 자살예방에 효과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심리학자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제임스(William James)는 1897년의 논문󰡒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Is life Worth Living)에서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신앙 때문이 아니라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 하면서 건강한 종교와 삶의 온당성을 연계시켰다.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Eros)과 죽음의 본능(Thnatos)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갈등을 일으킬 때 원초적 자아(id)가 등장하며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것이 자살행위라고 해석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문화적, 심리․사회적 변화를 고려하면서 자살자와 그 가족에 대해서 자살은 수용할 수 없는 생명창조에 반하는 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유가족과 친족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자살예방을 위하여 저주와 심판이 아니라 제2의 희망을 제공하는데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가톨릭교회도 자살자에 대한 정중한 예식과 유가족에 대한 따듯한 위로를 베풀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목회상담분야에서는 애도 상담을 통해 사별의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는 목양적 돌봄에 심층적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2. 현대적 사례

  1732년 스미스(Richard Smith)라는 영국인 내외가 어린 딸을 살해하고 자신들도 목을 매 자살했다. 그리고 그들은 장문의 유서를 남겼는데 그 내용은 찌든 가난에 허덕이면서 더 이상 삶을 지탱 할 수 없었다는 눈물겨운 호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살은 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Ⅴ. 자살예방을 위한 전략개발

  인간의 자살행위는 자연히 소멸되거나 감소하는 자연현상과는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살을 저지르기 때문에 인간의 동기와 의지를 변화시키는 교육, 가치관의 변화, 인식의 전환 등을 이끌어 내는 체계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자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이제 자살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문제가 되었다. 자살의 원인은 경제, 교육, 문화등 사회적 조건들이 상당부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대응책이 필요하다. 1958년에 설립된 미국의 로스엔젤리스 자살방지센터는 국립정신건강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에는 국립 자살 예방 전략 연구소까지 설립되었다. 일본의 「이노찌노덴와」, 프랑스의 S.O.S Amitie등은 모두 국가적, 사회적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어 그 역할이 제 몫을 감당하고 있다.

  둘째, 정신건강의 의의가 재인식되어야 한다. 경제적 성장만이 국가적 목표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소극적이다. 자살과 장애등은 정신건강이란 차원에서 교육과 재교육을 일반화 시켜야 할 긴급 과제이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정신건강교육은 교과목으로 설정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급격한 가족해체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의 자살원인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 체재이다. 가정을 지키기만 하면 문제가 해소된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4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은 자살율이 높고,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가정의 자살율이 낮다는 것은 가정생활의 방식과 질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대가족으로부터 핵가족으로, 다시 가족 해체로 인한 원시 가족으로의 복귀현상은 가족 구조와 기능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 징조이다. 

  넷째, 건강한 문화 비판적 사고가 요청된다. 청소년들의 자살충동을 부추기는 요인 중의 하나가 현대문화의 속성이다. 죽는 장면을 되풀이해서 보여주는 TV와 영화 속의 장면, 인터넷 중독에 빠지게 하는 정보체계, 학업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라는 자기애적 사고의 가치관은 생명 경시의 풍조를 만연시켜 청소년 모방 자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섯째, 사회적 지지망의 중심으로서의 상담기관들의 체계적 교육의 심화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이노찌노덴와」, 미국의 자살방지센터, 프랑스의 SOS. Amitie등은 자살문제에 대응하는 유능한 자원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기관들은 「생명의 전화」와 같이 자원봉사자들과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 조직이다. 이 기관들이 제몫을 감당 하는 데는 의료, 사회봉사, 지역 자체 단체등과 지지망(Supporting Network)을 구축하고 있다. 이 지지망은 중심점을 필요로 하는데 시민의 봉사와 국가의 행정력이 제휴할 때 생겨난다. 그러나 자살예방운동에 전념하는 민간기구들이 교육, 봉사, 기능을 체계화하고 활성화 될 때 모든 지지망의 신경다발이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자살예방 법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민간 봉사 기국의 체계적 교육의 준비와 지지망 구축은 자살예방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Ⅵ. 맺는 말

  오늘날 기독교가 자살문제에 대해 전념하여야 할 과제는 자살에 대한 교리적 규범이나 비판적 해석이 아니라 효과적인 자살예방 대응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미화해서는 안 되며 생명존중에 반하는 파괴적 행위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자살행위는 하나님의 생명창조에 어긋나는 파행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자살예방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공헌하고 있는 점은 전화 상담을 통한 자살예방 운동이다. 1953년 웨스트(W.Peter West)목사와 바라(Chad Varah)목사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The Good Samaritan)이라는 전화 상담 기구를 창설하고 사람들의 자살위기에 개입했다. 그 뒤를 이어 마르틴(Raynold Martin)목사도 “이포테스”(IFOTES : International Federation of telephonic Emergency Services)라는 전화 상담 기구를 만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호주에서는 1963년 워커(Alan Walker)가 “생명의전화”(Life Line)를 개설하여 자살예방운동을 시작했는데 한국은 이 생명의 전화를 1976년에 도입하여 국제 생명의전화(Life Line International)에 정회원이면서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2009년부터 이 세 기구는 연합적 제휴를 이루어 “정서적 지원연맹” (ESA : Emotional Support Alliance)을 조직하여 전 세계를 커버하는 기독교 자살예방 및 위기개입 기구가 되었다.
  한국생명의전화는 전국에 18개 센터가 있으며 호주, 싱가폴, 필리핀, 미국, 캐나다, 연변 등에 해외교포들을 위한 위기개입 센터를 거느리고 있다. 이제 기독교는 OECD국가 중 자살율 으뜸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자살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조직망을 통해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전화로 통화하는 생명의전화의 기본적 가치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참고문헌

Minois, Georges, History of Suicide: Voluntary Death in Western Culture, Baltimore and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1995.
Evans, Glen and Farberow, Norman L, The Encyclopedia of Suicide. New York: Facts On File, Inc. 2003.
Herringen, Kees van, Understanding Suicidal Behaviour: The Suicidal Process Approach to Research, Treatment and Prevention. New York: John Wiley &    Sons, Ltd. 2001.  
“이기춘, 전화상담의 기법과 과정”, 들음의 신학, 도서출판 감신, 2002, PP 221-244.  



자료출처: NCCK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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