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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천환 주교, 한국 교회일치 운동의 선구자
대한성공회의 기틀 마련한 초대 한인 성공회 주교

입력 Mar 31, 2010 06:54 AM KST
▲대한성공회 주교좌 지하성당에서 드려진 故 이천환(바우로) 주교의 안치예식. 30일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장례성찬례는 오후 4시 30분부터 드려진 안치예식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김태양 기자

 대한성공회 초대 한인주교 이천환(바우로) 주교가 지난 26일 오후 8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1922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이천환(李天煥) 주교는 30년 뒤인 1952년에 부제서품을, 다시 3년 뒤인 1953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12년 뒤 1965년 영국인 선교사 존 코프(한국명 고요한)의 선교로 한국 땅에 성공회가 전파된 지 7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온 선교사 주교 시대를 마감하고, 대한성공회의 첫 한인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천환 주교는 어려운 대내외적 여건의 와중에서도 복음을 전파하고 사회의 발전과 통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함으로써 오늘의 대한성공회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별히 이천환 주교는 재임 시 한국의 교회일치 운동(에큐메니컬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1965년 한국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기도모임, 개신교 교파들과의 부활절 연합예배 참여, 루터교와의 축구 모임 등 기독교 세계의 분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실제로 성공회가 한국교회 중 가장 적극적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천환 주교의 관심과 노력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천환 주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성공회·천주교 재(再)일치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또한 이천환 주교는 24년 동안 학교법인 연세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오늘의 연세대학교로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바 있다.

1974년 영국 여왕은 이천환 주교의 한국과 영국의 상호 교류를 위한 헌신에 감사하여 '명예 코만더 훈장(C.B.E 훈위)'을 수여했으며, 은퇴한 이후 1985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葬)으로 치러진 이천환 주교의 장례에 대해 "이천환 바우로 주교님이 대한성공회가 이성적인 교회, 나눔의 교회라는 오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셨다고 생각하며,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를 아우르며 종교간 대화와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고"고 조전을 보냈다.

생전 한일 성공회 교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천환 주교의 장례에 대해 일본성공회의 주교와 성직자, 신도들도 조전을 보내왔다. 특별히 동경교구의 우에다 진타로 주교, 성직자, 신도 일동은 "대한성공회의 존재가 일본성공회의 재건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가르쳐 주셨다"며 "그렇게 양국 성공회의 관계 확립에 진력하신 사부 이천환 주교님의 거룩한 사역과 그 위대함을 깊이 되새기는 바이다"라고 전했다.

한국을 넘어서 이웃나라 일본에 이르기까지 에큐메니컬 운동에 선구적인 행보를 보여 온 이천환 주교의 사역 여정 속에 깃든 일치에의 유지(遺旨)가 양국의 성공회 뿐 아니라 국내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는 교단과 기독교 단체들, 나아가 기독교계에 회자되고 거듭 재해석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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